코카콜라가 세상을 지배하는 방법
[서리풀 연구通] 기업과 학문의 위험한 거래
이주연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
비만의 중요한 원인인 ‘청량음료 섭취’를 줄이기 위해 여러 나라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설탕세’ 도입이 대표적이다. 당류가 많이 함유된 음료에 세금을 부과하면 가격이 인상되고, 그러면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고, 또한 음료 제조업체도 자발적으로제품의 설탕 함유량을 줄이려고 노력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담뱃세 인상이 흡연율은 낮추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멕시코, 프랑스, 노르웨이에 이어 영국도 지난 4월 6일부터 청량음료에 설탕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이해가 직결된 만큼, 초국적기업들은 다양한 대응책을 마련 중이다. 설탕을 인공 감미료로 대체하여 세금을 회피하거나, 소비자가 가격 인상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음료 사이즈를 줄이는 것이 대표적 전략이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그런데 이 정도의 꼼수 대응이 그들이 취하는 전략의 전부일까?
국제학술지 <역학과 지역사회보건> 최근호에는 이윤을 위해 위험한 거래를 마다하지 않는 음료제조업체의 행태를 폭로한 에세이가 실렸다(☞관련 논문 바로 가기). 논문의 저자들은 미국의 시민단체 ‘알 권리(Right to Know)’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한 코카콜라사의 내부 문건을 분석했다. 이 문건은 코카콜라가 세계열량균형네트워크(Global Energy Balance Network, GEBN) 설립을 위해 작성한 제안서였다. 에세이는 코카콜라가 청부 과학자들을 고용하여 GEBN을 설립하고, 청량음료가 건강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에 관한 진실을 감추었으며, 비만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날조하여 시민들을 호도해 왔다고 폭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코카콜라는 제안서에서 건강에 해로운 음식을 금지하거나 세금을 매기는 정부 규제를 ‘극단적 해결책’, 혹은 ‘비합리적 견해’라고 표현했다. 이들은 ‘극단적인 해결책’에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이러한 주장에 도전하는 대안적 담론을 전략적으로 퍼뜨리고자 했다. ‘어떤 음식/음료를 얼마나 섭취하느냐’ 보다는’신체활동 부족’으로 인한 ‘열량 불균형’이 비만의 원인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GEBN 홈페이지에는 높은 칼로리를 섭취하더라도 중등도 이상의 신체활동을 실천함으로써, 즉 ‘열량 균형’을 실천함으로써 전 세계 비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이 반복되고 있다(☞관련 사이트 바로 가기). 비만의 원인을 청량음료 같은 유해제품이 아닌, 개인의 신체활동 부족에 돌림으로써 정부의 규제를 미루고 비난의 화살을 피하려는 속셈이다.
코카콜라가 설립하고 후원한 GEBN은 비만의 원인에 대한 왜곡된 메시지를 퍼뜨리는 충직한 하인 노릇을 했다.겉보기에는 기업의 이해관계로부터 독립적이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비만의 원인과 해결책을 둘러싸고 일대 격돌 중인 보건학계와 코카콜라 사이에서 기업을 승리로 이끄는 ‘무기(weapon)’로 활용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코카콜라가 학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던 여러 정황을 통해 드러났다. 코카콜라는 ‘열량 균형’이라는, 자칭 ‘혁신적인 연구’와 이러한 접근법에 동의하는 학자들을 후원하고 이들이 논문과 출판물을 계속해서 낼 수 있도록 장려했다.
GEBN은 특히 ‘커뮤니케이션 전략’에 집중했다. 수년 간 이어진 대대적 홍보전은 매우 ‘정치적’이었다. GEBN에 속한 전문가들은 정책입안자, 보건의료전문가, 저널리스트들과 일대일로 만나 ‘비만 퇴치를 위한 열량균형 접근법’의 필요성을 교육하고 홍보했다. 또한 이들은 비만과 관련된정부논의에 핵심 패널로 참여하여 정책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영양학회, 국제생명과학협회 같은 국제기구들과도 파트너십을 맺으려 했다. GEBN은 이러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시민사회, 학계, 산업, 정부에까지 코카콜라의 입장을 관철시키려 했다.
시민들의 건강을 희생시켜 이득을 챙기려는 기업, 비윤리적 기업 행위에 조력하는 전문가 집단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흡연자가 거대 담배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역사에서도 전문가 집단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관련 기사 : “담배 유해성 입증 안 됐다”는 괴담, 그 배후엔…) 전문가 집단이 기업에 단순히 조력하는 차원을 넘어서, 기업 스스로가 ‘독립적인 과학조직’으로 가장한 네트워크를 설립하고 기업에 유리한 거짓 근거를 만들어 진실을 호도하고 홍보하여 정책 도입을 지연시키는 행태는 일종의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기업과 청부 과학자의 결탁이 비단 청량음료, 담배 같은 소비상품 문제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예컨대 전자산업 노동자들이 직업병 피해를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위해 벌인 지난 10년의 투쟁에서도 과학은 자본과 결탁하고 또 자본에 이용당했다. 2014년 10월 삼성전자의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적 차원의 조정위원회가 구성되어 권고안을 냈지만, 삼성전자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다음 해 독자적으로 ‘보상위원회’를 설립했다. 그리고 피해가족들에게는 합의금을 받은 대가로 ‘비밀 유지’를 종용했다. 삼성전자가 설립한 보상위원회에 참여했던한 대학 교수가 삼성미래전략실 장충기 사장으로부터 33만 원에 달하는 음악회 티켓을 선물 받고 보냈다는 문자 메시지가 최근에 공개됐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보상위원회가 설립되기 불과 몇 달 전인 2015년 4월에 일어난 일이다. 오랫동안 진보적 학자로 존경받던 인사가 왜 노동계와 시민사회에서 그토록 반대하는 삼성의 자체 보상위원회에 참여했는지 당시로서는 의문이었는데, 혹시라도 이 문자가 단서가 될는지도 모르겠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콜라와 비만, 담배와 폐암, 전자산업 노동자의 직업병 문제에서의 공통점은, 기업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 과학적 근거에 대한 의심을 만들어내고, 그 과정에서 전문가 집단과 결탁하고 또 이들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보통의 시민과 노동자들은 어떤 정보가 학술적으로 입증된 정보이고 어떤 정보가 기업이 만들어낸 가짜 정보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특히나 이러한 기업들은 기존 학술연구 결과들이 ‘틀렸다’고 노골적으로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저러한 한계 때문에 틀릴 수도 있다, 다른 측면도 생각해보자’면서 의심을 만들어내는 것이 주요 전략이다. 국내에는 <청부과학>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된 데이비드 마이클스의 원저 제목은 <의심은 그들의 생산품(Doubt is their product): 과학에 대한 산업의 공격이 어떻게 당신의 건강을 해치는가>이다. 전문가의 역할, 학술 공동체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기업에 의한 학계의 포획도 점점 심해지고 있다. 시민, 노동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 결정에 대한 시민적 감시가 중요한 이유다.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금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