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직장내 성희롱 피해, 산재 인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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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 연구通] “성희롱은 ‘사회적 위험'”

 

조효진(시민건강연구소 회원)

 

남녀고용평등법 제12조는 직장 내 성희롱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법률이 무색하게도 직장 내 성희롱, 성추행 문제는 만연해 있다. 그야말로 각계각층에서 일어난 미투(#MeToo) 운동이 이를 잘 보여준다. 정치계, 법조계, 학계, 문화예술계, 어느 곳 하나 “Me Too”라는 외침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직장 내 성범죄는 개개인의 도덕성 문제로만 보기에는 지나치게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존재해왔다. 직장 내 성범죄는 위계적 관계를 이용하여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이를 드러내기 어려운 것이 일반적이며, 그래서 문제 해결이 더욱 어려워진다.

 

오늘 소개하는 논문은 직장 내 성차별, 성희롱 같은 성적 침해, 괴롭힘 행위가 건강을 위협하고, 건강의 성 불평등을 지속시키는 ‘사회적 위험(social hazard)’이라고 지적한다.

 

미국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교 사회학과 캐서린 하노이스 교수와 산타 카타리나 대학교 공중보건학과 조아오 바스토스 교수는 직장 내 성차별과 성희롱 피해 경험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논문을 국제학술지 <건강과 사회적 행동(Journal of Health and Social Behavior)> 최근호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성별에 따라 직장 내 성차별과 성희롱 경험이 다르다는 점에 주목하여, 직장 내 성차별과 성희롱 피해 경험이 남녀 노동자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분석했다. 분석에는 미국 전체 국민을 모집단으로 하여 표본 추출한 일반 사회 조사(General Social Survey)의 2006년, 2010년, 2016년 자료를 활용했다.(☞바로 가기)

 

분석 결과, 우선 자기보고로 측정한 정신적, 신체적 건강상태 모두 여성이 남성에 비해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0일 동안 나의 정신적 건강(스트레스, 우울증 등)/신체적 건강(질병, 부상 등)을 생각해 볼 때,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던 날들은 얼마나 되는가?’라는 질문으로 측정했을 때, 정신적, 신체적 측면에서 모두 아프다고 느낀 날들이 여성에게서 더욱 많았다. 직장 내 성차별과 성희롱 피해 경험 여부 또한 여성에게서 유의미하게 더 많았다.

 

직장 내 성차별, 성희롱 경험과 주관적 건강상태 간의 관련성을 분석한 결과, 성차별 경험이 있는 여성은 그렇지 않는 여성보다 정신 건강 상태가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직장 내 성희롱의 경우, 성희롱 피해 경험이 있는 여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신체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다. 반면 남성의 경우 성차별과 성희롱 피해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 비율이 3% 미만으로 미미했을 뿐 아니라, 성차별, 성희롱 피해 경험과 정신적, 신체적 건강상태 간에 유의미한 연관성도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진은 직장 내 성차별, 성희롱 피해 경험과 건강상태 사이의 부정적 연관성이 여성 응답자에게서만 유의미하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성차별과 성희롱 피해가 성 차별적으로 경험된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추가 분석을 통해 성차별과 성희롱 피해 경험이 주관적 건강상태의 성 격차를 설명하는 요인임을 확인했다. 이를 통해 직장 내 성차별과 성희롱이 건강의 성 불평등을 지속시키는 주요한 요인 중 하나라는 점을 제기했다.

 

아울러 연구진은 직장 내 성차별 및 성희롱 피해 경험이 있는 경우, 동시에 다른 형태의 차별과 괴롭힘을 복합적으로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

 

분석 결과, 직장 내 성차별과 성희롱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의 절반 이상이 다른 형태의 직장 내 차별과 괴롭힘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하나 이상의 중층적 차별과 직장 내 괴롭힘 피해 경험이 있는 경우,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건강상태가 더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성희롱과 성차별이 산발적으로 존재하기보다 직장 내 불평등과 차별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조건들, 예컨대 연령주의, 인종주의와 얽혀있으며, 이는 개인의 건강을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최근 <월간 노동리뷰> 3월호에 발표된 한국노동연구원 송민수 전문위원의 연구가 이를 보여 준다(☞관련 연구 : 직장 내 성희롱은 왜 발생하는가? 그리고 피해자들은 어떤 어려움에 처하는가?).

 

이 연구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실시한 근로환경조사 2014년도 자료를 분석하여 한국의 직장 내 성희롱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과 직장 내 성희롱, 성차별 피해자들이 경험하는 어려움을 다루었다.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예상할 수 있듯 여성이 남성에 비해 직장 내 성차별과 성희롱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았다. 또한 성차별과 성희롱 피해 경험이 있는 경우 전반적 건강상태가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성차별과 성희롱 피해 경험이 있는 노동자들의 경우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두통, 복통, 호흡 곤란, 우울증, 피로, 불면증을 앓고 있다고 응답한 경우가 많았다. 앞서 소개한 연구결과와 맥을 같이 하는 셈이다.

 

직장 내 성희롱, 성차별 등 성적 침해와 괴롭힘 행위가 노동자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대해서 다수의 연구들이 문제를 지적해왔다. 하지만 이 문제는 여전히 노동자의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에 충분히 고려되지 않고 있다. 그저 개인들 사이의 문제로 여겨지는 것이다. 실제로 현행 산재보험법은 직장 내 성희롱과 성폭력 피해를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지 않다. 직장 내 성희롱과 성차별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사회적 인식은 낮다는 점을 반영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민주평화당의 조배숙 의원이 직장 내 성희롱과 성폭력을 산재로 인정해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했다. 상당히 고무적이다(☞관련 기사 : 조배숙 의원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도 산재” 법안 발의).

 

직장 내 성차별과 성희롱은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한다. 많은 경우 그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이 문제가 단순히 개인의 일탈, 도덕성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성 불평등 구조를 반영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직장 내 성범죄에 대해 경각심을 고취하고 사회적 성 평등 수준을 높이는 것은 건강하게, 안전하게 일할 인간의 기본권을 존중하는 것이고 보호하는 것이다. 이 문제의 위험성과 심각성에 대해 사회적 경각심을 높이고 직장 내 성범죄 근절을 위한 구체적이고 철저한 대책이 요구된다.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금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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