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인간 안보’라는 새로운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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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예전 같지는 않지만, 남북문제는 여전히 민감하다. 이번 대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한창인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논쟁만 해도 그렇다. 
 
따지면 꽤 복잡하고 어렵지만, “NLL 포기 발언”으로 몰아가는 것으로 게임이 거의 끝난 분위기다. 미국 보수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키신저 전 국무장관도 이 막무가내 안보 논쟁에는 별 소용이 없다. 
 
미국 국무장관이 벌써 1975년에 NLL이 분명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말했다는 데도 몰아붙이기 논쟁은 제 자리를 맴돈다. 가히 맹목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안보(이 경우는 보통 ‘국가 안보’이다)는 이만큼 중요하다. 뜬금없이 닭을 사들고 대통령이 연평도로 달려가는 모양을 보니 맹목의 정치와 구별하기 어렵다.  
 
아직 전쟁의 기억이 살아있고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이해한다고 치자. 그러나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다. 근본에 있는 가치를 따지지 않는다면 국가 안보든 그 무엇이든 제 갈 길을 잃는다. 
 
국가 안보를 넘어 인간 안보의 뜻을 되새기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국가 안보를 넘어 인간 안보가 새 시대의 틀이다. 
 
인간 안보(또는 인간 보장, human security)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반부터다. 공식적으로는 유엔개발계획(UNDP)이 1994년 펴낸 인간개발 보고서(바로가기, 이하 ‘보고서’라고 함)가 처음이라고 한다. 
 
 
<UN의  인간안보 누리집 화면>
 
이 ‘보고서’는 평화는 무기를 통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존엄성을 보장해야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과거 세계 질서를 지배하던 국가 안보를 넘어 인간 안보라는 역사적 기념비를 세웠다.  
 
국가 안보란 말은 우리가 잘 안다. 주로 국방에서 쓰는 말로, 군사력을 기반으로 주권 국가의 영토를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리 사회에서 쓰이는 안보, 안전 보장, 국방 등의 개념도 다르지 않다. 
 
전통적 안보 개념이 냉전 체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반성이 인간 안보가 새롭게 제기된 배경이다. 사실 세상은 훨씬 복잡하게 바뀌었다. 한국 사회만 하더라도 조류 독감과 같은 신종 전염병,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지구 온난화 등 온 사회와 국가를 뒤흔드는 위험을 경험했다.   
 
이런 위험이 외적의 군사적 침략보다 덜 파괴적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그 말 많은 자살은 한국 사회가 매일 치르고 있는 총성 없는 전쟁을 말없이 웅변한다.     
 
시각을 넓혀 국제적으로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막대한 군사비를 쓰면서도 국민의 삶은 피폐할 대로 피폐한 많은 개발도상국이 바로 그런 경우다. 최신 전투기와 100만 대군이 국가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극심한 내전을 겪고 있는 시리아가 군사적으로 안전 보장에 실패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전쟁 없는 그리스에서 길거리에 나선 사람들의 안전은 또 어떤가.  
 
이제 국방(전쟁)뿐 아니라 빈곤, 환경, 건강과 같은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개인, 국가 또는 지구적 차원에서 인류의 평화로운 삶을 보장할 수 없다. 이것이 지금 인간 안보를 주장하는 기본적인 문제의식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인간 안보를 위협하는 요소를 살펴보자. 유엔개발계획의 ‘보고서’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가 여럿이지만 일곱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경제, 식품, 건강, 환경, 개인적 요인, 지역사회, 정치가 그것이다. 
  
여기서 모두를 자세히 따져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간단한 말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개인적 요인과 지역 사회 만큼은 약간 더 설명이 필요할 듯싶다. 
 
‘보고서’가 말하는 개인적 요인은 주로 폭력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전쟁은 물론이고, 국가, 종족 분쟁, 범죄, 여성 폭력, 어린이 학대와 폭력이 모두 들어간다. 나아가 자살이나 약물 중독과 같은 ‘자해’도 폭력으로 본다. 
 
지역사회 역시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 가족, 지역사회, 조직의 억압적 관행과 전통이 여기에 속한다. 일부 종족에 남아 있는 여성 할례의 전통, 인종 차별, 카스트 제도 같은 예에서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국가 안보를 넘어 인간 안보로 개념을 전환(또는 확장)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지금 개인과 공동체를 위협하는 위험이 날로 커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국제 사회든 국내든 현실은 그렇지 않다. 평화를 위협하는 요인들은 날로 늘어가는 반면 도저히 이성적이라고 볼 수 없는 반응방식이 난무한다. 
 
대응이 오히려 다시 평화를 위협하는 일도 흔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사정이 그런 데는 정치가 큰 몫을 한다.  
 
국제 사회의 관심에 비해 한국 사회의 논의는 훨씬 빈약하고 피상적이다. 수도 없이 국가 안보를 말하는 곳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일종의 인지 장애가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다. 
 
흔히 인간 안보는 안보를 집단 개념에서 개인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국가 안보가 곧 개인의 안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인간 안보 패러다임이 갖는 중요성은 따로 있다. 안보의 진정한 의미와 방법을 묻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공동체와 개인을 위협하는 진정한 위험요소를 제대로 볼 수 있게 한다. 
 
추상적이고 왜곡된 위험이 아니라, 현실의 일상과 꿈을 흔드는 위험을 일깨운다. 청년 실업과 비정규 노동, 노후의 가난, 끝 모를 학벌 경쟁, 기후변화와 재해, 가계 파탄을 을 부르는 치료비, 허술한 응급의료체계가 바로 평화롭고 안전한 삶을 위협한다는 것.  
 
이제 반세기 이상을 계속한 안보 논쟁을 전환해야 한다. 무지에서 비롯되었건 의도적이건, 군사력만을 염두에 둔 안보관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국가 안보를 주장하는 자들이 얼마나 크게 안보를 해쳤는지 생각해 보자.    
 
늦었지만 인간 안보로 넓히고 심화시켜야 새로운 위협이 무엇인가가 눈에 보인다. 그래야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보장할 것인가 정할 수 있다. 더 중요하게는, 그래야 살 만한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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