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여성차별, 여성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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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세계경제포럼이 2012년 성 불평등 보고서를 발표했다(바로 가기 http://tinyurl.com/9b9qtk5). 언론에 보도된 그대로, 그렇지만 이미 아는 대로, 한국의 성 평등 수준은 참담하다.

 

일부에서는 충격적 결과라고 했지만, 사실 호들갑이다. 작년에 107위, 올해 108위면 별로 변한 것도 아니다. 잠시 요란한 것은 작년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포럼이니 국제연구소니 하는 곳에서 나라별로 등수를 매겨 발표하는 것을 다 믿을 수는 없다. 특히 ‘경쟁력’이니 경영 ‘환경’이니 할 때는 필경 치우치고 왜곡된 의도가 개입되기 마련이다.

 

세계경제포럼은 국가경쟁력 보고서를 내는 것으로 더 유명하다. 그런 점에서 성 불평등 보고서도 꼼꼼하게 다시 들여다 볼 구석이 있다.

 

이번 보고서의 서문에서도 알 수 있지만, 이들의 관점은 사람을 ‘자원’으로 보는 것이다. 인적 자원이란 말은 이미 일상 용어가 될 정도로 익숙하니 더 말하지 않아도 되겠다.

 

여하튼 이 보고서의 배경에는 사람을 자원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여성을 차별하면 더 좋은 인적 자원을 얻을 기회가 줄어들고 국가적으로는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니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했다는 것을 고려하기는 해야 할 터이다. 하지만 성 격차가 심각하다는 사실 만큼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사실 한국의 상황은 ‘심각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모자란다. 이번 보고서만 해도 그렇다. 비교 대상 국가가 135개였으니, 그야말로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어떤 언론은 중동 아프리카 수준이라고 표현했지만(의도는 알겠지만 옳지 않은 표현이다), 국가 등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존심이 좀 상했을 것이다.

 

부문별로 보면 실상이 좀 더 분명하다. 경제 참여도와 참여기회 지수 116위, 교육 수준 지수 99위, 정치력 지수 86위, 건강과 수명 지수 78위이다. 그나마 건강과 수명이 약간 더 낫다.

 

전반적인 성 격차와 차별 문제는 또 달리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니 이번에는 제쳐 놓는다. 그나마 낫다는 건강과 수명 역시 세계적으로는 겨우 중간 등수였다는 것이 우리의 관심사다.

 

우선 상식과 맞추어 조정할 선입관이 있다. 여자들이 훨씬 오래 사는데 성 차별이라니, 오히려 남성 역차별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 여성부가 아니라 남성부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번 보고서도 그렇지만, 이런 방식으로 건강의 성차별을 따질 때는 주의해서 볼 것이 있다. 여성이 더 오래 산다고 성 차별이 없다고 하지 않고, 남성이 불평등하다고 하지도 않는다.

 

여성이 본래 더 건강하고 오래 살게끔 태어나기 때문이다. 불평등이 없을수록 남녀의 평균 수명은 차이가 많이 나고, 불평등이 심할수록 차이가 줄어든다. 수명의 차이가 없는 상태(극단적으로는 역전되기도 한다)가 성 불평등이 가장 심한 경우다.

 

해석이 약간 헷갈리지만, 이번 세계경제포럼의 지표도 기본적으로는 마찬가지다. 불평등을 재는 지표 중 하나로 여성이 남성이 비해 얼마나 더 오래 사나 하는 것을 택했다.

 

한국에서도 여성의 평균 수명이 더 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만하면 평등하다고 하지 않는다. 잠재력으로는 지금보다 더 차이가 많이 나야 한다.

 

그래도 다른 불평등에 비하면 낫지 않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 건강지표를 함께 놓고 보면, 건강 쪽이 낫다고 자신하기도 어렵다.

 

최근 한국인의 평균수명을 순위로 매기면, 자료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세계 20위 안에 든다. 그런데 양성 불평등 측면에서는 78위라니, 그 격차가 엄청나다.

 

이처럼 건강의 성 격차가 뚜렷하게 나타난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앞의 보고서는 이미 지표를 통해 답을 말하고 있다.

 

다른 사회에서도 그렇지만,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원인이 양성 사이에 나타나는 건강 불평등을 가장 잘 설명한다. 이런 요인들은 세계경제포럼 보고서가 사용한 지표들, 즉 경제 참여도와 참여 기회, 교육, 정치력과 정치적 영향력 같은 것들과 다르지 않다.

 

불평등의 상호 관련성을 잘 나타내는 것 중 한 가지가 여성의 고용과 노동이다. 세계경제포럼의 보고서에서는 경제 참여도와 기회라고 건조하게 표현했지만, 여성이 고용과 노동에서 불리한 것이 특히 더 두드러진다.

 

이런 불평등의 네트워크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이 그것이다.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건강의 성 불평등과 노동의 성 불평등을 함께 놓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피해자를 지원하는 인권 모임인 <반울림>이 모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3월까지 사망한 피해자는 30명이다(바로가기 http://tinyurl.com/3ao8vm6). 그런데 그 중 20명이 여성이다. 이게 우연일까.

 

물론, 여성이 이토록 많은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결코 간단치 않다. 그곳에 젊은 여성 노동자가 많았다거나 여성에게 더 위험한 작업환경이었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이 우선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여성이 더 많이 ‘드러났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결과적으로 이런 ‘성 격차’가 우연히 생겼다고 보지 않는다. 경로가 무엇이든 근본 원인은 여성이 불리한 고용과 노동환경일 가능성이 크다.

 

노동의 불평등 구조를 좀 더 확대하면 임금 격차, 비정규 노동, 여성 노동의 성격 같은 문제로 연결된다. 낮은 임금과 비정규 노동이 여성에게 집중되는 한, 여성의 건강이 차별적으로 악영향을 받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간병, 요양, 장애인 활동보조 등을 포함하는 돌봄 노동은 노동의 성 차별적 특성을 압축해서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저임금, 비정규, 감정노동, 인권 침해 등 여성 노동의 문제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것이다.

 

돌봄 노동자들의 건강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굳이 자세히 밝힐 필요는 없으리라. 잘 알고 짐작하는 대로다. 다만, 서로 뗄 수 없이 결합된 가운데에 건강과 노동이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성의 불평등 구조를 통해 여성의 건강 잠재력은 훼손된다. 고용과 노동만 말했지만, 다른 정치적, 사회경제적 요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차별의 심리와 문화만으로도 건강은 나빠진다.

 

건강의 양성 불평등이 다른 불평등 구조와 뗄 수 없다면, 해결을 모색하는 것 역시 구조적이고 통합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성 격차를 줄이는 노력 속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건강과 질병의 양상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만큼, 사회경제적 요인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커질 것이다. 성 불평등이라는 요인, 그리고 그것의 근본적 요인들 역시 건강과 건강 불평등에 더욱 크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여성이 본래 가진 건강의 잠재력이 온전하게 발현되려면 사회경제적인 족쇄를 풀어야 한다. 정치, 경제, 고용과 노동, 교육에서 성 불평등을 줄여야 건강 불평등도 줄어든다.

 

보태는 한 마디. 우리가 성 평등을 말하는 목적은 인적 자원을 키우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아니다. 남성을 포함한 모든 이의 권리이고 그게 정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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