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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시위’ 5년 만에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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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 연구通] ‘임신 중단 합법화’, 더 큰 목소리가 필요하다

 

오로라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2016년 10월 폴란드에서 검은 옷을 입은 수십만 명이 거리 시위를 벌였다. 일명 ‘검은 시위(폴란드어로 Czarny Protest)’라 불렸던 이 시위는 ‘낙태 규제’를 강화하려는 법안의 도입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2015년 집권한 보수정권이 강간에 의한 임신, 여성의 생명이 위태로운 경우 등 그나마 임신중지를 허용하는 일부 예외마저 전면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키려 하자 시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폴란드 전역을 가득 채운 검은 물결로 법안 통과는 결국 좌절되었다. 폴란드의 시위는 다른 나라에도 반향을 일으켜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검은 시위로 이어졌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지금, 폴란드의 상황은 어떨까? 여전히 폴란드에서 ‘낙태’는 불법이며 찬반 논쟁이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하지만 시위를 계기로 조직된 단체들과 네트워크 활동이 늘어나면서 폴란드의 임신중단권 옹호 진영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수십만 폴란드 시민의 서명과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1989년 공산주의 몰락 후 새 체제의 구축 과정에서 강탈당한 임신중단권을 되찾기 위한 운동은 근 몇 년 사이 폴란드에 다시금 부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요크대학교 여성 연구센터의 페미니스트 저널 ‘Cultivate’에는 검은 시위 이전의 폴란드 임신중단권 운동을 분석한 연구가 실렸다(☞관련 자료 : Before the Czarny Protest: Feminist activism in Poland). 저자인 나르코빅츠 박사는 검은 시위가 있기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낙태 합법화 운동이 대중의 무관심과 페미니스트 운동 진영 안에서의 동력 확보 실패로 쇠약해지고 있었음에 주목했다. 그녀는 죽어가던 운동의 지평을 변화시킨 요인에 초점을 두고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 자료는 2011년부터 2012년까지 1년 동안 폴란드의 임신중단권 옹호 진영(소위 ‘pro-choice’) 활동가들을 인터뷰한 결과를 활용했다. 인터뷰 참여자는 모두 여성이었고 대부분 30~40대였으며 교육받은 중산층으로 다양한 NGO(페미니스트, 학술 및 정치단체 포함)에서 활동하는 이들이었다. 또한 저자는 인터뷰 이외에도 페미니스트 이벤트와 미팅, 행진에 참여하여 본인이 직접 경험하고 관찰한 기록들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저자는 분석 결과를 종합하면서, 검은 시위 이전의 임신중단권 운동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거리 페미니즘의 쇠퇴’를 지목했다. 낙태 합법화 법안을 입법 단계에 올려놓기 위해 필요한 10만 명의 서명은 참여자들의 직접 수기를 바탕으로 수집해야 했다. 그런데 1990년대에 임신중단권을 옹호하며 거리로 나섰던 당대의 활동가들이 은퇴를 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서, 활동의 장소는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대거 이동했다. 또한 낙태를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폴란드 전역에 팽배하면서 운동가들은 서명을 받기위해 거리에 나가는 것을 주저하게 되었다.

“거리로 나가 서명을 받을 수 있는 인원수가 충분하지 않았어요.”
(인터뷰 참여자: Iga (가명), 30대, 활동가, 개별 인터뷰)

“저는 서명 활동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제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그러고 싶어 하는 게 보였어요. 그렇지만 좀 두려웠죠.”
(인터뷰 참여자: Aneta(가명), 30대, 여성 NGO 활동가, 짝지은 인터뷰)

그 결과, 활동가들은 지하철 역 등 거리로 나가 서명을 받기보다는 서명자들이 익숙하고 안전하다고 느낄만한 장소, 이를테면 사무실로 불러 서명하도록 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로써 임신중단권 옹호 활동가들은 자신들의 조직을 이미 알고 있고 예전부터 낙태 합법화를 지지하던 사람들의 서명을 얻을 수는 있었지만, 그 너머의 사람들에게까지 확대시킬 수 없었다.

“우리는 우리 그룹 안에서 서명을 모았어요. 우리가 개최한 컨퍼런스에는 매번 동일한 사람들이 참여했고 그 사람들은 보통 이미 서명을 한 상태였지요.”
(인터뷰 참여자: Agata(익명)와 Gizela(익명), 각각 30대, 40대, 짝지은 인터뷰)

결국 임신중단권 옹호 진영의 운동가들은 2011년 처참한 실패를 마주해야 했다. 그들은 임신중단권 반대 진영(소위 ‘pro life’)이 확보한 10만 서명을 채울 수 없었다. 이는 낙태 합법화를 위해 오랜 기간 투쟁해 온 활동가들에게 큰 실망과 패배감을 안겼다. 또한 거리 페미니즘의 부재는 페미니스트 운동 진영 내에서도 임신중단권 문제에 대한 페미니즘 운동의 헌신이 부족하다는 비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5년 만에 부활한 2016년의 임신중단권 운동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2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의 서명을 확보할 수 있었고, 그 성공의 열쇠는 거리 시위에 있었다. 온라인 활동이 오프라인으로 전환되지 못했던 2011년과 달리 ‘거리에 나온 사람들’이라는 물리적 실체가 확보된 것이다. 이 때 인터넷은 사람들을 가상의 공간에 옭아매는 도구가 아니라 거리로 나와 활동하게끔 유인하는 촉진 요소로 기능했다. 또한 2016년 시위에는 2011년과 달리 시민들의 공감과 연대가 돋보였다. 정권의 반민주적 행보에 반기를 든 다른 몇 차례의 시위에 뒤이어 임신중단 문제가 점화되면서, 검은 시위는 보수정권과 시민이 대치하는 주요 격전지로 부상할 수 있었다. 즉, 정권을 향한 대중의 분노라는 넓은 연대 아래 임신중단권 문제에 공감하는 일반 대중의 참여가 가능했던 것이다.

검은 시위 이전의 폴란드로 거슬러 올라가 도출한 이러한 연구결과는 한 국가의 임신중단권 운동이 추진동력을 거의 잃어가던 상황 속에서도 그 흐름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다른 기고 글에서 자신이 2011년 임신중단권 옹호 활동가들을 인터뷰할 때만 해도 2016년의 대규모 시위는 예상할 수도 없었고, 많은 이들의 관심사도 전혀 아니었다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폴란드의 사례는 한국을 비롯하여 ‘낙태죄’가 공고한 국가들의 사회운동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국도 일부 예외적 상황을 제외하고는 폴란드처럼 임신중단이 죄가 되는 국가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추정에 의하면, 암암리에 수행되는 인공임신중절 건수가 2010년 기준 연간 16만 8천 7백건에 달한다. 많은 이들이 실제 건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국가가 임신중단을 허용하지 않는 상황에서 안전하지 못한 임신중단에 내몰리는 여성들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협받는다. 합법적이고 안전한 임신중단이 보장되는 사회에서라면 굳이 감당하지 않아도 될 위험이다.

과연 한국에서도 임신중단 합법화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연대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폴란드보다 더 오래 전부터 낙태죄를 물어온 한국에서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반감을 줄 수 있고 또 일부에게는 큰 관심사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폴란드의 경험은 정세와 활동 방식의 변화에 따라 이 문제에 목소리를 내지 않던 사람들도 공감하고 함께 하는 의지를 가질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사회적 동력을 형성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낙태죄 위헌 여부는 헌법재판소가 결정하겠지만, 그 결정은 당대의 사회적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여성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더 큰 목소리, 더 강력한 시민적 연대를 보여줄 시점이다.

 

* 서지정보

Narkowicz, Kasia. “Before the Czarny Protest: Feminist activism in Poland.” Cultivate (2018).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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