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또 하나의 이웃, 결혼이주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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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가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때다. 어지간한 문제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런 중에도 어떤 이의 삶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새 정부가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
 
며칠 전 뉴스는 한 결혼이주 여성이 두 아이와 함께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단신으로 전했다. 그러나 건조한 기사가 전하는 세 모자의 짧은 삶은 그 기사만큼 간단치 않았을 것이다.  
 
20대 여성이라는 것, 40대의 남편과 이혼소송을 하고 있었다는 것, 아이들과 헤어질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는 내용이 기사의 전부다. 한국 땅으로 온 이후 8년이 되었다는 그 삶은 짐작만 할 뿐이다. 
 
한 때 그렇게 사회적 주목을 받던 이주여성 문제는 이제 조금 덜한 느낌이다. 객관적 통계가 있는 것도 아니니 판단할 수는 없다. 외국 여성과 혼인하는 사람이 줄어서 그런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통계청 조사로는 2011년 외국 여성과 결혼한 한국 남성은 2만 2천 명이 조금 넘는 숫자다. 아직도 많은 숫자지만 2010년에 비하면 15.3%나 줄었다. 비중으로 치면 어떨지 몰라도 숫자는 더 줄어들 수도 있겠다.   
 
그래도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 비중은 그저 ‘소수’라고 할 수 없을 정도다. 단순한 숫자로만 봐도 그렇다. 
 
최근 몇 년간 결혼한 사람 아홉이나 열 명 중 하나는 그 상대가 외국인이다. 농림어업에 종사하는 남성은 세 명 중 한 명꼴로 외국 여성과 혼인했을 정도다. 결혼으로 이민한 여성은 귀화한 사람까지 합치면 21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인종으로는 비교적 동질적이었던 한국 사회가 ‘다민족 사회’로 변화하는 것은 처음 겪는 큰 도전이다. 적응은 아직 진행 중이고, 본격적인 문제는 시작되지도 않았다. 제일 먼저 이주민이 겪는 문제가 조금씩 드러난 정도다.      
 
지금까지 나타난 문제만으로도 힘에 겹다. 그만큼 준비가 덜 되었던 탓이다. 이주는 어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여러 문제를 골고루 겪게 만든다. 결혼이주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는 가장 직접적인 것일 뿐이다.      
 
건강이라는 시각에서 봐도 이들의 삶은 팍팍하다. 우울증과 가정폭력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결혼이주라는 사회적, 문화적 조건이 만들어낸 전형적인 건강문제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지, 앞으로 건강 문제는 더욱 많아지고 복잡해질 것이다. 
 
문제의 원인도 중요하지만, 이들이 건강문제를 제 때 잘 해결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도 꼭 같이 중요하다. 흔히 그렇듯, 원인과 해결은 공통의 요인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들을 둘러싼 사회적, 경제적 요인이 핵심적인 조건으로 작용한다.     
 
2012년 차수진의 서울대학교 보건학석사학위 논문(여성결혼이민자의 미충족 의료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보면 이들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일이 많다는 것이 잘 나타난다. 결혼이주여성 중 10.2%는 지난 1년간 의사의 도움이 필요했는데도 병원에 가지 못했거나 중도에 치료를 포기한 경험이 있었다. 
 
예상대로 가구의 사회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을 때 미충족 필요가 많았다. 가정 형편이 나쁠수록 필요할 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소득이 300만원 이상인 가구에 비해 100만원 이하면 미충족 필요가 6.8배 많았다. 배우자의 교육수준이 낮을수록 미충족 필요도 많다. 
 
주목할 것은 건강보험 가입자보다 의료급여 대상자의 미충족 필요가 많았다는 점이다. 제도의 취지가 잘 살아있다면, 건강보험보다는 의료급여가 더 많은 도움이 되어야 한다. 직접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적고, 따라서 미충족 필요도 적어야 당연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건강보험 쪽의 미충족 정도가 낮았다. 의료급여 대상자의 소득이 낮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소득이 적은 것이 더 큰 문제이므로, 의료급여라도 의료 이용을 막는 장애물이 다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결혼이주여성의 건강은 사회적 요인에 ‘이주’가 보태져서 만들어내는 결과물이다. 빈곤, 노동조건, 농어촌이라는 지리적 여건, 이질적 문화와 언어 등이 함께 작용한다. 
 
따라서 이들의 건강에는 ‘사회적 결정요인’이 중요하다는 통합적 시각이 필요하다. 좋은 의도라고는 하나, 무료 건강검진이나 순회 진료와 같은 단발성 서비스를 벗어나야 한다.  
 
한 마디로 구조적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소득과 취업, 교육, 지역 개발, 문화 등이 같이 개선되어야 건강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사회적 요인을 포함하는 통합적 정책이 아닌 한, 보건과 의료사업은 미봉책 이상이 되기 어렵다. 가정폭력과 그것의 해결 방법을 생각하면 건강 문제의 구조적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 쉽다. 
 
미시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보건정책이나 사업에서는 이미 현실이 된 다양한 인종과 언어를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질병관리본부는 이미 2008년에 중국어, 베트남어 등 7개 국어로 예방접종 자료를 번역하여 배포했다. 통역을 배치한 보건소와 병원도 있다. 
 
‘문화적 감수성’은 비단 말이 통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인종과 언어가 다양한 사회에서는 건강에 문화를 고려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최근 들어 ‘사람을 중심에 둔(people-centered)’ 보건의료를 강조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하다. 언어 이외에도 습관, 종교, 인간관계, 가치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한국적 상황을 반영한 또 다른 과제가 자녀를 기르는 것과 교육 문제이다. 영유아시기의 양육, 보육, 교육이 인지능력을 좌우하고 이후의 교육성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정설이 된지 오래다.  
   
뿐만 아니라 이 시기를 어떻게 보냈는가에 따라 건강도 평생 영향을 받는다.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 모두 그렇다. 간접적으로는 인지능력이 영향을 미친다. 세계보건기구가 건강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가장 강조하는 것 중 하나도 이 시기의 불평등 해소다. 
 
초중등 교육도 사정이 나쁘기는 마찬가지다. 2012년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결혼이주여성이 기르는 자녀들의 초등학교 취학률은 78.2%, 중학교 취학률은 56.3%에 머물렀다. 고등학교 취학률은 35.6%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수치는 전체 취학률의 약 3분의 2 수준이라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이 가진 의미로 볼 때 빈곤이 대물림될 가능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빈곤의 대물림은 곧 건강과 질병의 대물림이기도 하다. 
 
다시 강조하지만, 결혼이주여성(그리고 그 가족)의 건강은 단지 의사나 병원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결정요인이 더 중요한, 따라서 사회적 맥락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통합적 사회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물론 정책은 한국 사회가 이주와 이주자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결정적으로 달라진다. 한국 사회에서 이주와 이주민을 보는 눈은 여전히 도구적이다. 그리고 다분히 인종적이다. 
 
이제는 한국 사회가 이 문제에 접근하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그것은 결혼이주여성 역시 가치 있고 존엄한 삶을 살아갈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들의 건강 역시 (도구적 관점이 아니라) ‘건강권’과 ‘건강 정의’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새 정부는 이들에게 무슨 희망을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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