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협동조합에 거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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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기본법이 1일부터 발효되었다. 금융과 보험은 아니지만, 5명 이상만 모이면 무슨 협동조합이든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동안은 농협이나 수협 등 8개 분야만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었다.
 
때맞추어 다양한 협동조합이 생긴다는 소식이 들린다. 대리운전협동조합 같은 것이 그 예다. 정부는 2017년까지 1만 4천여 개의 협동조합이 설립되고 종업원 수도 많으면 5만 명 가깝게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사람들의 관심은 우선 경제 효과에 쏠린 것 같다. 작은 사업체가 많아지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한다. 고용이 늘어날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이 넘친다. 
 
물론, 한편으론 지나친 기대를 걱정하는 소리도 들린다. 동네 빵집 대여섯 개가 뭉쳐 협동조합이 되면 재벌 빵집과 경쟁할 수 있다?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의 시대? 뜻은 알겠으나 조금 지나친 것 아닌가 싶다.  
 
조금 관심이 덜 하지만, ‘사회적’ 협동조합도 이 법을 통해 공식화되었다. 아예 따로 규정을 두었는데, 협동조합 중에 공익 성격이 강한 비영리 조합을 가리킨다. 지역사회와 주민들을 위한 사업 또는 취약계층에 사회서비스나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업 등의 ‘주(主) 사업’이 사업의 40% 이상 되어야 한다. 
 
협동조합, 특히 사회적 협동조합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는 제법 익숙하다. “협동조합은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통하여 공동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필요와 희망을 충족시키려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율적 결사체이다.” 1995년 국제협동조합연맹이 밝힌 정의이자 가치 지향이다. 
 
이런 가치이자 목표를 건강과 보건의료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어떤 가능성이 있을까? 무엇이 좋아질 수 있을까? 마침 법이 만들어진 때에 협동조합을 생각해 보는 이유들이다. 
 
사실 보건의료 분야는 이미 협동조합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의료생활협동조합(의료생협)이 그것이다. 1994년에 안성의료생협이 처음 생긴 이후 현재까지 13개의 의료생협(한국의료생협연합회 소속)이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의료생협발기인회도 몇 개 있으니 보기에 따라서는 이미 적지 않은 숫자가 활동 중인 셈이다. 
 
의료생협이 지향하는 가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법이 새로 생겨 앞으로 달라지겠지만 여기서는 ‘의료생협’이라고 한다).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된다는 것이 가장 큰 뜻이다. 
 
현재 대부분 의료생협이 의원(한의원, 치과 포함)을 운영하고 있는데, 조합원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운영하는 것은 여기서 가장 잘 드러난다. 예를 들어 의료인력을 구하는 것이나 재정을 운영하는 데에 조합원들의 의사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의료생협은 굳이 따지면 사립이다. 하지만 어느 한 개인이나 법인이 소유하고 운영하지 않는다. 자조, 협동, 연대와 같은 가치를 중심으로 한 자발적 조직, 그 조합원이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보건의료 공급구조는 크게 국공립과 사립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의료생협은 이렇듯 이분화된 보건의료 공급구조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려고 한다. 조합원 전체가 참여하여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것을 지향하는 만큼, 과거의 틀을 벗어난 소유와 운영구조를 시험하는 중이다.   
  
의료생협의 가능성은 이러한 민주적 소유와 운영구조에서 나온다. 자발적으로 모인 조합원들이 의료생협의 지향과 실천을 결정한다면, 국공립이나 다른 사립기관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일 것이 틀림없다.   
 
첫째, 보건의료의 영리 추구가 크게 약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좁게 보더라도 의료생협은 조합원의 필요와 희망을 채우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활동을 통해 영리를 추구할 이유는 없어진다.
 
영리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희망은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순진한 것일지 모른다. 협동조합 역시 자본주의 경제활동의 큰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다. 보건의료는 이미 확립된 국가제도와 체계의 영향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의료생협이 “바닥을 향한 모두의 영리 경쟁”에 브레이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은 여전히 유효하다. 도덕적 다짐이나 비난이 아니라 소유와 운영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영리 추구의 고리를 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보건의료의 내용과 형식이 좀 더 ‘민주화’되는 데에 보탬이 될 것이다. 다시 보더라도 협동조합의 정신은 조합원의 필요와 희망을 충족하는 것에 있다. 그들이 필요로 하고 희망하는 것은 본질에 접근할수록 현재의 ‘제도권’ 보건의료를 훌쩍 뛰어 넘을 가능성이 크다. 
 
의료생협이 지향하는 것은 전문가가 정의하고 거대한 기관이 규정한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다. 조합원과 지역 주민이 스스로 필요한 보건의료를 규정하고 그것을 어떻게 ‘생산’하고 이용할지 역시 스스로 결정하고자 한다. 새로운 모양과 방식의 보건의료가 얼마든지 창조될 수 있다. 
 
물론 이 또한 낙관할 수 없다. 보건의료에서 전문가의 역할과 그 영향력은 아주 넓고 강하다. 의료생협의 조합원이라 하더라도 의료의 전문 영역은 거의 전적으로 전문가에 의존하기 마련이다. 이런 의존성은 흔히 전문가가 ‘권력’을 독점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결과적으로 조합원의 필요와 희망에 바탕을 두기보다는 전문가가 규정하는 의료가 되기 쉽다. 뿐만 아니다. ‘오염’되어 있는 비전문가의 의식 또한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을 모두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는 현실의 제도적 틀을 뛰어 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세 번째는 보건의료를 ‘생산’하는 방식이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이다. 현재 의료기관이 보건의료 서비스를 생산하는 모습은 대공장에서 상품을 생산하는 것과 많이 닮았다. 조직, 과정, 관리의 측면에서 모두 그렇다. 
 
그러다 보니 일하는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소외’를 겪는다. 하긴 어느 노동자든 그렇지 않을 수 있을까. 노동에서 성취와 보람을 얻는 것이 아니라 피로와 소진, 좌절을 경험한다. 
 
꼭 생산자협동조합이 아니라도 보건의료의 새로운 생산방식은 협동조합이 만들어 가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조합원이 직접 생산을 담당한다면, 그 책임과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그렇지만 저절로 이루어질 리 없다. 다른 것과 비교하더라도 더욱 힘든 과제일 가능성이 크다. 민주적 참여와 운영이 새로운 생산방식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협동조합이 조직 이기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면 생산은 오히려 ‘착취’의 원천이 될 가능성도 있다.  
 
앞에서 말한 모든 불안은 협동조합이 얼마나 ‘공공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수렴된다. 공동의 소유와 필요, 참여, 자발성은 저절로 공공의 이익과 공공선, 개방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협동조합에 주어진 어려운 도전이자 아슬아슬한 긴장이다.   
지금도 상당한 수의 의료생협이 활동 중이지만,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것이 되려면 아직 부족하다. 우선 어느 정도 이상의 크기(숫자와 비중)가 되어야 한다. 새로운 법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협동조합이 확대되어 새로운 전망이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다른 무엇보다, 협동조합의 본질인 민주적 참여가 건강과 보건의료에 새로운 기풍을 불러올 수 있다. 나아가 한국의 건강과 보건의료 문제를 근본에서 해결해 나가는 데에 실마리 구실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기본원리와 가치에 충실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특히 도전과 긴장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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