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처장께서 성균관대 약학대 정교수가 된 이후부터 현재까지 약 3년간의 연구용역 현황 자료만 추렸는데도 55건 65억5000만원의 연구를 수행했다”며 “그중 43개가 제약사로부터 수주받은 연구다. 이렇게 받은 연구비만 36억원 수준” (기사 바로가기)
한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신임 식품의약품처장을 두고 한 말이다. 사실이라 전제하면, 여러 가지가 참 놀랍다. 이 분야 전문가라 하더라도 이 정도인지는 알지 못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한 해에 거의 20건 가깝게 용역 연구를 할 수 있다는 능력(?), 한 건에 평균 1억원이 넘는 연구비, 제약사가 쓰는 엄청난 돈,…무슨 연구를, 어떻게, 왜 하는가?
그 ‘관계’가 더 궁금하다. 우연히 드러난 제약과 의료산업, 대학의 숨은 관계라고나 할까? 아, 한국의 제약산업이 이렇게 움직이는구나, 대학과 교수와 산업이 이렇게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구나, 그런데 그 교수가 이제 식약처장이 되었다. 제약사를 좌지우지할 권력을 쥐고.
관계로 치면 제약과 약학대학에만 관심이 가는 것이 아니다.
국내 법무법인(로펌)들이 헬스케어 분야를 미래 먹거리로 삼으면서 관련 전문가 영입에 적극 나서고 있다. 김앤장과 광장, 율촌 등에 이어 다른 대형로펌들까지 헬스케어 전담조직을 꾸려 앞 다퉈 경쟁에 합류하고 있는 모습….(중략)…대표적인 인물은 고문으로 합류한 OOO 전 청와대 고용복지수석….복지부 약무식품정책과장, 보험연금정책본부장, 보건의료정책실장, 기획조정실장에 이어 차관까지 역임한 엘리트 관료 출신이다. 여기에 O 전 수석과 호흡을 맞추는 변호사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OOO 전 법무지원단장이 충정에 합류했다. (기사 바로가기)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닌 고질병이긴 하다. 이 분야만 그런 것도 아니다. 고위 경제 관료가 재벌기업에 가고 장군은 방산업체에 취직해 로비스트가 되는 지경이 아닌가. 이 정도는 약과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의구심을 지우지 못한다. 전직 고위관료와 공공기관 간부가 로폄에 가서 무슨 일을 하겠는가?
당사자도 할 말은 있을 터, 퇴직 관료는 “우리도 생계수단은 있어야 하지 않느냐?”며 개인의 경제를 핑계로 삼을 것이다. 얼마나 궁색한 변명인지는 더 말하지 않는다. 주로 어떤 관료들이 퇴직 후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지 보면 안다.
그 말 많은 공정성은? 모든 국민이 외울 정도가 되었다. “어떤 경우에도 공정성을 해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해당사자도 법률적 조력을 받을 권리는 있지 않은가?”. 그때의 공정성이 무엇을 뜻하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대놓고 편들지는 않는 것? 돈을 받지는 않았다는 것?
하다 보면 아예 노골적인 부정과 부패 구조가 끼어들기도 한다. 물론 그 ‘연줄’과 ‘인맥’과 ‘네트워크’가 끈질기게 개입한다. 이어지는 기사를 보시라. “연구중심병원에 선정되기 위해”라니?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찰 퇴직 후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가천대 길병원의 횡령·배임 사건 ‘해결사’로 나서 거액을 수수한 것으로 경찰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중략)…앞서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가천대 길병원이 보건복지부에서 추진하는 연구중심병원에 선정되기 위해 복지부 고위공무원에게 거액의 뇌물을 제공했다는 첩보를 입수해 수사를 진행해 왔다. (기사 바로가기)
그 어떤 결정도 마찬가지다.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공공이든 민간이든, 돈이 많든 적든, 사람이 비공식으로 미치는 영향력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결정에 은밀하게 영향을 미치려면, “평소에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날 갑자기 무슨 부탁을 할 수야 없지 않는가?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사회적 과제도 달라진다. 이 일에서는 ‘개인 윤리화’가 첫 번째 경계 대상이다. 한 개인이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윤리적인지, 얼마나 큰 이익을 얻는지, 이 또한 중요하지만 부차적이다.
구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무엇을 결정하고 판단하는 데는 한 개인이 아니라 ‘구조’로서의 이해관계자 네트워크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추세적 변화가 더 큰 문제! 보건의료가 산업이 되고(산업화) 영리 추구가 더 강력해지면서(영리화), 이해관계자의 네트워크(망)가 더 공고해지는 중이다.
이해관계의 구조는 이제 어디에도 있고 누구도 놓치지 않는다. 한 개인이 지금 어떤 처지에 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노자의 말씀을 일부러 오용하면 이런 꼴이다. “하늘의 그물코는 넓고 넓어서 구멍이 숭숭 뚫린 것 처럼 보이지만 무엇 하나 놓치는 법이 없이 촘촘하다.” 의료산업과 영리는 지금 모든 당사자에게는 하늘의 그물코와 마찬가지라는 점.
다시 말하지만 이해관계 ‘네트워크’와 그 구조가 핵심이다. 오해하지 마시라. 이해관계란 반드시 부정과 부패가 아니며, 단순한 친소관계도 아니다. 학연, 지연, 혈연도 넘는다. 지식, 정보, 의사소통을 통해 공통의 가치와 지향을 형성하는 것이 네크워크의 본질이다. 연구용역비와 ‘사소한’ 접대보다 ‘정치경제적 공동체’가 이해관계의 핵심에 있다는 것.
그러니, 개인 윤리는 필요하되 길게 말할 것이 없다. 다만 몇 가지만. 공적 영역에 참여하는 사람 스스로 공정성을 믿지 말라. 직업적으로 공직자가 되거나 공직자였던 사람은 개인 차원에서 더 주의해야 한다. 가장 위험한 참여자는 스스로 ‘중립’임을 주장하거나 믿는 사람이다. 이들은, 다른 것은 다 그만두더라도, 모르는 사이 무슨 이해관계를 대변하지는 않는지 스스로 물어야 할 것이다.
사실 개인 윤리보다는 공적 의사결정 구조가 더 힘이 세다. 구조를 공공화하고 민주화하는 것을 두고두고 과제로 삼아야 할 이유다. 식약처장이, 또는 식약처 공무원끼리 중요한 이해관계가 걸린 결정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내버려 두면 안 된다. 보건복지부나 심평원이 하는 결정을 누구나 재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혹자는 정책이나 결정의 영향을 받는 국민, 시민, 소비자, 환자도 다른 편 이해당사자라 할 것이다. 개별적 이익을 대변하면 이 말이 맞지만, 사적 영역을 넘어 공적 가치를 주장하면, 이들은 이해당사자가 아니라 공적 주체다. 공적 주체는 더 강해져야 한다.
공적 주체가 정책을 감시하고 결정을 들여다보는 것, 공공화가 이해관계 네트워크를 무력화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거대 로펌이 누구를 끌어들이는지를 보면, 사법부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절감한다. 공적 주체가 이해관계자의 권력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해관계자 정치를 극복하는 공적 주체의 정치를 촉진하는 것, 그중에서도 결정의 공공화와 민주화가 끝내는 윤리를 고민하는 개인까지 ‘구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