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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래 일하고, 더 적게 받고, 더 아픈데 이게 공정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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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이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

 

‘새벽배송’이 한동안 소셜미디어의 타임라인을 메웠다. 소비자의 편리함과 노동자의 안전보건 사이의 균형이 어디인지를 둘러싼 논쟁이었다. 택배 노동의 과중함, ‘30분 배달제’ 같은 빠른 배송 압박이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한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알려져 있기 때문에 가능한 논쟁이었다 (관련기사: 사람 잡는 피자 30분 배달제’, 한국에만 있는 비극, 빨리빨리 고객님^^ 죽더라도 갈게요ㅠㅠ). 인공지능 기술과 소비자 선호의 최적 조합이라는 미사여구로 포장된 긱 이코노미(Gig Economy) 하에서, 비표준적 근로시간 형태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렇게 변화하는 노동환경에서 어떻게 노동자를 보호할 것인가 대책을 마련하지는 못할망정, 탄력근로제 산정 기간 연장을 추진하고 있다 (관련기사:탄력근로제, 외국은 어떻게 운영하나, 재벌청부입법이 과로사회 만든다).

 

교대근무나 야간근무, 주말근무, 대기근무, 장시간 노동 등 여러 비표준적 노동 시간이 노동자의 안녕과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노동에 대한 수요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비표준적 노동 시간에 대한 연구들은 남성노동자에만 초점을 맞추거나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젠더는 노동이 조직되고 경험되고 보상되는 방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젠더는 직종분리, 직업지위, 상병, 소득 불평등뿐 아니라 직무에 대한 태도와 행동, 사회적 관계와도 관련이 있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연구팀이 최근 국제학술지 <지역사회건강과 역학 Journal of Epidemiology and Community Health>에 발표한 논문은 영국에서 비표준적 노동이 계속 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며, 이것이 성별에 따라 정신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논문: “장시간노동, 주말근무 그리고 남녀에서의 우울증상 : 영국인구기반조사에서 알아낸 사실들”)

 

연구팀은 영국 가구추적조사(UKHLS) 참여자 중 자영업자 혹은 피고용 상태인 16세 이상의 남성 11,215명과 여성 12,188명의 자료를 분석에 포함시켰다. 평균 노동시간은 1주일을 기준으로 ① 표준 전일제 (35-40시간), ② 장시간 노동 (41-54시간), ③ 초 장시간 노동 (55시간 이상), ④ 파트타임 (35시간 이하)의 4가지로 분류했다. 우울증상은 12항목의 ‘일반 건강 설문(GHQ-12)’을 이용하여 0점(최소 증상)부터 36점(최대 증상)까지의 합산점수로 측정했다. 그리고 연령과 결혼상태, 교육수준, 가구 내 아동의 숫자, 가구소득, 건강행태, 만성질환, 사회심리적 노동조건(소득 만족도, 직업만족도, 노동의 육체성, 업무자율성)처럼 우울 증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3의 요인들을 함께 측정했다.

 

분석결과, 예상했던 대로 장시간 노동과 주말 노동을 할 경우, 성별과 나이, 직종, 사회심리적 노동조건을 다 고려하더라도 표준 전일제 노동에 비해 우울 증상이 많아졌다. 그런데 성별에 따라 양상이 조금 달랐다. 주말 노동의 경우, 여성들은 노동시간이 늘면 우울증상이 늘어나는 반면, 남성들은 사회심리적 노동조건이 좋다면 주말 노동의 부정적 영향이 줄어들었다. 여성의 경우, 표준 전일제 노동에 비해 초장시간 노동, 주말 대부분 또는 모두 노동할 때 우울 증상이 많았고, 남성은 파트타임 노동일 때 우울증상이 많았다. 이전의 연구들은 건강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파트타임으로 일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한 바 있다.

 

연구팀은 비표준적 노동시간과 우울증상의 발현에는 세 가지 기전이 작동한다고 해석했다. 첫째, 장시간 노동이나 주말 노동같이 표준적 근로시간 형태를 벗어나는 노동 자체가 우울 증상을 가져올 수 있다. 둘째, 일의 젠더화된 속성 때문일 수 있다. 주로 남성이 많은 일에 여성이 종사하는 경우 남성처럼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한편 여성이 주말에 하는 일은 저임금 서비스 직종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일은 전형적으로 직업만족도나 자율성이 낮고 소득 불만족도 크다. 더욱이 대중이나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라면 우울증상이 더 높아질 수 있다. 셋째, 초장시간 노동하는 여성들의 우울증상은 유급노동에 가사노동이 추가되는 이중부담과 관련될 수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여성은 무급가사노동과 돌봄을 위해 남성보다 더 많은 시간을 쓴다. OECD 자료에서도 유급노동과 무급가사노동 시간을 합산한 총 노동시간은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더 길다.

 

이 연구는 여성의 노동과 삶이 처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지난 몇 십년간 여성, 특히 자녀가 있는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3배나 증가한 것은 사회적 발전으로 꼽힌다. 그러나 여성들의 유급노동은 사회적으로 낮은 보상을 받고, 직업자율성이나 만족도가 낮은 일자리에 근무하는 비중이 높다. 더욱이 불공정한 가사분담 책임은 여성들의 정신과 신체 건강을 악화시키고 있다(관련논문 :노동시간과 여성의 신체적 건강의 관계:인지된 불공정성과 가사노동시간의 역할, 나에게 불공정하거나 배우자에게 불공정한 : 남녀의 가사형평성 인식 그리고 정신과 신체 건강에는 어떻게 연관되는가).

 

특히나 한국 여성은 남녀임금격차(35.3%), 정규직의 여성비율(37%), 남성의 가사노동참여 수준(여성의 1/5), 저임금 비율(35%) 같은 지표에서 OECD 국가 중 최악을 기록하고 있다. 여성들이 건강과 교육부문에서 이룬 성취는 취업과 결혼을 거치며 거의 사라진다(관련자료 및 기사 : e-나라지표, 맞벌이 아내의 가사노동시간 남편보다 5배나 길다, 한국여성 35% 저임금OECD 1, [팩트체크] 한국 성평등, 118vs 10진실은?).

 

오늘 소개한 논문에 비추어본다면, 지금 한국사회에서 일하는 사람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필요한 것은 장시간 노동과 휴일근로의 최소화라는 노동시간의 양적 감소만이 아니다. 가정과 공적 공간에서의 공정한 노동 시간 분배, 일자리 질에서의 성별 격차 해소 또한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오히려 탄력근로제를 확대하겠다니, 정말 바보 같은 뒷걸음질이다.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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