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가짜 치료제 ‘인보사’ 사태와 국가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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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알수록, 밝히면 밝힐수록, 황당하고 우울한 일이 이번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 사건이다. 그냥 ‘사건’이라기보다 ‘사고’ 또는 ‘사태’, 나아가 ‘괴담’이나 ‘참사’라고 부르려니 오싹하다.

어려운 전문용어에 현혹되지 말자. 알고 봤더니, 둘도 없는 치료제라 믿고 허가하고 처방한 그 성분이 아니라는 것이 핵심이다. 그것도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임상시험을 하는 중에 가짜라는 것이 밝혀졌다니, 이런!

 

먼저 짚을 일은 ‘실력’이 모자란다는 점이다. 비단 코오롱만 그런 것이 아니라, 허가를 내준 식약처, 검증해야 할 동종업계와 연구자, 학계, 뻔히 효과를 관찰했을 의료계, 사회적 감시를 해야 할 언론이 모두 마찬가지. 이걸 검증하거나 의심하고 밝힐 실력이 없는데 신약개발과 기술입국을 주장하니, 공허하다. 이제 ‘신약’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못할 판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허가를 내준 식약처의 책임이 무겁고 중하다. 국가당국의 무능과 느슨함이 이 지경임을 알게 된 것을 불행 중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무슨 ‘신의성실의 원칙’으로 치료제와 의료기기를 허가하는 것도 아니고, 생명을 다루는 일이 집 짓는 건축허가만도 못하니 한심하고 답답하다.

다른 모든 문제에 앞서, 식약처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능력이 있는지 묻는다. 태도가 아닌 능력과 실력. ‘우리도 몰랐다’, ‘속았다’, ‘피해자다’ 이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 국가권력과 정부가 할 수 있는 변명이 아니다.

 

관련이 있는 개인들도 책임을 져야 한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많은 개인이 크게 작게 관여했을 터, 개발, 인허가, 시판, 사용, 평가 단계에서 아무 문제가 없었을 수 없다. 공식적으로 무슨 무슨 심의니 평가위원회부터 말이 있었다고 하지 않는가?

해당 치료제를 개발하고 인허가를 받는 과정에 관여한 사람(들)에게 묻는다. 혼자 골방에서 개발하고 분석하지는 않았을 것, 아무 문제가 없을 수 없는데, 왜 이를 무시하거나 방치했는가? 뻔히 알면서 문제를 숨겼으면 최악이다. ‘생명과학’이란 말을 붙인 회사에서 그런 일만큼은 없었기를 바란다.

 

‘동료’ 평가와 감시는 제대로 작동했는지 묻고 싶다. 아무리 신기술이고 특허라도 과학기술은 공중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많은 연구자와 전문가 중 그 누구도 과정과 결과를 의심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알면서 번거럽고 괴로운 일이라 피했으면 그 자체로 큰 문제다. 아예 짐작하지 못했다 해도 그 또한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과학과 기술을 검증할 만한 ‘공동체’가 없다는 뜻이니, 앞으로도 비슷한 사고가 반복될 수 있다.

 

책임을 공유할 개인들은 또 있다. 3천 명이 넘는 환자가 이 주사를 맞았다면, ‘특효’라고 처방했을 그 많은 의사는 무얼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엉터리 치료제가 효과가 있을 리도 없는데,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제약사가 말하는 것을 그대로 믿었단 말밖에 되지 않는다.

가짜임을 무슨 수로 아느냐고? 현장에서 약과 치료제의 효과를 검증하고 의심하는 것이야말로 의사의 둘도 없는 역할이자 의무가 아니던가. 그 오랜 기간 누구도 ‘효과없음’을 알아차려 지적하지 않았다는 것은 환자의 위험을 감지하는 최일선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국가권력과 개인의 문제를 지적했지만, 사태를 초래한 근본원인은 ‘체제’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알게 모르게 정부당국을 압박하고, 개인의 이익과 손해에 영향을 미치며, 문화와 가치지향을 한쪽으로 몰고 가는, 체제의 힘.

 

우리가 늘 주장하는 대로, 그 체제는 바로 신자유주의적 시장만능 경제다(‘시장독재’가 더 정확한 표현일까?). 경제성장과 영리를 지향으로 삼고, 혁신, 신기술, 새 상품으로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는 체제. 여기서는 생명, 안전, 건강조차, 그리하여 삶의 가치와 의미까지, 부차적이고 종속적이다. 아니 관심과 눈길이 닿지 않는다.

이 치료제를 개발, 인허가, 시판, 처방하는 과정에서, 단 한 번이라도 “환자의 건강에 어떤 도움이 얼마나 되나?”를 진지하게 물었는지 의심스럽다. 소홀했다면, 개인의 책임과 자세 이상으로 체제가 사회와 우리 모두를 사로잡고 있다는 뜻이다.

 

더 중요한 것. 의식하지도 못한 채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체제의 힘이고 권력이다. 수익을 내고 규제완화에 동참해야 하면, 저절로 “이건 큰 문제가 아닐거야”라고 생각과 판단이 기울어지는 것은 잠깐이다. 기업, 정부, 시민사회를 가릴 것 없이, 우리는 늘 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 체제는 사건 이후에도 완강하게 작동한다. 허가가 취소되지 않게 노력한다는 제약사와 책임을 모면하려 ‘분투’하는 정부당국, 주가와 바이오산업의 위축만 걱정하는 경제, 이들이 진정 국민의 안전과 건강에 관심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 당신들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가? 무엇을 목표로 무엇을 고치려 하는가?

‘촛불정부’라고 자임하는 이 정부가 먼저 나서 반생명과 불건강의 위험을 쌓으니 걱정이 더 크다. 규제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지금 ‘인보사’를 허가할 때와 비슷하게 부처를 압박하는 것은 아닌가?

기업과 개발자에게 그릇된 시그널을 보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참신하고 매력적이면, ‘4차 산업혁명’에 맞으면, 당장 성장, 일자리, 수출에 보탬이 되면, 국가가 밀어주겠다는 것이 지금의 자세다. 규제, 검증과 평가, 인허가는 필시 이 압박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 사태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이 일은 그야말로 불행한 스캔들로만 기억될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 되려면, 체제 차원의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본질을 물어야 하고, 이를 내면화한 우리 자신에게도 물어야 한다. 이 질문만으로도 체제를 조금은 흔들 수 있다고 믿는다.

신약과 치료제를 개발하는 ‘일차’ 목적이 무엇인가? 이 치료제를 환자에게 처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규제를 없애고 인허가를 빨리해서, 궁극적으로 무얼 얻자는 것인가?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중요하다면, 누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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