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대책’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연이어 정신질환과 관계가 있는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자칫 다시 공포와 혐오, 차별이 퍼질 기세다. 사고나 사건보다 언론 보도가 문제라지만, 그 또한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한다.
먼저 분명히 해둘 것은 그냥 괜찮다고 뭉갤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어떤 살인과 시도도 그냥 지나갈 수 없으니, 모든 사건은 불행하고 정당하지 않다. 예방이 첫째, 그다음이 줄이는 것, 그리고 모든 피해자는 회복해야 한다. 희생자의 명복을 빌고, 가족을 비롯한 피해자들에게는 진심으로 위로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래도 점점 나아지는 점도 있으니 다행스럽다.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을 싸잡아 잠재적 범죄자로 모는 일은 줄었고, 차분하고 이성적인 반응이 늘었다. ‘전수조사’와 같은 즉흥적이고 ‘선정적’인 대책이 없는 것만 해도 어딘가. 같이 노력하면 앞으로 더 좋아지리라, 낙관한다.
그러면서도 아슬아슬하다. 그 차분함과 이성적 반응은 주로 공적 영역에서 나타나는 것일 뿐, 정신질환을 오해하고 정신질환자를 비정상으로 보는 편견은 여전하다. 겉으로는 이성적으로 보이는, ‘현실’과 ‘대책’이라는 말 속에 그 뿌리 깊은 의식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는 일, 그리고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치료하고 지원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 정부와 지역사회가 정책, 체계, 태도를 갖추는 이 모든 일은 필요하고 중요하다. 다른 방법이 없고, 대부분 사람의 의견도 같다.
우리가 관심을 두는 것은 한 마디로 ‘어떻게’다. 사실 이 모든 과제는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이 아니라 숙원에 가깝고, 기본 방향에 큰 논란도 없다. 세부 사항, 예를 들어 강제입원 등에 약간 차이가 있을 뿐, 환자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데 누가 토를 달겠는가?
‘어떻게’는 한 마디로 ‘정치적’ 질문이다. 뻔히 알면서도 재정을 투자하지 않고, 사람을 확보하지 않으며, 효과가 증명된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것. 그것을 바꾸려면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싫어도 해야 할 정도로 강한 힘이 미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정치고, 또한 정치가 해야 할 고유한 역할이다.
정치로 묻는다. 국가는 왜 돈을 더 쓰지 않는가? 더 구체적으로, 그 국가란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대통령인가? 경제부총리, 보건복지부 장관? 국회의원? 아니면, 이 모든 사람이나 조직을 모두 다 합친 그 무엇?
개인이든 집단이든, 이들이 어떤 문제에 관심을 두고 힘을 쓸 때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실제 무슨 이익이 있거나, 다음 선거에 도움이 되거나, 내 경력에 보탬이 되거나, 하다못해(?) 잘 했다는 소리라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보람이나 성취감 같은 것이 동기가 되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평범한 시민이 영향을 미치려 할 때, 또 한 가지 문제는 투자도 사람도 인권도 조치도 모두 ‘되어야 한다’로, 즉 수동태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직접 예산을 늘릴 수도, 법을 고칠 수도, 사람을 구할 수도, 체계를 만들 수도 없다. 그러니 ‘한다’보다 ‘되어야 한다’를 되풀이할 수밖에. 정치적으로는 무능하다.
능동태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요구하거나, 비판하거나, 바로 옆 사람에게 불평하거나, 그래 봐야 모두 큰 힘이 없다. ‘되어야 한다’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를 벗어나지 못한다. 형식만 능동태로, 할 수 있는 일은 수동태와 비슷하다.
부족한 예산을 탓해 봐야 예산 당국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선거 때 많은 표가 되지 않으면, 국회의원도 관심을 둘 이유가 없다. 경찰도 환자의 인권보다 책임 추궁이 더 가깝다. 성과는 빛나지 않고 어려움만 많으니, 보람과 성취감도 크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면, 앞으로도 정신보건이 체계를 잘 갖출 가능성이 크지 않다. 한쪽에서 정신보건이 나아져야 한다는 사람들이 계속 요구하겠지만,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지, 비관적이다. 분명 나아지겠지만, 더디고 힘든 과정이 될 것이 틀림없다. 앞서 낙관한 것과 다르게 이건 비관적이다.
무능함과 무력감을 넘어 시민은 무엇을 할 것인가? 정치적으로 영향을 미칠 방법이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정부와 국회의원이 귀를 기울이고 행동을 바꿀까?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하고 사람을 확보하게 하는 방법.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제라도 ‘운동’을 조직하는 일이다. 무슨 ‘연대’나 ‘협의회’ 같은 것을 만드는 것만 운동이 아니다. ‘새마을운동’이나 ‘자연보호운동’이 운동 전부라 할 수도 없다. 지식 운동도 있고 문화 운동도 있으며, 환자 운동도 존재한다. 있을 뿐 아니라, 강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운동은 더 많아지고 더 넓어지게 하는 실천이다. 아는 사람이 많아지고, 내 문제로 인식하는 사람이 느는 것. 정보, 사람, 모임, 공부, 토론, 요구, 그 모든 것이 많아지고 넓어지며 늘어날 대상, 즉 ‘운동할 거리’이다.
정신보건 운동이 모든 과제를 짊어질 수는 없겠으나,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수동을 벗어나 능동으로, 요구를 넘어 실천으로, 뭔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운동의 가장 큰 가치이고 의의다. 어떤 의미에서는 힘이기도, 권력이기도 하다.
지금 하는 일 안에서 운동을 조직할 수 있는 것도 능동적 실천의 장점이다. 우리 연구소는 연구를 통해 정신보건 운동에 참여하려 한다. 문제를 더 정확하게 파악하고, 더 나은 대안을 개발하며, 더 널리 알릴 참이다.
정치적으로는 이것이 내(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되어야, 이러면 되겠다는 대안이 손에 잡혀야, 이렇게 해야 여론이 좋고 지지를 받겠다는 생각이 들어야, 관련자가 움직인다. 비로소 관심을 기울이고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