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건강불평등의 숨은 결정요인, 차별과 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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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언덕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지난 3월 인도네시아의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부정수급을 방지하기 위해 빈민구제 지원금을 받는 집마다 붉은 페인트로 ‘가난한 가족’이라는 문구를 새기도록 했다는 소식이 큰 논란이 되었다(☞바로가기). 이토록 노골적으로 가난에 낙인을 찍을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지만, 동시에 수년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무상급식’ 논쟁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당시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학생들에 대한 낙인을 없애야 한다는 데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덕분에 보편적 무상급식이 시행될 수 있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의료급여 수급자에 대한 차별과 낙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건강보험과 의료급여를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사회경제적 약자의 낙인, 타자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까닭은 단지 이것이 당사자의 인격과 존엄성을 훼손해서만은 아니다. 최근 국제학술지 <건강심리학 Health Psychology>에 발표된 논문은 계량적 분석을 통해 차별감이 사회경제적 지위가 건강불평등으로 이어지는 과정의 매개 요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논문 바로가기: 사회경제적 불리함의 종단면적 건강 결과: 매개요인으로서 차별감)

 

연구진은 사회경제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처한 이들이 일터와 일상생활 공간에서 느끼는 차별감이 사회경제적 지위와 주관적 건강수준 간의 장기적 연관성을 매개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미국 중년 성인을 대상으로 약 17~19년에 걸쳐 추적 조사한 자료 (MIDUS 1~3차)를 활용하여 경로 분석을 시행했다. ‘사회경제적 불리함’(socioeconomic disadvantage, SED) 변수는 소득, 직업, 교육, 자산 지표를 종합하여 구성하였고, 차별감(perceived discrimination)은 ‘일터에서 인지된 불평등’과 ‘일상에서의 차별’이라는 두 가지 변수로 측정했다.

 

분석결과를 살펴보면, 먼저 사회경제적 불리함과 차별감 변수, 그리고 사회경제적 불리함(1차 조사 시점)과 주관적 건강 수준(3차 조사 시점) 간에 각각 연관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서 두 차별감 변수를 매개변수로 모형에 포함하여 분석한 결과, 주관적 건강 수준에 대한 사회경제적 불리함의 간접효과는 모두 유의했다. 두 차별감 변수가 사회경제적 불리함과 건강 수준 간의 장기적 연관성을 22.1% 설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림 참고)

차별감을 매개변수로 한 사회경제적 불리함과 주관적 건강 수준 간의 연관성에 대한 경로 모델 분석결과 (* p<.05. ** p<.01. *** p<.001.)

 

평소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인생관을 가진 경우에 차별을 과다하게 해석할 가능성을 고려하여 연구진은 부정적 정서와 신경증 변수를 모형에 포함하여 재분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한편 나이에 따른 차별감의 정도와 건강 결과 사이 연관성의 차이를 비교하기 위해 나이를 네 집단(① 35세 이하, ② 36~45세, ③ 46~55세, ④ 56세 이상)으로 구분하여 추가 분석을 실시했다. 그 결과, 나이가 적을수록 사회경제적 불리함이 커짐에 따라 더 자주 차별을 경험한 반면, 56~75세에서는 그 연관성이 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일터에서의 차별감과 주관적 건강 수준 간의 연관성도 나이가 적을수록 강하고 나이가 많을수록 약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나이가 들수록 사회 네트워크가 줄어들면서 계급과 관련된 차별에 노출되는 일이 그만큼 줄어들고, 심리적 회복력과 정서적 안정감이 증가하기 때문에 부정적 경험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또한 감소할 수 있다는 기존연구와 일치하는 것이다. 한편 일상에서의 차별감에서는 나이의 조절 효과가 유의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이 연구는 한계점도 있다. 우선 추적조사 자료의 특성상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한 이들은 조사에서 더 많이 탈락되는 편향성이 존재할 수 있다. 또한 측정된 차별감이 과연 사회경제적 지위와 관련된 것인지, 외모나 출신 지역 같은 여타 다른 특성에서 비롯된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것도 중요한 제한점이다. 그렇지만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에서 비롯된 차별감이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막연한 짐작이 아닌 실제 경험적 연구를 통해 규명했다는 점에서 이 연구는 의미가 크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건강 불평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대되면서 이를 완화하기 위한 여러 정책적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보건/복지 분야의 여러 지원정책들이 시행 과정에서 수혜자들을 낙인찍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앞서 인도네시아 사례에서처럼 이러한 정책적 차별은 부정수급을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쉽게 허용되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조장되기까지 한다. 그러나 낙인과 차별은 건강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또 하나의 주범이라는 점에서 이는 결국 스스로 정책적 효과를 반감시키는 모순적 행태에 다름 아니다.

 

* 서지 정보

Thomas E. Fuller-Rowell, et al (2018). Longitudinal Health Consequences of Socioeconomic Disadvantage: Examining Perceived Discrimination as a Mediator. Health Psychology, 37(5), 491-500.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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