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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노숙인 주거 지원’ 실험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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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보건복지부가 6월부터 지역사회 통합 돌봄(커뮤니티케어) 선도 사업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관련 기사 : ‘커뮤니티 케어’ 선도사업 6월부터 전국 8개 지자체서 시작) 노인, 장애인, 정신질환자와 함께 노숙인의 자립 지원 모델도 개발하겠다고 한다. 노숙인 자립 지원 모델은 심리 치유와 개인의 역량 강화를 통해 노숙인의 지역사회 복귀와 자립 생활을 지원하는 것이 목표다.(☞ 바로 가기 : ‘지역사회 통합 돌봄(커뮤니티 케어) 선도사업 추진계획’) 사업 참여자는 거리 노숙인이나 노숙시설에서 생활하는 이들 중 주거와 서비스 지원을 통해 지역사회 정착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노숙인 지원센터, 자활센터, 시군구 지역케어회의, 읍면동 케어안내창구를 통해 개인별 자립 지원 계획을 수립하고 자립 체험 주택이나 케어안심주택(공공임대와 서비스의 통합) 등 맞춤형 주거모델을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재원으로 자립 체험 주택 임대에 2억 원, 자립 체험 주택 개보수에 1억5000만 원, 사례관리 5000만 원으로 총 4억 원의 예산이 할당되었다.

자립 체험 주택이란, 공동 생활에 적응하기 어렵고 독립 생활을 원하는 시설 거주 생활인에게 개별 주거를 제공하여 일정 기간 독립 생활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케어안심주택은 지역사회 안에서 주거시설을 확보하여 노숙인에게 개별 주거 공간(1인 1주택)을 제공하고 사례관리사를 통해 서비스를 연계하는 방식이다. 이는 포항의 들꽃마을 공동체, 서울시 노숙인 희망 원룸 사업, 노숙인 행복하우스 운영 사례를 참고한 것으로, 2년 치의 임대보증금을 지원하되 월세(약 11~12만 원)와 공공요금은 본인이 납부하며 6개월 혹은 1년 단위 연장하게 된다. 이러한 주거 지원 정책들이 극도의 주거 불안정을 겪었던 노숙 경험자들의 건강을 향상시키는 데도 도움이 될까?

마침 지난 달 <미국건강증진학회지>에는 미국 남캘리포니아 대학 로데즈(Rhodes) 박사 연구팀의 관련 논문이 출판되었다.(☞ 바로 가기 : 영구 지원 주택으로 이주 이후 자가 평가 신체 건강의 변화) 연구팀은 노숙 생활이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조기 사망률을 높인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기에, 노숙을 끝내는데 핵심적 해결방법이 될 수 있는 영구 주택 지원이 건강을 향상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연구를 수행했다.

2018년 발간된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 보고서’는 영구적 주택 지원(PSH, 영구 맞춤형 서비스가 있는 주택)이 건강 결과를 향상시킨다는 근거가 부족함을 지적한 바 있다.(☞ 바로 가기 : The National Academies of SCIENCES·ENGINEERING·MEDICINE) 그러면서도 이러한 결과가 무작위 대조시험을 하지 않고 얻어진 것이며, 주택문제가 건강을 향상시킨다는 가설은 여전히 합리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PSH 이주를 통해 의료비 지출과 응급 입원 서비스 사용이 감소했음을 지적했다.

이 논문의 연구팀은 노숙 상황에서 PSH로 이주한 LA 성인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이주에 따른 주관적 건강 상태의 변화(전반적 건강 상태, 신체적 건강과 관련한 활동 제약)를 측정했다.

연구사업 참여자는 LA 지역 26개의 주택 공급자들과의 협력을 통해 모집했고, 2014년 8월부터 2016년 1월에 걸쳐 PSH 이주가 이루어졌다. PSH 거주는 주택과 사회서비스기관 직원의 도움으로 이루어졌으며, ‘취약성 지수 서비스 우선순위 결정 지원 도구’라는 평가체계를 활용하여 건강상태가 가장 취약한 사람을 최우선으로 이주시켰다. 참여자는 39세 이상, 영어 혹은 스페인어 사용자, 자녀를 적극적으로 돌보지 못하는 이들이었고, 주택 시설로 한 번이라도 들어온 적이 있는 사람은 참여가 가능했다. 이주 전후 5일간 421명에 대해 기초선 조사를 시행했고, 이주 3개월 시점에 405명, 6개월 시점에 400명, 12개월 시점에 383명을 조사했다.

인구학적 특성과 함께, 참여자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 목록을 만들어 최근 3개월 간 해당 목록에서 신체적․정신적 건강 관련 서비스 이용을 받고 싶지만 충족되지 않은 항목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또한 과거에 진단받은 적이 있는 만성적 신체적, 정신적 건강 문제들을 확인하고, 전반적 건강 상태에 대해 ‘매우 나쁨~매우 좋음’을 스스로 평가하도록 했으며, 신체적 건강 문제가 신체 활동과 사회적 활동을 제약하는 정도를 연속 변수로 표기하게 했다. 최종적으로는 점수가 높을수록 건강 상태가 더 좋음을 의미하도록 표준화시켰다.

분석 결과 PSH 이주 이후 주관적 건강 상태가 향상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이주 초기에 비해 3개월, 12개월에 향상되는 결과를 나타냈다. 건강 문제로 인한 신체적, 사회적 활동 제약은 6개월 이후부터 개선되어 12개월까지 유지되었다. 고연령 참여자들일수록 사회적 활동보다 신체 활동에 대한 제약이 더 많았고, 여성은 신체적 활동 제약이 더 많았다. 신체적, 정신적 건강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경우, 전반적 건강 점수가 낮아지고 신체활동 제약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었다.

이 연구는 무작위 대조시험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PSH만의 효과를 ‘입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결과는 노숙에서 PSH로 이주할 때 참여자의 자가 보고 건강 상태가 상당히 향상되며, 이러한 긍정적 효과는 영구 거주 주택에서의 첫해 동안 지속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이 연구는 전반적 건강 상태가 3개월 만에 개선되는 것에 비해 신체적 혹은 사회적 활동 제약은 이주 6개월 이후에야 개선되는 점으로 보아, PSH에서 기능성이 좋아지는 데에는 일정한 잠재기가 존재한다는 것도 짐작하게 한다.

이 연구에서 신체적·정신적 건강 관리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만성적 건강 문제가 많을수록 자가보고 건강 상태가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통합적인 건강 평가의 중요성과 더불어 PSH 내 포괄적인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 특히 만성 건강 문제를 다수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맞춤화된 서비스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서비스의 이용을 장려하고 집중적으로 사례를 관리하는 것은 모든 PSH 거주자가 건강 증진을 경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국내에서 첫발을 떼는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도 해외의 이러한 연구 사업을 참조 삼아 볼만하다. 사람 중심 접근(☞ 관련 기사 : “이런 정부사업,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되나요?“)을 통해 PSH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영구적 주택 지원과 함께 맞춤식의 집중적인 건강 서비스 제공을 확대한다면 노숙 경험자의 건강과 활동 제약을 개선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주거 불안정으로 건강을 돌볼 여력조차 없었던 이들이 비로소 건강권을 회복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서지정보
Rhoades, H., Wenzel, S. L., & Henwood, B. F. (2019). Changes in Self-Rated Physical Health After Moving Into Permanent Supportive Housing. American Journal of Health Promotion. https://doi.org/10.1177/0890117119849004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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