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병원으로 환자가 더 몰린다고 의료계가 시끄럽다. ‘문재인 케어’ 때문에 그렇다는 주장부터 터질 것이 터졌다는 의견까지 분석과 진단은 다양하지만,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진다는 상황 인식은 같다.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 한 가지는 환자와 일반인은 ‘의료전달체계’에 놀랍도록 관심이 적다는 사실이다.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는 환자들조차 잘 모른다. 혹시 ‘그들만의 문제’는 아닐까, 사회적 중요성에 대한 현실 인식부터 중요하다.
먼저 지적할 것은 의료전달체계는 갑자기 돌출한 문제가 아니라 오래 묵은 ‘숙원’이라는 사실이다. 2016년 2월 1일 <서리풀 논평>에서도 같은 문제를 짚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논평 바로가기). 우리는 지금도 이 <논평>에서 더하거나 뺄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문제가 불거졌으니 기본 원칙을 다시 확인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첫째, 이번에도 ‘의료전달체계’라는 말은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우리는 아무런 내용을 ‘전달’하지 못하는 이 말을 폐기하자고 여러 번 주장했지만, 바뀔 조짐이 없다. 의료를 전달한다는 우리말은 틀렸고 의사소통에 이바지하지 못한다. 다른 더 좋은 대안이 없으면, 최소한 ‘의료이용체계’ 또는 ‘의료제공체계’라는 말로라도 바꿔야 한다.
둘째, 의료이용체계를 개혁해야 하는 것은 틀림없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환자와 국민이 불편하고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전문가에게 급하게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자칫하면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 환자가 대도시로 빠져나가다 보니 어지간한 지역 병원은 외과 의사 찾기도 어렵다. 조금 복잡한 만성질환을 관리하느라 남해안 어느 농촌에서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다니려면, 그 불편함이 어디 한두 가지일까.
셋째, 그렇지만 한두 가지 단편적인 대책으로 짧은 시간 안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료기관의 수입이나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조금 조정하면 환자 흐름이 확 달라질 것이라는 주장에는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다. 장담하건대, 지금 설왕설래하는 대안 정도로는 “백약이 무효”다.
넷째, 개혁의 방향은 사람 중심, 환자 중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네 의원이 살아나고, 중소 병원이 곳곳에서 제 역할을 하며, 대학병원은 본래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등등은 모두 환자와 시민, 주민의 건강과 복지를 위한 ‘방법’이다. 그 자체가 최종 목표가 아니라는 뜻이다. 가지런하고 효율적인 체계도 그것만으로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궁극적 가치를 달성하는 수단이고 과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의료이용체계를 쉽게 개혁할 수 있으리라 낙관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이런 원칙을 고수하려면 변화는 더 어렵다. 개혁의 힘과 제안, 노력을 비관하고 냉소하려는 것이 아니다. 개혁이 힘든 이유가 무엇인지 과학적으로 진단하고 대안을 만들어야 한걸음이라도 전진할 수 있다. 개혁의 내용이 얼마나 좋은지보다 실제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첫째 어려움. 의료이용체계를 바꾸면 재정 흐름이 달라진다. 누군가 손해를 봐야 하면 그 누구라도 변화에 저항한다. 큰 병원이 외래 환자를 줄여야 하면? 의원의 입원실을 없애는 정책은? 앞으로 경제 규모가 되지 않는 아주 작은 규모 병원을 없애겠다면? 지역의 총 병상 수나 요양병원 개설을 제한하면?
이론적으로는 기가 막힌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하다. 적어도 현재 수준은 유지할 수 있도록 건강보험 재정으로 모든 ‘피해’ 당사자의 수입을 보전하면 된다. 실제로는? 보험 재정이 폭증할 터이니, 당연히 이런 방안은 불가능하다. 의료이용체계는 수많은 사람의 경제적 이해관계, 나아가 호구지책이 달린 ‘경제’다.
둘째 어려움. 환자들이 개혁에 동의할까? 모든 새로운 의료이용체계는 환자를 규제하는 쪽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규제와 경제적 유인 동기를 병행하면 된다고 하지만, 효과를 보기에는 문화가 가로막는다.
환자들이 병원과 의사를 선택하는 것을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돈과 시간을 쓰면서 큰 병원에 몰리는 데는 그만한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한다. 혹시 생명이 달린 문제일 수도 있는데, 본인 부담을 좀 크게 조정한다고 믿을 수 있는 병원과 의사를 바꿀까? 의료이용체계는 또한 ‘문화’다.
셋째 어려움. 나쁜 의료이용체계가 왜 문제인지, 그것이 불편과 고통의 원인인지, 사람들과 환자와 유권자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의료전달체계라는 말도 잘 모르는데, “당신들을 위해 이 제도를 고쳐야 한다”라는 말에 동의하는 것은 턱도 없다.
변화를 요구하고 추동하는 힘이 사람들에게서 나오지 않는 한, 정치가 관심을 가질 이유가 있을까? ‘국정’ 차원이 되어야 작은 변화라도 가능하고, 선거 때 표가 달라질 정도는 되어야 뽑히려는 사람들이 움직인다. 정책은 그저 현상으로 드러나는 문제를 미봉하는 수준에 머물 뿐이다. 그래서 의료이용체계와 그 변화는 ‘정치’라고 해야 한다.
넷째 어려움. 앞의 모든 어려움이 해결되어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해관계가 달라지고 문화가 달라지며 정책과 정치의 당사자도 바뀐다. 긴 시간 동안 변화를 조정, 관리, 촉진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현재는 그런 주체가 없다. 다른 의미에서의 정치적 어려움이다.
이처럼 어려움이 많으니, 흔히 그런 것처럼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될까? ‘시장’에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사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현상과 문제는 이미 시장이 작동한 결과다. 간단하게 표현하면, 크고 유명한 수도권 대형 병원들이 시장에서 의원과 중소 병원을 이긴 결과 지금 작동하는 ‘시스템이 없는 시스템’이다.
시장이 작동하는 영역에서, 이미 그 권력관계가 명확한 상황에서, 시장을 이길 방법은 많지 않다. 가격을 좀 낮춘다고 처음 보는 브랜드의 전자제품을 사지 않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환자들의 문화와 믿음이 그대로면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 효과를 보기는 더 어렵다.
그냥 시장에 맡기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최종적으로는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는 점이 어렵다. 다만 그 개입에도 조건이 있으니, 장기적이고 종합적이며 정치적이어야 한다. 강조하지만, 장기, 종합, 정치에 주목해 주시기 바란다.
사실, 의료이용체계 개선을 위한 국가 개입은 전체 보건의료 개혁과 동의어다. 따로 떼서 일차의료 한 가지를 강화하려 해도 인력, 시설, 재정, 서비스, 관리와 정책이 다 붙어야 한다. 교육과 지방자치제도까지 같이 손을 봐야 할지도 모른다. 의료이용체계 개혁이 곧 전체 체제 개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너무 멀다고? 그럼, 개혁의 동력을 확보하는 일 그리고 어떤 개혁인가 구상하는 일이 가장 먼저다. 딱 한 가지만 고른다면, 오늘 우리는 이 단계의 과제를 누가 할지, 또는 누가 해야 하는지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