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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보건의료 빅데이터’는 정말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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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음(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지난 17일, 공공적 목적의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자에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립암센터, 국민건강보험공단, 질병관리본부 4개 국가기관의 데이터를 제공하는 ‘보건의료 빅데이터 플랫폼’ 홈페이지가 공개되었다. 연구자가 사회적으로 활용 가능한 주제의 연구를 위해 필요한 공공 데이터를 신청하면, 위원회가 3단계의 심사 절차를 거쳐 비식별화된 데이터를 제공하게 된다. 이 플랫폼은 보건당국이 2017년 3월 보건의료 빅데이터 추진단을 꾸린 이래 처음으로 선보인 사회적 논의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보건당국의 시범 사업 범위를 벗어난 영역에서는 보건의료 빅데이터의 구축과 활용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여전히 뜨겁다. 의료-산업계는 “장기간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해 환자를 위한 맞춤 의료 서비스를 개발하자”며 제도 개정을 통해 데이터 접근 장벽을 낮추길 원하지만, 시민 단체는 “정보 주체의 동의 절차를 제거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보건의료 빅데이터 개방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한국 보건의료 데이터의 양과 질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말을 곧잘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유한 데이터가 6조 건 이상이라는 것, 의료 기관의 전자 의무 기록 도입률이 92퍼센트에 달한다는 것 등이 그 근거다. ‘양질의 데이터론’은 국민 건강 증진, 의료비 감축이라는 공공의 책무를 달성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통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공공성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일까?

 

바로 지난 달, 과학기술학 분야 국제 학술지 <과학사회학(Social Studies of Science)>은 빅데이터, 평가 알고리즘 등 보건의료 현장에 도입된 최신 기술과 공공 의료의 책무성(accountability) 사이의 관계를 집중 분석한 특별호를 선보였다. 현대 시민은 한정된 자원으로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똑똑한 정부를 원한다. 정부는 시민의 요구에 답해야 할 도덕적 책무가 있을 뿐 아니라, 이를 잘 수행하기 위한 전문성 또한 갖춰야 한다. 의료 영역에서 정부의 책무성은 시민에게 좋은 돌봄을 제공하는 데 있으며 이러한 목표는 공공성의 실현과 직결된다.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교의 클라우스 회어(Klaus Høyer) 교수는 “가망으로서의 데이터: 맞춤 의료를 통한 덴마크 공중보건의 재구성(Data as promise: Reconfiguring Danish public health through personalized medicine)”이라는 논문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한 맞춤 의료가 공중보건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주장이 지극히 빈약한 근거에 기대고 있다고 지적한다. 근본적으로 해답이 없는 의료 영역의 문제에 정부가 어떻게든 대응을 해야 한다는 책임성을 발휘한 결과가 최근 몇 년간 보건의료 빅데이터 수집 열풍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국가 주도의 통계 수집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던 서유럽과 달리, 덴마크를 비롯한 북유럽은 출생 즉시 부여하는 개인 식별 번호를 전 생애 복지 실현을 위한 도구로 적극 활용해왔다. 북유럽에는 양질의 데이터론에 덧붙여 ‘공공 데이터는 사회 복지를 위한 것’이라는 국가적 합의가 익히 마련되어 있던 셈이다. 덴마크 전문가들은 중앙집중적으로 수집된 보건의료 빅데이터가 인구 고령화와 기대 수명 증가에 따른 의료 재정 위기 상황을 돌파할 수단이 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회어 교수는 새로운 거버넌스 방식이 ‘도래한 위기’에 대한 적절한 대답이 되지 못할뿐 아니라 현 상황에서 가능한 조치마저도 유예시키는 장치로 작동할 수 있음을 우려했다. 빅데이터 분야의 성장은 재현성 문제 등 기존의 실험 설계 방식에 대한 학계 내부의 비판과 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크레이그 벤터 연구소 소속 연구원 니콜라스 쇼크는 2015년 <네이처(Nature)> 논평을 통해 인과관계를 명확히 밝힐 수 없는 무작위 대조 실험 대신 개인 수준에 초점을 맞춘 연구 데이터를 수집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쇼크의 주장은 개인 수준의 데이터가 어떤 설명적 가치를 갖는지 해명하지 못했고, 무작위 대조 실험의 문제이기도 했던 성별·인종·나이 등을 위시한 재집단화의 오류가 반복될 수 있다는 반론에 부딪혔다.

 

정부는 위기의 해법으로 빅데이터의 폭넓은 사용을 강조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구체적인 데이터가 아닌 오직 내러티브를 통해서만 정당화된다. 누군가 “의료비 낭비 없이 내게 꼭 필요한 치료법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느냐”고 물으면 정부는 “빅데이터가 해답을 줄 것”이라고 대답한다. 이제 그가 다시 “개인 의료 데이터를 공개하는 대신 무엇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물으면 정부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답할 것이다. 빅데이터 수집을 추동하는 ‘데이터 기반’ 합리성은 문제에 대한 답변을 내놓기보다 답변 시점을 충분한 데이터가 확보된 미래로 유예할 뿐이다. 현장의 필요가 있음에도 데이터 부족을 문제 삼아 현재 가능한 조치를 연기하거나 기각할 수도 있다.

 

희망적인 전문가들은 보건의료 빅데이터 시스템을 구축해 맞춤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면 공공 의료 영역의 지출이 줄어들고 개인 의료 영역에서 새로운 수익이 창출될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흔히 투자 항목으로 처리되는 시스템 구축 비용이 도리어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유발할 수 있다. 미래에 대한 예언적 데이터를 받아 본 예비 환자들의 우려로 인해 전체 의료비 지출 규모가 더 커질 수도 있다. 회어 교수는 미래를 담보로 한 정치경제적 판단에 좀 더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공권력이 제시하는 공공 데이터의 형태와 그 거버넌스는 변경된 지식의 구조와 체계를 경유해 환자, 의료인, 연구자의 행동 방식을 변화시킨다.

 

다섯 번에 걸쳐 진행된 보건복지 빅데이터 정책심의위원회 회의의 화두는 공공성 평가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있었다. 의료계, 학계, 법·윤리·정보 보호 분야, 환자·시민 단체의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 목적의 공공성, 연구 결과의 공개 가능성, 상업적 활용 가능성, 사회적 낙인과 차별 우려 가능성 배제라는 네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현시점의 논의가 다소 미진하더라도 시행해본 다음 이를 보완하는 것이 우리 행정 관점에서 더 바람직한 생각”으로 여겨진다는 심의위원장의 바람은 과연 어떤 형태로 달성될 수 있을까. 더 정확한 알고리즘 개발, 더 안전한 개인정보 보호를 위시한 여러 가지 형태의 공공성이 단지 공허한 외침으로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서지 정보]

  1. Høyer et al. (2019), Datafication and accountability in public health: Introduction to a special issue, Social Studies of Science 49: pp.459-475. https://doi.org/10.1177/0306312719860202
  • Klaus Høyer (2019), Data as promise: Reconfiguring Danish public health through personalized medicine, Social Studies of Science 49: pp.53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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