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논평>은 지난 두 주에 걸쳐 ‘민주적 공공성’이 코로나 대응의 기본 원리가 되어야 함을 주장했다(서리풀논평 1부, 서리풀논평 2부). 마침 정부가 ‘생활방역’의 세부 지침을 발표한 시점에서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원리와 방법을 보탠다.
시기적으로는 앞으로 몇 주간이 또 하나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몇 가지 가능성 중에는 추세를 벗어나 큰 규모의 유행이 다시 나타나는 것이 가장 나쁘다. 이대로 코로나 유행이 마무리되면 가장 좋겠으나, 가을이나 겨울까지 시간을 벌 수 있으면 ‘차선’ 정도는 될 것이다.
준비할 시간이 있으면 무엇을 할 것인가? 그사이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하는 일이야 더 말할 것도 없지만(정부가 이미 시작했으리라 믿는다), ‘가지 않은 길’을 신속하게 개척하는 것도 중요하다. 단순 보수로는 비슷한 수고와 고통을 피할 수 없다면, 우리는 ‘혁신’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나아져야 한다.
준비할 시간은 늘 충분치 않지만, 가을이나 겨울철 재유행을 염두에 두면 정말 짧은 틈이다. 그동안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을 터, 남은 일은 예외 없이 시간이 많이 들고 어려운 일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 사회(정치공동체)의 역량을 모두 동원해야 할 수밖에 없다.
다음에 제시하는 몇 가지 과제는 ‘민주적 공공성’이라는 원리에 기초한다.
첫째, 언제 올지 모르는 ‘재유행’에 대비하는 기본계획을 신속하게 수립할 것.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 다만, 같이 기억할 것은 그 기본계획이 국가 수준에만 머물러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지역은 지역대로, 연합회와 같은 단체는 단체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과거 또는 현재형 경험을 바탕으로 각 단위의 현장형 기본계획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기존 시스템의 기술적 문제를 보완하고 정비할 것.
이 또한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드러난 문제를,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빨리 고쳐야 한다. 여러 지침이나 매뉴얼, 정보, 지휘 체계,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역할 분담 등이 세세하게 보완할 중요 영역이라고 판단한다.
이상 두 가지는 (아마도) 방역 당국과 정부가 이미 생각한 일이 아닌가 싶다. 혹시라도 그렇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특히, 계획이나 체계 정비가 나의 일과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많은 ‘작은 당국’들에 이 준비를 부탁한다. 예를 들어, 2학기에 다시 온라인 수업을 해야 하면 각 학교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지금부터 말할 과제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그일 자체로 소홀히 할 수 없지만, 다른 무엇보다 생각과 실천, 문화적 기반이 약하다는 것이 큰 이유다. 많이 해보지 않아 익숙하지 않고 경험이 적어 잘 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니,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셋째, ‘분권형’ 대응 태세를 갖출 것.
우리는 한 지역에(예: 대구) 한꺼번에 많은 확진자가 생긴 경우를 경험했다. 이번에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은 강력하고 효율적인 분권형 대응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중앙 정부나 방역 당국이 지원하고 지휘할 수 있지만, 결국 지역과 지방이 실질을 채우고 실무를 집행해야 한다.
분권은 시도 광역자치단체 수준을 넘어 더 ‘기초’로 가야 한다. 대구에 2천 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왔을 때 또는 다른 지역 시에 갑자기 많은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를 생각해 보라. 기초자치단체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을 광역과 중앙 정부가 대신할 수 없다.
환자 치료뿐 아니라 방역도 마찬가지이며, 시대적 화두가 된 사회적 거리 두기에 이르면 분권형의 필요성은 더하다. 지방과 지역에 따라 위험이 다르고 사회적 여건도 천양지차가 아닌가? 주민의 이동 범위에 기초한 ‘안전 지역(green zone)’ 전략을 실행하는 데는 분권형 대응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기사 바로가기).
넷째, 시민참여형, 시민주도형 방역으로.
다음 신종 감염병에도 개인 예방과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핵심일 터, 여기서 방역 당국은 일반 원칙을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사람과 사회는 지침, 정보와 지식, 요구와 당부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현실은 냉정하다. 금지와 처벌이 아닌 한, 실천과 실행을 개인과 지역사회, 공동체의 의존할 수밖에 없다.
노파심에서 말하지만, 참여와 주도는 개인의 마음가짐이나 헌신, 윤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민주주의는 환경이자 구조이며 역사적 축적이라 해야 한다. 개인은 그 환경적 조건과 역사적 경험의 범위 안에서 ‘구조화’될 뿐이다.
예. 혹시 어떤 신앙 공동체가 생활 방역의 취지에 따라 모임의 방법을 바꾸고자 할 때, 그전에 한 번도 ‘공론’을 형성하는 경험이 없다면 참여와 주도는 불가능하다. 직장에서 경영자와 노동자가 노동조건을 두고 갈등하고 타협한 권력의 경험이 있어야 직장에서의 사회적 거리 두기도 작동할 수 있다.
갑자기 될 수는 없으니, 준비할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 시도하고 연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있는 구조와 틀을 활용하는 것이 가장 쉬운 출발이다. 그 많은 협의회, 모임, 단체, 연대, 조직 등이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풀뿌리 경험이 없을 때는 제도 또는 사건이라는 계기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장을 펼치고 공간을 만들면 그동안 알게 모르게 축적된 시민의 역량이 표출될 것이다. 정부와 방역 당국은 이를 촉진하고 지원할 책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