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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유행이 불러일으키는 숨겨진 피해: 에볼라 유행으로 인한 재생산건강 서비스 접근성 저하와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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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새롬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

 

신종감염병 유행이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병·의원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한 민간 연구소에서 신용카드 매출 자료를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의원급 의료기관의 매출은 성형외과와 안과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의원에서 감소했고, 일반병원과 대학병원의 매출 역시 상당한 수준으로 감소했다(☞관련자료: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코로나19”가 가져온 소비행태의 변화). 평소 많은 환자로 북적이던 응급실도 한산해졌다는 소식이다. 그동안 응급실을 갈 필요가 없는 환자들이 많았는데 이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반대로 응급실에 꼭 가야 했던 환자가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병을 키운 사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신종감염병으로 인한 공중보건위기는 기존의 보건의료체계가 어떻게 작동해왔는지, 위기 상황에 어떤 대처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시험대처럼 작동한다. 경제위기부터 신종감염병 위기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보건의료체계의 역량을 “보건의료체계 회복력(health system resilience)”이라고 한다. 보건의료체계 회복력은 감염자를 조기에 발견, 추적함으로써 전파를 최소화하는 방역활동, 감염자를 치료하는 역량뿐 아니라, 감염병 위기로 인해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의료서비스의 제공이 멈추지 않도록 하는 체계적 능력을 포함한다.

 

2017년 국제학술지 <건강정책과 계획>에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유행하던 시에라리온에서 공중보건위기의 간접적 결과로 발생한 사망 규모를 추정한 논문이 실렸다(☞관련자료: Counting Indirect Crisis-Related Deaths in the Context of a Low-Resilience Health System). 2013년부터 2016년 사이에 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지역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유행하여 약 28,600명이 감염되었고, 이 중 11,300명이 사망했다. 시에라리온에서는 2014년 5월부터 2016년 1월 사이 약 14,000여 명이 감염되고 4,000여 명이 사망했다.

 

런던정경대 로라 소차스 등 연구진은 일차의료서비스 이용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는 건강관리정보시스템 자료를 이용하여, 시에라리온에서 에볼라 유행 시기 재생산과 관련된 필수서비스인 산전진찰, 피임상담, 임산부의 파상풍과 말라리아 예방, 시설분만, 산후진찰 서비스 이용량 변화를 추적했다. 분석 결과 에볼라가 유행하기 이전까지 전반적으로 증가추세에 있던 재생산건강 서비스 이용률이 에볼라 유행이 시작되면서 급격하게 감소하였다. 산전진찰과 시설분만, 산후진찰의 경우 에볼라 유행 시작 이후 서비스 이용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양상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시에라리온에서 출산 전 4회 이상 산전진찰을 받는 산모 비율은 에볼라 유행 이전에 74.2%였고, 기존의 상승 추세를 고려한다면 2014-15년에는 89,5% 정도가 되어야 했지만 에볼라 유행 시기에 이는 67.2%에 그쳤다.

 

에볼라 유행으로 인한 재생산 건강 서비스 이용 저하가 가져온 영향을 평가해보면, 가장 보수적으로 추정한다 해도 추가적으로 549명의 모성사망, 2,161명의 영아사망, 883건의 사산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 결과는 에볼라 유행 시기에 재생산건강 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적게는 3,600명에서 많게는 4,900명이 불필요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연구는 감염병 위기로 인한 건강 피해가 단지 감염병에 걸려 죽는 일에 그치지 않고, 임신과 출산, 피임 같이 필수적인 재생산 서비스 접근 제한, 그리고 이로 인한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런 상황이 보건의료자원이 부족한 저소득국가에서만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서도 코로나19 유행으로 응급실이 폐쇄되면서 촌각을 다투는 응급환자들이 시도의 경계를 넘어 치료받을 곳을 찾아야 했다. 주기적으로 투석을 받아야 하는 대구의 만성신부전 환자는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을 찾지 못해 인천까지 가야 했고, 열이 나던 산모가 출산한 미숙아가 코로나19에 걸렸을지 모른다는 이유로 인큐베이터에 바로 들어가지 못한 일도 있었다. 일상적인 의료 필요가 있는 많은 환자들이 불안을 안고 병원을 찾거나 코로나19 유행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꼭 필요한 의료이용조차 미루고 있다. 정부가 국민안심병원을 지정하고, 비대면 진료를 안내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이것으로 충분했는지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비대면 진료를 하게 되어서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환자들의 어려움이 다소 덜어진 것 같기는 하지만, 혈액검사를 하지 못한 상태로 같은 약을 다시 처방하는 것이 못내 불안하고 어렵다던 임상의사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면, 이로 인한 건강 영향 역시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에서 코로나19의 간접적 건강 영향이 얼마나 클지 아직 잘 모른다. 에볼라와 비교할 때 치명률은 낮지만 감염력은 훨씬 크다는 점에서, 코로나19로 인한 간접적 사망과 건강피해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발생하는 직접적 건강 영향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 한국의 방역체계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코로나19 감염과 그로 인한 사망을 잘 막아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보건의료체계의 임무가 모든 사람의 건강을 차별 없이 보장하는 데에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여기서 만족하기는 어렵다. 감염병의 대유행에도, 아픈 사람들이 잘 치료받을 수 있고, 의료진들의 과로를 줄일 수 있는 보건의료체계는 어떻게 가능할까.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그 첫걸음은 분명하다.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보건의료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모두가 조금 더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 참고문헌
Sochas, L., Channon, A. A., & Nam, S. (2017). Counting indirect crisis-related deaths in the context of a low-resilience health system: The case of maternal and neonatal health during the Ebola epidemic in Sierra Leone. Health Policy and Planning, 32, iii32–iii39. https://doi.org/10.1093/heapol/czx108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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