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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에 대한 차별 없는 의료가 코로나19를 넘어서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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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외적 조치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 –

 

 

김선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

 

지난 5월 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미등록 이주민도 “비용 부담과 강제 출국에 대한 걱정 없이” 코로나19 검사와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발표했다. 싱가포르에서 열악한 기숙사에 거주하는 저임금 이주노동자들 사이에 집단감염이 발생해 확진자가 급증한 뒤였다. 한국 정부가 재차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방역 사각지대에 대한 관리” 차원에서도, 미등록·등록 이주민을 포괄하는 포용적 방역대책의 필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 중대본 발표자료)

 

여러 지방 정부들은 이주노동자, 미등록 이주민을 대상으로 특별 코로나19 검사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검사를 받는 이들이 굉장히 적다고 한다. 미등록 이주민들의 경우 여전히 신분노출을 꺼리고, 정부 대책을 알지 못하거나 믿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 관련 기사 1, 관련 기사 2)

 

이주민들이 정부 대책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믿지 못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이주민에 대한 ‘적대적 환경’이 큰 몫을 할 것이다. 작년(2019년) 7월 개정된 건강보험제도 역시 그 중 하나다. 소득과 재산이 없는 이주민에게조차 무조건 월 12만 원가량의 최저보험료가 부과될 뿐만 아니라(내국인 최저보험료는 월 1만 4천원이다),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고령의 부모, 갓 성년이 된 학업 중인 자녀까지 각각 독립된 세대로 간주해 이중 삼중으로 보험료가 부과된다. 내국인과 달리 1회만 체납해도 급여가 제한되는 데다, 체납 기록은 체류자격 심사에까지 반영된다. 저소득 취약계층 이주민들은 필수적인 의료서비스도 이용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체납자로, 나아가 미등록 체류자로 전락하고 있을 것이다. (☞ 관련 기사)

 

이주민에 대한 차별적 의료, 접근성 장벽이 초래하는 공중보건 결과는 어떤 것일까. 올해(2020년) 4월 <BMC 공중보건>에 게재된 논문은 영국에서 새로이 도입된 이주민에 대한 의료장벽이 결핵의 진단과 치료를 지연시킨 사실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 해당 논문: NHS의 ‘여행자와 이주민에 대한 비용회수 프로그램’ – 건강에 대한 위협?)

 

영국의 국가보건서비스(NHS)는 대표적 무상의료 체계로, 영국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이용 시점에서 무료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재정은 조세로 충당된다. 그러나 보수당 정권은 2014년 개정 이민법을 통해 거주민의 범위를 축소하고, 여행자와 단기체류자에 대한 비용 부과 기전을 강화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를 토대로 잉글랜드에는 2014년 4월 ‘여행자와 이주민에 대한 비용회수 프로그램(CRP)’이 도입됐다. 방문 환자의 NHS 자격 확인이 강화되고, 비유럽 출신 이주민에게 부과할 수 있는 비용이 수가의 100%에서 150%까지 인상됐다. 공공병원에 대해서는 CRP를 제대로 집행하지 못할 경우의 처벌과 인상된 수가 부과에 대한 인센티브가 마련됐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영국에서도 결핵이나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은 국적이나 체류자격과 무관하게 치료비용이 부과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실 환자는 의료기관에 방문해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본인의 증상이 단순 기침인지, 결핵인지, 코로나19인지 스스로 알 길이 없다. 구체적인 정책을 세세하게 알고 이해하는 것 역시 불가능에 가깝다.

 

선행연구에 따르면 영국에 거주하는 많은 이주민이 스스로의 NHS 자격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며, 비용 부담에 대한 걱정은 환자의 의료기관 방문을 지연시킨다. 이주민들의 NHS 자격에 변화를 야기하고 체류자격에 따라 비용을 부과하는 최근의 정책변화는 이러한 문제를 악화시켰다. 이주민에 대한 ‘적대적 환경’의 영향은 개개인의 자격 여부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논문에서 제시카 포터(Jessica Potter) 등 런던 퀸메리 대학 연구팀은 CRP 도입이 결핵 환자들의 의료기관 방문과 진단, 치료를 늦추게 했는지, 이러한 결핵 진단지연에 내국인과 이주민 간 유의한 차이가 있는지 확인하고자 했다. 2011년 1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런던 바츠 지역에 등록된 성인 결핵환자 3,342명(잉글랜드 전체 결핵 환자의 약 10%) 중 자료가 누락된 경우를 제하고 최종 2,237명이 분석에 포함됐다. CRP 도입 전 치료시작 그룹과 CRP 도입 후 치료시작 그룹을 묶고(각각 CRP 도입 전과 후), 영국 출생자와 영국 밖 출생자를 묶었다(각각 내국인과 이주민). 증상 발현일부터 치료 시작일까지의 시간을 진단에 소요된 시간으로 정의하고, 전체의 중위값보다 긴 경우 진단지연으로 정의했다.

 

CRP 도입 전후를 비교분석했을 때, 전체 환자에서 진단에 소요된 시간의 중위값은 CRP 도입 전 70일에서 도입 후 89일로 유의하게 증가했다. 이는 이주민만 떼놓고 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국인과 이주민을 비교분석했을 때, 이주민 중 진단지연 환자는 CRP 도입 전 전체 44.6%에서 도입 후 전체 55.2%로 유의하게 증가했다.

 

성별, 나이, 영국 거주기간, 직업, 결핵 위험요인 보유 유무 등 진단지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변수들의 영향을 보정한 다변수 분석 결과에서도, 이주민 집단에서 CRP 도입 후 진단이 유의하게 지연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결핵 진단과 치료의 지연은 환자 본인의 이환율과 사망률을 높일 뿐 아니라 지역사회 전파 위험 역시 증가시킨다. 이 때문에 영국 공중보건국과 잉글랜드 NHS의 결핵 관리 전략은 “서비스 접근성을 개선하고 조기 진단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코로나19 검사와 치료에 한해 예외적으로, 미등록 이주민에게도 접근성을 보장하기로 한 한국 정부의 대책은 유사한 사회보험 체계를 가진 대만이나 일본보다는 진일보한 것이지만 (☞ 관련 기사), 이주민과 난민에게 한시적 시민권과 함께 내국인과 똑같은 의료보장 혜택을 주기로 한 포르투갈의 조치에는 못 미치는 것이다 (☞ 포르투갈의 조치에 대한 유엔기구의 환영 논평). 만일 한국의 건강보험이 코로나19 이전에 이미 이주민에 대해 차별 없이 의료를 보장하고 있었다면, 지금의 ‘방역 사각지대’는 훨씬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끝)

 

* 논문 서지정보

Potter, J.L., Burman, M., Tweed, C.D. et al. The NHS visitor and migrant cost recovery programme – a threat to health?. BMC Public Health 20, 407 (2020). https://doi.org/10.1186/s12889-020-085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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