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보다 정의가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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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이 개발될 때까지는” 코로나19 유행이 끝나지 않는다? 이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개발이 곧 ‘예방’이 아니고, 백신 개발이 바로 접종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실험실에서 기술이 개발되어도 안정성과 효과를 검증하는 임상시험을 거쳐야 하고,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도 충분한 양을 생산하지 못하면 그림의 떡이다.

사회적으로는 어느 정도 생산 능력을 확보한 후가 더 문제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 백신을 얻을 수 있는지, 국내에서 사용할 수 있으면 누구에게 먼저 백신을 접종할 것인지, 그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지 등등. 자칫 큰 갈등과 분열을 각오해야 한다.

 

일단 경제적 부담 문제를 제외하면, 접근성과 가용성을 어떻게 해결할지 가장 큰 문제다. 실용화 후에도 처음에는 생산량이 많지 않을 터, 가장 분명하게 ‘우선순위’의 문제 또는 ‘배분적 정의’라는 과제에 직면할 것이다.

 

 

너무 앞선 걱정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 문제다. 병상, 인공호흡기, 치료제 등을 어떻게 나눌지 곳곳에서 이미 경험하지 않았던가. 한국을 비롯한 세계 모든 나라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이미 겪은 그대로, 대상과 종류는 다르나 같이 고민해야 할 ‘원리’는 대동소이다.

 

문제는 ‘전국민’이 되면서 필시 수요-공급의 불균형이 생기고 모자라는 곳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마스크 또한 ‘배분’이 필요하고, 그 원칙은 간단하다. 요즘과 같을 때 가장 먼저 필요한 곳부터 배분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것. (논평 바로가기)

 

영국의사협회(BMA)는 의료진에게 노인보다는 젊고 건강한 사람에게 인공호흡기 사용의 우선순위를 두라고 권고하기도 했죠. 노인 소외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누구에게 인공호흡기를 제공할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인 쟁점으로 번졌는데요. (기사 바로가기)

 

한국에서는 마스크 정도에 그쳤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다행히 이탈리아나 미국 일부 도시의 인공호흡기 부족 사태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부 지역에서 병상이 없어 수천 명 확진자가 집에서 대기한 사태는 무엇이라 해야 할까? 우리 사회 또한 우선순위와 배분의 문제에 당면했다는 것,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이제 다시 비슷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팬데믹 상황인 만큼, 한 나라를 넘어 국가 간에 벌어지는 배분의 문제도 심상치 않다. 그 어느 때보다 노골적으로 후퇴했다. 대다수 ‘강대국’이 피해 당사자가 되는 바람에 국민국가 사이의 배분적 정의는 그야말로 완전히 실패했다. 국제보건의 ‘정치적 올바름’조차 찾기 어렵다.

 

미국은 9월 말까지 렘데시비르 물량의 92%를 구입했다….렘데시비르는 미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긴급사용 승인을 받은 유일한 코로나19 치료제다. 미국 제약회사인 길리어드가 특허를 갖고 있다….미국의 람데시비르 독점 소식에 WHO(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한 전 세계의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기사 바로가기)

 

백신 민족주의는 프랑스에 기반을 둔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가 개발자금을 지원한 미국부터 백신을 공급하겠다 선언하면서 촉발됐다….백신 개발을 위해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상황에서 자국민에게 우선권을 주겠다는 논리를 무작정 비난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적극적인 방역조치를 펴기 어려운 개발도상국이 백신에서도 후 순위로 밀려 인명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사 바로가기)

 

‘민족주의’를 호명하는 것 자체가 ‘자국 중심주의’가 상황을 지배하는 제1의 원리라는 증거다. 국제 불평등보다 국내 불평등이 더 중요한 나라가 한둘인가, 어떤 나라에서는 백신과 치료제가 사소한(?) 한 가지 불평등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때 민족주의 또는 자국 중심주의는 (때로 의도적으로) 국내 불평등을 은폐하고 분노를 밖으로 돌리는 데 동원된다.

 

‘시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포스트 코로나의 우선순위를 말하면서 다들 백신과 치료제를 생각하지만, 당장 급한 것은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나) 혹시 병상과 인공호흡기가 모자라는 상황에 대비하는 일이다. 환자는 많고 시설은 모자랄 때, 누구를 먼저 입원시키고 치료할 것인가?

 

몇 달 전 마스크가 문제가 되었을 때 한국은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는 방식을 택했다. 더 급하고 중요한 대상자라는 기준이 없고 1인당 일주일에 2장씩. 2009년 신종플루 백신을 나눌 때는 취약계층, 학생, 군인, 방역 의료인과 대응 요원 등 ‘감염 취약계층’이 우선이라는 기준을 정했다(기사 바로가기). 겉으로 보기는 정부가 정해 ‘관료적’ 방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일종의 ‘전문가 기준’을 쓴 셈이다.

 

상황은 다른 듯 또 비슷하다. 내용도 다르고 속도도 차이가 나지만, 다들 전문가가 판단하고 정할 수 있으리라 믿는 것은 비슷하다. 물론, 단언하건대 전문가 홀로 정할 수 없다. 이탈리아나 미국 뉴욕 상황에서 보듯이, 미리 지침이 있고 어느 정도 훈련을 받아도 마찬가지다.

 

한 병원을 넘어 지역이나 사회적 범위에서 배분해야 하면 더 복잡하고 어렵다. 이 병원과 저 병원 사이에서 어떤 환자를 우선 치료하기로 정하고 이에 맞추어 사람이나 기계를 배정할 수 있을까? 누가? 미리 지침을 정해도 원칙만 통하는 경우가 대부분, 구체적 상황에서 적용하는 것은 또 다른 과제가 많다.

 

지난 4월 말, 중환자의학회 회장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대량의 환자가 일시에 생겨서 2단계 중환자 전략으로도 커버가 안 될 때는 리소스 트리아지(Resource Triage), 치료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시민단체, 의료전문가, 윤리학자 등이 위원회를 만들어서 중환자 치료로 최대한 이익을 받을 수 있는 환자군을 분류해 가능한 한 많은 생명을 살리도록 하는 마지막 단계까지 지금 준비해놔야 한다.” (기사 바로가기)

 

우리는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전문가 위원회’ 모델은 익숙하고 신속하게 결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혹시 일어날 수 있는 위기 상황에 대비하기는 역부족이다. 그 누가 논의하더라도 사회적 ‘기반’이 취약하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기반이란 하루아침에 만들 수 없는 법, 그렇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나? 역설적이지만, 이제라도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는 일이 핵심이다. 하나라도 조금이라도 더,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정보를 알고 이해하며 공부해야 한다. 또한, 그 ‘계몽’을 바탕으로 말하고 주장하게 해야 한다.

 

중환자 병상과 인공호흡기, 마스크, 백신과 치료제를 배분하는 원리가 서로 비슷하고 통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시민의 지식과 이해에서 출발해, 공론과 그 축적을 바탕으로, 사회적으로 논의하고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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