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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불평등의 ‘판타지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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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언덕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코로나 19를 만난 지 벌써 6개월이다. 그동안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예측과 전망을 내놓았지만, 대체로 공통된 결론은 이런 듯하다. “코로나 19 이후 세상이 크게 바뀔 것이다” 또는 “바뀌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굳이 전문가 진단이 아니더라도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몸소 느끼고 있다. 문제는 무엇이 어떻게 바뀔 것이냐 하는 것이다.

건강불평등은 어떻게 될까? 건강정책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갖는 질문이다. 사실 많은 이들의 절실한 질문이기도 하다. 여기서 건강은 “인명은 재천이다”고 할 때의 그 숙명론적 의미가 물론 아니다. 건강불평등은 소득, 젠더, 인종, 장애, 지역, 국적 등에 따라 집단 간에 체계적으로 발생하는 ‘불필요’하고 ‘회피가능’하며 ‘불공정’한 건강 차이를 말한다. 청도대남병원과 구로콜센터 집단 감염은 건강불평등의 전형적인 한 단면이다. 미국의 조지 플로이드 사망 역시 인종에 따른 불평등 구조가 낳은 건강불평등의 극단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코로나 19가 건강불평등을 완화시키는 계기가 될지 또는 악화시키는 계기가 될지 불확실하다. 희망과 비관의 징후가 혼재한 상황에서 섣부른 예단은 피해야겠지만, 아무래도 이 문제가 가까운 미래 안에 해결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불평등을 생산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사회적 ‘각성’이 일어나기까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전 세계에서 이루어진 많은 연구결과는 부와 권력의 불공평한 분배를 낳는 사회정치경제 구조가 건강불평등의 근본 원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의 대부분 정책은 문제를 개인화하고 개인행동 변화를 표적으로 삼는 방식으로 개입하고 있다. 물론 구조 문제를 개인 차원으로 축소하는 게 건강불평등만의 예외적 현상은 아니다. 다만 “건강은 스스로 챙기는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 탓인지 유독 건강과 관련해서는 구조를 잘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건강불평등 극복에 개인주의적 개입이 성공할 수 있다는 근거가 미약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러한 정책 시도가 반복되는 현상에 대해 보건학자 스콧-새뮤얼과 스미스는 ‘판타지 패러다임’이라고 명명하였다(☞바로가기: 건강불평등의 판타지 패러다임). 건강불평등 완화를 목표로 내세우면서도 정작 이를 줄이기 어려운 개인 차원의 접근만 고집하는 모순된 현실이 마치 판타지처럼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 판타지 패러다임은 국제적/국가적 구조에서 야기되는 불평등이 지역적/개인적 차원에서 근절될 수 있다는 끈질긴 믿음을 통해 작동한다. 최근 국제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 Social Science & Medicine>에는 영국의 건강불평등 완화 사업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이 실제 이러한 ‘판타지’적 개입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분석한 흥미로운 논문 한 편이 실렸다(☞논문 바로가기: 건강향상정책의 판타지 패러다임 해체하기).

 

영국은 일찍이 건강의 사회적 요인에 주목하고 ‘사회적 처방’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이 프로그램은 고독과 재정난 등 비약물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주치의(GP)와 일차의료팀이 발견해서 ‘자원연계 실천가’에게 연계함으로써 적절한 지원을 받도록 하는 사업을 말한다. 연구진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우의 빈민가에서 시행 중인 사회적 처방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전문가들과의 면담을 통해 판타지 패러다임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주치의를 비롯한 간호사, 자원연계 매니저, 커뮤니티 단체 대표 등 총 47명과 개별 또는 그룹 면담을 진행하여 얻은 정보를 토대로 다음과 같은 분석 결과를 제시하였다.

 

먼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내러티브를 통해 건강의 사회정치적 맥락을 분리시키는 판타지 패러다임이 재현되고 있었다.

첫째, 건강은 개인의 선택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신념이 지배 담론으로 나타났다. 이는 “근본 문제는 식단조절과 교육, 운동에 달려 있다”는 한 주치의의 발언에 잘 드러난다. 즉, 지원대상자들의 건강행태변화는 선택의 문제이고, 따라서 “변화될 의지 부족”이 건강전문가들의 핵심 과제로 인식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많은 참여자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왜 그들의 건강이 그렇게 되었는지, 그것에 누가 책임이 있는지, 그리고 조금씩 나아지기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 질문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아울러 사회적 처방의 역할은 커뮤니티카페, 커뮤니티농장, 요리모임 등을 통해 “그들의 자신감을 키워주고 미래를 계획하도록 만드는 것”으로 설명된다.

 

둘째, 사업 대상자들은 나머지 건강한 사람들과 다르다고 하는 암묵적 내러티브가 유통되고 있었다. 이는 대체로 빈민가에 거주하지 않는 중산층 전문가에게서 두드러졌다. 이때 대상자들은 “스스로 문제를 식별할 능력이 없는” 존재로 인식된다.

“이 사람들은 스스로 자원에 접근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 스스로 하지 않을 일, 또는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대상자 집단에 대한 이러한 ‘타자화’ 경향은 다음과 같이 건강개선 계획 수립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한 전문가의 발언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인격체로서 그들과 상호작용하기 매우 어렵다. (…) 우리는 전두엽[이성]을 마비시킨 채 변연계[감정, 욕구]로만 움직이는 사람들을 상대하기 때문이다. 당신도 그들과 이성적인 대화를 나누기 힘들 것이다”

 

셋째, 사회적 결정요인을 언급하면서도 신기하게 이것을 개인의 건강 경로와 연결짓지 못하는 내러티브가 존재했다.

“거리에 건강검진 광고를 할 수 있는 빈 가게들이 많다”

여기서 “빈 가게”는 불건강과 관련된 사회적 이슈에 대한 상징보다 건강예방프로그램 참여를 독려할 기회로만 묘사된다. 이와 비슷하게, 좋은 건강을 위한 필수요소로 적당한 주거공간과 음식을 이야기하면서도 해결책으로 이러한 삶의 결핍을 보충하기 위한 “자신감 향상”을 제시할 뿐이다.

 

다음으로, 사회적 처방 같은 개입이 어떻게 개인 또는 커뮤니티 차원에서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의 효과를 완화시킬 수 있는지에 관한 판타지 내러티브가 존재했다.

우선 연구진이 ‘희망적 비관론자’라고 부르는 이들은 불건강의 근본 원인을 인식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치를 말하지 않고서는 건강과 사회적 이슈를 다룰 수 없다. 정치가 바로 그것들을 정의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긴축하기로 작정한 이상 사회적 결정요인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직업이 없거나 구하더라고 최저생계비 이하의 제로아워 계약일텐데… 이런 상황에서 더 건강한 생활습관을 갖추라고 하는 건 초점을 벗어난 일이다. 굳이 그렇게 해야 하나?”

그러면서도 정치적 차원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개인 차원에서 뭐라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한다.

“당신은 정치적 해법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할 것이다.”

“나는 그들의 문제에 대한 의학적 해결책을 거의 찾을 수 없다. 그것은 거의 항상 돈, 복지급여, 불평등, 사회 장벽, 종교 장벽, 이런 것들이고 정치적 해결책이 필요한 것들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내가 제 정신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나는 단지 사소한 도움만을 줄 수 있다”

참여자들은 장기간 긴축으로 사회보장 예산이 대폭 삭감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그나마 사회적 처방프로그램을 통해 추가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희망을 찾았다. 또한, 어떤 이들은 사회적 결정요인을 강조하면서도 사회적 처방프로그램 같은 개입이 결과적으로 건강불평등을 감소시킬 것이라는 믿음을 드러냈다. 특히 다음과 같이 ‘물결효과’를 통해 개인 차원의 개입이 건강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을 보였다.

“나비 날갯짓이 허리케인을 불러오듯이 인간행동과 상호작용의 작은 변화들이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이 시나리오는 대상자들이 자신의 건강에 책임감을 갖고 더 큰 변화를 위해 씨를 뿌리면 마치 경제성장에서 말하는 ‘낙수효과’처럼 많은 사람의 건강개선과 불평등 감소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대개 근거 없는 열정으로 표현될 뿐이다.

 

또 다른 내러티브에서는 개인 차원에서 부정적 효과를 완화하는 것과 ‘사회적 기울기(social gradient)’를 조정하는 것의 차이에 대한 오해가 드러났다. 사회적 기울기에서 계층과 건강상태 분포는 관계적 개념이다. 그러나 참여자 중에는 이것을 (다른 사람의 어깨를 짓누르고) 올라갈 수 있는 고정된 물리적 사다리로 이해하는 이들이 있었다. 따라서 다음처럼 노동자계급의 계층상승이 불평등 문제의 해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같은 문제를 가진 것이라면 내 환자가 중산층 환자가 행동하는 것처럼 하도록 바꿀 것이다. 나는 그들이 사회경제적 5등급에서 3등급으로 올라가길 원한다”

이처럼 사회적 기울기 개념을 혼동하는 경우, 사회적 결정요인의 부정적 효과를 완화하는 것과 건강불평등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인식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또한, 상당수 참여자는 부채와 주거위기 같은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노력하면서도 이러한 실천은 ‘사회적(the social)’ 문제를 해결하는 데 ‘부가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즉, 사회적인 것은 ‘딴 데’에서 다루는 것이라고 가정하면서 주치의들이 의학적 모델로 후퇴하는 것을 정당화해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사회·경제·정치적 요인들이 어떻게 건강을 결정짓는지에 대해 서로 엇갈린 내러티브들이 존재하였다. 그룹 내 참여자들의 토론 과정에서 이러한 부조화가 확인되었다. 특히,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을 암시하는 이야기는 거의 매번 주요 논점으로 부상하는 데 실패했다. 한 참여자가 빈곤한 개인이 변화되기 어려운 점에 관해 말했지만, 대화는 다시 어김없이 행동 변화를 장려하는 이야기로 되돌아갔다. 다만 연구진은 이러한 프레임의 불일치를 통해 패러다임 내에 존재하는 긴장과 그에 따른 민주주의적 숙고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연구결과는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도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은 ‘병풍’ 취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필자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사회적 결정요인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구체적 실천과 연결 짓지 못한 채 개인 차원에서 ‘희망적 비관론자’에 머무르기도 한다. 그러나 구조를 바꾸기 어렵다는 현실론으로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현실의 절박한 요구를 덮어버려서는 안 된다. 코로나 19와 더불어 건강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판타지’에서 하루빨리 벗어날 필요가 있다.

 

* 서지 정보

Mhairi Mackenziea, Kathryn Skivingtonb, Gillian Fergieb. (2020). “The state They’re in”: Unpicking fantasy paradigms of health improvement interventions as tools for addressing health inequalities. Social Science & Medicine. 256: 1~8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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