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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구조 개혁 없이 산업재해 해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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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전대미문의 전 세계적 감염병 유행 속에서도 노동자가 일하다 다치거나 죽었다는 소식이 끊이질 않는다. 일터를 통해 코로나19 전파와 건강피해가 지속될 뿐 아니라, 그러지 않아도 노동안전보건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던 노동자들이 코로나19의 직간접적 영향을 받고 있다. 예컨대, 코로나19 유행 때문에 고용노동부가 산업안전감독을 모두 중단한 가운데 4월 29일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사건이 발생하여 노동자 38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을 입었다. 희생자는 9개 업체 소속 노동자들로, 대부분이 일용직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쿠팡 물류센터의 폐쇄적이고 밀집된 노동환경에서 노동자 152명이 코로나19에 집단 감염된 사건도 있었다. 전체 근무자 3,600여명 가운데 정규직은 100명 남짓, 대부분이 소위 일용직이라 불리는 파견노동자들이었다. 이처럼 반복적인 산업재해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다단계 하도급 구조, 파견 노동 같은 불안정 고용구조가 지목되고 있다.

 

오늘날 불안정 고용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여러 국가에서 불안정 노동자들이 일하다 다치거나 죽을 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뒷받침하는 연구들이 많다. 하지만 노동안전보건규제를 포함하는 노동정책과 복지정책에 따라 불안정 노동자들의 경험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오늘 소개할 연구는 스웨덴과 폴란드 사례를 비교한 논문으로, 파견노동자에 대한 노동안전보건 규제 레짐을 분석하고 있다 (논문 바로가기: 임시 안전. 임시파견노동에서 노동환경을 규제하기). 연구는 경제적 압박 (pressure), 작업 무질서 (work disorganization), 규제 실패 (regulatory failure)라는 세 가지 구조적 요인에 주목하여 산업재해 위험의 증가를 설명한 PDR 모델을 이용했다 (Quinlan et al., 2001; Quinlan & Bohle, 2004). 논문에서는 스웨덴과 폴란드에 각각 생산 공장을 둔 한 초국적 기업의 노동안전보건 담당자와 노동조합 간부 총 14명을 심층 면담하고, 노동안전보건과 관련된 기업 문서들을 검토하여 서로 다른 규제 레짐에서 파견노동자의 노동안전보건 실태를 비교했다. 이 회사의 스웨덴 공장은 전체 노동자의 30%, 폴란드 공장은 20%가 파견노동자였다.

 

스웨덴과 폴란드는 파견노동자의 고용과 노동안전보건 규제에서 여러 차이점을 보인다. 스웨덴은 파견노동자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산업별 단체협약을 통해 파견노동자에게 직접 고용 노동자와 동일한 수준의 고용안정성과 소득안정성을 보장해준다. 반면 폴란드는 한국과 유사하게 파견노동자 사용을 계절적 요인이나 일시적․간헐적 인력 확보, 또는 전문지식, 기술, 경험을 필요로 하는 업무에만 단기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파견근로자 사용이 최대 18개월로 제한되어 있어 고용안정성이 낮고, 급여 인상 체계나 기타 수당도 존재하지 않는다.

 

두 국가 모두 파견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전반적 의무를 진다. 하지만 스웨덴은 파견 사업주와 사용 사업주의 공동 책임을 강조하는 반면, 폴란드는 안전보건 관련 교육에서만 사용 사업주의 책임을 강조한다. 한편 스웨덴의 경우 파견노동자가 산업별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고 산업별 단체협약이 파견노동자에게도 적용되는 반면, 폴란드는 기업별 노동조합이 중심이기 때문에 파견노동자를 대표할 노동조합이 없어서 이들의 집단적 대표성이 부족하다.

 

이러한 상이한 제도적 맥락에도 불구하고, 두 국가의 파견노동자들이 경험하는 경제적 압박, 체계적이지 못한 노동안전보건 관리, 규제 실패는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두드러졌다.

첫째, 경제적 압박이다.

폴란드는 파견노동자 사용이 ‘기능적 유연성’(배치전환의 자유)보다는 ‘수량적 유연성’(해고의 자유)을 목적으로 하고, 파견노동자의 사용을 단기간으로 제한한다. 이 때문에 사용 사업주들이 파견노동자의 역량 강화에 투자할 유인이 없고 이들을 단순 업무에만 배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용 사업장에서 계속 유입되는 신규 미숙련 파견노동자들의 훈련을 맡은 직원들은 정해진 시간 내 업무를 끝마치는 것에 압박감을 느꼈다. 사용사업장 노동안전보건 담당자는 인터뷰에서 파견노동자들이 외부자 신분, 짧은 계약 기간 때문에 노동안전보건 규제를 준수하는 데 관심이 없고 결근이 잦다고 평가했다.

고용안정성과 소득안정성이 보장된 스웨덴의 경우에도 파견노동자에 대한 ‘배치 불안정성’(assignment insecurity)이 컸다. 신체적으로 고된 업무에 파견노동자를 배치하는 경우가 빈번하고, 파견직이기 때문에 원하지 않는 업무라도 거절하기 힘든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체계적이지 못한 노동안전보건 관리 문제가 드러났다.

두 국가 모두 파견노동자의 산업재해는 사용 사업자의 산업재해 통계에서 제외되었다. 직업병 같은 장기적 건강결과에 대한 정보도 수집하지 않았다. 사업장 위험평가의 경우, 파견노동자는 작업장의 물리적 위험요소 평가에만 참여하고 사회심리적 위험 요인에 대한 연간 직원조사에서는 배제되었다. 스웨덴과 폴란드 모두에서 파견노동자들은 고용/배치 불안 때문에 업무상 재해를 제대로 보고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해위험 업무에 집중적으로 배치되는 만큼 실제 건강피해 또한 파견노동자에게 집중되고 있지만 사용사업자의 산업재해 통계에 이는 드러나지 않는다.

 

셋째, 규제 실패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두 국가 모두 법적 규제에서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사업주의 의무 공백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앞서 설명했듯, 작업장 위험 모니터링과 위험 평가를 통한 산업재해 예방이 파견노동자에게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었다. 파견노동자를 대변하는 노동조합이 부재한 폴란드와 달리 스웨덴의 경우 파견노동자의 80%, 사용사업장 노동자 대부분이 산업별 노동조합에 가입되어 있었다. 하지만 노동조합 지부가 사업장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고 도움이 필요한 파견노동자에 대한 지원을 맡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 연구는 ‘삼각고용관계 (triangular employment relationship)’에 기초한 파견노동에 내재한 불안정성이 스웨덴처럼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고용안정성, 소득안정성을 보장해준다 해도 쉽게 해소되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고용과 소득안정성이 비교적 높은 ‘좋은’ 파견직 일자리는 노동자들이 직접 고용 혹은 더 나은 업무 배치를 위해 자신의 안전과 건강을 해치면서 일하게 만든다. 반면 ‘나쁜’ 파견직 일자리는 노동자들이 안전보건 예방 수칙을 준수할 유인을 낮춘다. 즉, 고용구조 자체를 개혁하지 않는다면 파견노동자 같은 불안정 노동자에게 집중된 산업재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다. 건강과 안전에 도움이 되는 불안정 노동은 없다.

 

참고 문헌

Strauss-Raats, P., 2019. Temporary safety. Regulating working conditions in temporary agency work. Safety Science. 112, 213-222.

Quinlan, M., Mayhew, C., Bohle, P., 2001. The global expansion of precarious employment, work disorganization, and consequences for occupational health: a review of recent research. Int. J. Health Serv. 31 (2), 335-414.

Quinlan, M., Bohle, P., 2004. Contingent Work and Occupational Safety. In: Barling, J., Frone, M.R. (Eds.), The Psychology of Workplace Safety.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Washington, DC, pp. 81-106.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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