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유행’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넘쳐 난다. 모두를 위해 이 불안한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기 바란다. 지난 주말에 있었던, 이동과 활동을 최소한으로 줄이자는 사회적 합의 그리고 그에 따른 자발적 실천이 효과를 냈으면 좋겠다.
의사들의 파업이 걱정을 보탠다. 이 <논평>을 작성하는 시간까지(일요일 오후)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길게 보면 이런 갈등이 긍정적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시민의 피해를 줄이는 ‘미봉책’이라도 아쉬운 형편이다.
우리의 관심은 지금 당장 시민이 안전한 방법에 관한 것이며, 의사 파업을 보는 관점도 전적으로 같다. 원론적인 의사 인력 문제는 이미 4주 전 <논평>으로 의견을 내었으니 되풀이할 필요가 없을 터, 지금 이 위기에서 시민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에 집중하고자 한다.
이제나저제나 정부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공권력을 독점하고 가장 많은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니 당연하며,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 ‘대한민국’이라는 현실의 국가 권력은 그 주권이 미치는 범위 안에 있는 모든 이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의무가 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정부가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 근거다.
원론은 분명하나 문제는 다시 현실이다. 그중에서도 우리(국민, 시민, 인민)가 일차로 국가 권력을 만나는 현실적 경험과 통로가 ‘통치’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국가로서는 (대체로) 정책이 아니라 통치가 더 중요하다. 이는 국가가 정책이나 정책 효과 또는 국민의 안녕을 무시한다는 뜻이 아니며, 통치가 특정 개인이나 조직의 의도를 따른다는 뜻도 아니다. 여기서 통치는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국가 권력이 ‘국가 이성’을 따르는 목적이며 또한 실천을 의미한다.
이렇게 보면 국가 책임을 강조하는 때도 그 책임은 필시 통치로 번역될 수밖에 없다. 통치의 논법으로는 실제 국가가 책임을 다했나 하는 것보다는 책임을 다했다는 인정, 생각, 평가, 정서가 일차 관심이기 쉽다. 예를 들어, 저 IMF 경제위기에 무슨 정책 효과를 바라고 금 모으기를 했을까, 통치 차원이 아니면 해석하기 어렵다.
코로나19 유행도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통치의 핵심 관심사는 국가의 책임과 정당성이다. 우리는 흔히 어떤 사태나 결과 그것만으로 국가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정부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는 여론이 강할수록 국가 책임을 면할 수 있다고 할 때, 통치에는 정책보다 정치가 더 강한 영향을 미친다. 간단하게 표현하면,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아닌지를 둘러싼 투쟁.
통치 관점에서 이번 재유행에 대한 국가 책임을 물으면 어떻게 될까? 냉정하게 보자. 지금까지의 익숙한 책임 배분의 관행으로 보면 아직 국가가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근거를 찾기 어렵다. 이번 유행의 결과가 어떻든, 여러 이유로 정부는 할 말이 충분할 것이다.
첫째로 정부는 이미 개인의 행동 지침을 충분히(!) 전파했다. 홍보, 설득, 촉구, 경고 등 갖가지 형태로 개인 책임과 의무를 강조했고 효과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른바 ‘K-방역’을 성공이라 규정할 때 시민의 협조를 한 가지 요인으로 말했지만, 한편으로 이는 국가 책임의 개인화이기도 하다.
일부 개인과 집단의 일탈(또는 그렇게 보이는) 또한 국가가 책임을 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지금도 그렇다. 여론이 요구하는 국가 책임은 그러한 개별 행위자를 더 엄격하게 단속하고 처벌하는 것으로 옮겨가는 중이다.
어느 부분을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은 것도 역설적으로 국가 책임을 면하거나 늦추는 쪽으로 작용한다. 건강과 질병은 대부분이 개인적 문제로, 시스템과 정책으로도 이미 개인화한 지 오래다. 감염병과 같은 사회적 현상, 그리고 이를 다루는 공중보건도 좀처럼 국가 책임으로 연결되지 못한다.
그중에서도 치료, 심지어 일부 예방 조치까지 민간이 담당하는 것(일종의 민영화)은 국가 책임의 크기를 인식하기 어려운 핵심 이유다. 병상이 모자라도 다른 필수 의료가 잘 돌아가지 않아도 국가 책임의 최대한은 “적극적으로 협조를 요청”하는 것이 전부다. 의도하건 그렇지 않든 ‘개인화’는 감염병 대응을 둘러싼 통치의 중요한 전략이 되었다.
이번에는 한 가지 요인이 더 있다. 확진자 수가 더 늘어나도, 확진자가 넘쳐 병상이 모자라도, 코로나19 때문에 다른 필수 의료가 지장을 받더라도, 일부 의사가 파업했다는 중요한 핑곗거리가 생겼다. 통치의 관점에서 보면 실질적인 인과관계보다는 그렇다는 국민과 대중의 이해와 수용이 더 중요하다. 현재의 권력 관계로는, 결과가 어떻든 의사 파업이 어떤 ‘실패’의 책임을 분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왕에 한 마디를 더 보태자면, 의사 수 늘리기 정책 자체를 통치 차원에서 해석할 수도 있다. 재발할 수 있는 팬데믹과 재난 상태의 지역 보건의료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책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통치를 비교해 보시라. 단기 대응에서는 통치와 정책의 관점이 더 다르다. ‘공공보건의료 강화’와 ’의사 수 늘리기‘를 정책과 통치 관점에서 비교하면 그 정치적 효용성과 의미가 뒤바뀔 수도 있다.
그 어떤 정책도 통치를 벗어날 도리는 없지만, 인구에 대한 통치(목표와 수단을 포함)가 국민, 시민, 인민의 복리와 어긋날 수 있다는 점이 큰 문제다. 그 틈이 클수록 바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지금 통치의 핵심에 책임을 둘러싼 국가의 정당성 문제가 존재하며, 우리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국가 책임을 다시 규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통치의 논법을 빌리자면, 코로나19 대응에 대해 전면적인 국가 책임을 요구함으로써 통치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 급선무다.
첫째, 구조적으로 개인 예방과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기 어려운 개인과 인구집단에 대한 국가 책임을 다시 묻는다. 지난주 논평을 그대로 가져온다. 다만, 더 신속하게 더 적극적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 나아가 시민참여형, 시민주도형 방역이 가능하도록 제도와 정책 개혁이 긴요하다. 정부의 인식 전환을 촉구한다. 이 팬데믹이 언제 끝날지 불확실하고 새로운 유행이 몇 번이나 더 있을지 모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장기과제라기보다 이미 당면 과제라는 점도 덧붙인다.
둘째, 민간까지 포함한 의료체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또한 (코로나19 방역의 한 요소로서) 모든 필수 의료를 적절하게 유지할 책임을 요구한다. 국가와 정부는 책임 배분의 기존 틀을 넘어 자원과 방법을 모두 동원하고 성과를 낼 의무가 있다.
“민간이 협조하지 않았다”라거나 “전공의가 파업 중이었다” 따위의 핑계를 대지 말라. 우리는 국가 책임을 (몇몇 공공병원과 인력이 아니라) 건강과 보건의료를 둘러싼 체제 전체로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지금이야말로 그 책임이 통치의 영역으로 편입되는 중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