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눈치 보지 말고 즉각 코로나19 치료제 생산하라!
– 더 이상 초국적 제약회사의 독점공급에 국민의 목숨을 맡겨서는 안 된다 –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지난 22일 정례브리핑에서 현재까지 코로나19 치료제로 유일하게 허가받은 렘데시비르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렘데시비르가 국내 처음 도입된 7월 1일부터 길리어드사이언스社(이하 길리어드)의 공급에만 의존하고 있으며, 50일 넘는 기간 동안 발생한 4,152명의 확진자 중 143명에게만 투약이 된 상황이다. 전체 코로나19 환자 중 3%에게만 렘데시비르를 투약한 이유는 외국보다 까다로운 투약 대상자 선정기준 때문이었다. 렘데시비르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중대본은 앞으로 더 제한적인 투약 기준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치료제 투약이 의료적 고려보다는 공급량에 따라 좌우되고 있다.
공급량이 제한적인 이유는 렘데시비르 공급을 길리어드가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길리어드는 미국의 공공 연구소와 협력하여 렘데시비르의 개발에 성공했다. 하지만 특허 독점 때문에 길리어드와 계약을 맺은 생산시설에서만 생산할 수 있어 생산량 자체가 한정적이다. 현재 미국, 브라질, 인도 등은 매일 수만 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독일, 프랑스 등의 유럽 국가들도 매일 1,000명 이상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전 세계적 판데믹 상황에서 오직 길리어드만이 렘데시비르를 공급하고 있다.
최근 의학 학술지 JAMA에는 렘데시비르가 산소치료가 필요한 중증 환자(렘데시비르의 기존 허가 적응증)뿐만 아니라 산소포화도와 무관하게 폐렴 소견만 있는 중등도의 환자에게도 증상을 개선하는 데 유의한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는 렘데시비르가 항바이러스제인 만큼 신체 내 바이러스가 크게 확산하기 전에 빨리 투약을 시작하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예상과도 일치한다. 외신들은 미국 FDA가 이러한 결과에 맞추어 조만간 투약 대상자를 확대할 것으로 예측한다. 최근 국내에서 발표된 약 3,000명 환자 자료 분석에 따르면, 폐렴 소견만 있는 환자의 비율은 32% 수준이다. 이러한 결과에 맞추어 한국 정부도 투약 대상자 기준을 확대한다면, 현재의 렘데시비르 공급량은 필요량을 충족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참고자료 1).
현재 시점에서 렘데시비르 사용의 이점은 중증환자의 입원 기간을 4일 줄이고, 중등도 환자 70%를 11일 이내에 퇴원하게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에서 최대 약점은 감염병에 대응할 병상과 의료인력의 부족이다.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한국은 급증하는 감염환자에 대응하기 위해 렘데시비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입원 병상 부족을 막아야 한다. 정부의 대응이 도리어 역행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특허에 기초한 길리어드의 독점공급 구조 때문이다.
시민사회는 코로나19 유행 초기부터 치료제 공급을 위한 사전 준비를 정부에 요구했다(참고자료 2). 당시에는 없었던 치료제가 지금은 있지만, 우리는 지금 치료제를 제때 쓰지 못할 위험을 목도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세계보건총회 이후 줄곧, 백신과 치료제는 누가 개발하든 온 인류를 위한 공공재로써 공평하게 공급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현행 감염병예방법 40조, 특허법 106조의 2에 따라 감염병의 대유행이 우려되면 정부는 특허가 걸린 치료제를 공공 생산시설 또는 민간제약회사에 생산하게 할 수 있다[각주]. 한국에는 이미 렘데시비르 생산역량을 가진 여러 공공/민간 의약품 생산시설이 있다. 전 세계가 렘데시비르의 부족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 시설에서 렘데시비르를 생산하고, 우리 국민, 나아가 전 세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공급하는 것이야말로, 문 대통령이 말한 감염병 치료제의 공공재를 실천하는 길이다.
정부는 지금 당장 렘데시비르의 특허 강제실시를 발동하고 치료제 생산시설을 확충해야 한다. 캐나다는 2001년 탄저병 유행에 대비하여 치료제 확보를 위해 시프로의 특허 강제실시를 발동하여 아포텍스社를 통해 100만 정의 복제약을 생산하였고, 이스라엘은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코로나19 치료제로 유력했던 HIV 치료제 칼레트라의 특허 강제실시를 발동하였다. 한국 정부도 이미 특허청, 코로나19 치료제·백신 개발 범정부 지원 위원회 차원에서 해외 필수 치료제의 국내 수급이 어려운 비상상황에 대비하여 특허 강제실시를 검토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더 이상 강제실시를 미뤄선 안 된다. 한국의 코로나19 유행 추세가 엄중한 상황에서 렘데시비르의 수급 상황은 개선되기는커녕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초국적 제약회사의 특허권 보호 이전에 국민의 건강과 생명권을 보호해야 한다. 렘데시비르의 생산과 공급을 당장 시작하라.
2020년 8월 25일
건강과대안,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사회진보연대, 시민건강연구소, 지식연구소 공방, 참여연대, 무상의료운동본부(가난한이들의 건강권확보를 위한 연대회의, 건강세상네트워크, 기독청년의료인회, 대전시립병원 설립운동본부,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건강보험하나로시민회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전국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여성연대, 빈민해방실천연대(민노련, 전철연), 전국빈민연합(전노련, 빈철련), 노점노동연대, 참여연대, 서울YMCA 시민중계실, 천주교빈민사목위원회,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평등교육 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연대, 장애인배움터 너른마당, 일산병원노동조합,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약사의미래를준비하는모임, 성남무상의료운동본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노동조합, 전국정보경제서비스노동조합연맹)
각주. 일반적으로 의약품은 특허가 만료되어야 제네릭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세계무역기구의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에 따라 공중보건 위기 등 국가 위기 상황에서 정부는 공익적 목적을 위해 특허권자의 동의 없이 특허권 만료 이전에 제네릭의약품을 생산하게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이를 특허 강제실시라고 한다. 특허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행정부처나 법원의 사전 처분은 필요없으며, 특허권자는 관련 규정에 따라 추후 보상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
참고자료 1. Clinical Course and Outcomes of 3,060 Patients with Coronavirus Disease 2019 in Korea, January–May 2020. J Korean Med Sci. 2020 Aug 03;35(30):e280.
참고자료 2. [논평]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정부와 국회에 전하는 조언 (2020.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