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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는 내가 할게, 애는 누가 볼래? – 코로나 연구의 젠더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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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여름쯤이면 다소 진정되기를 바랐던 코로나 유행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뒤죽박죽된 일상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소위 ‘언택트’라는 삶의 양식이 각광받고 있지만, 누군가의 삶을 돌보는 일은 컨택트(접촉) 없이 불가능하고, 그 돌봄의 전선에 있는 이들에게 코로나 유행은 야속하기 그지없다. 특히나 아이들이 어린이집·학교에 가지 않으면서 ‘엄마’들은 직장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돌봄의 과중함에 짓눌리게 되었다 (☞관련 기사: 코로나19, 왜 여성의 위기가 되었나). 일-가정 양립이 상대적으로 낫다는 서구 국가의 상황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오늘 소개할 논문은 미국과 덴마크의 공동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eLife>에 발표한 것으로, 코로나19에 대한 연구들이 쏟아지는 시기에 여성 연구자들이 연구 활동을 제대로 이어가기 어려웠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논문: 메타연구: 코로나19 의학연구논문에서 기대보다 적은 여성 1저자).

 

연구진은 코로나 유행을 다룬 학술 논문들 중 제1저자와 책임저자가 미국에 거주하는 1,983편의 논문을 대상으로 저자의 성비를 계산하고, 2019년 같은 학술지에 실린 논문들의 성비 분포와 비교했다. 통계적 보정을 하지 않고 단순히 여성 저자의 비율을 계산했을 때, 제1저자, 책임저자, 전체 저자 모두에서 여성의 비율이 감소했다.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던 제1저자의 경우, 보정 전에도 38%에서 33%로 5%포인트 감소했으며, 통계적 보정을 거친 후에는 차이가 더 커져 38%에서 30%로 8%포인트 감소하였다. 코로나 유행으로 인한 혼란이 극심했던 2020년 3월과 4월을 따로 떼어 2019년과 비교했을 때는 40%에서 31%로 9% 포인트 감소하여 차이가 더 커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 영역에 따라 살펴보면 감염병학, 영상의학, 병리학, 공중보건 등 코로나 유행과 관련이 있는 분야에서 여성 저자비율의 감소가 가장 두드러졌다.

 

영국, 네덜란드, 호주, 미국의 공동 연구진이 <영국의사회지 국제보건 BMJ Global Health>에 발표한 논문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준다 (☞논문: 여성은 어디에? 코로나19 연구 저자됨에서 젠더불평등). 코로나와 관련된 학술논문에 참여한 여성 저자의 비율은 30% 남짓이었고, 특히 아프리카 지역에서 여성 저자의 비율이 낮게 나타났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8월 16일 기준 한국의 대표적 의학학술잡지인 <대한의학회지 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s>에 코로나19를 주제로 실린 논문은 총 74편이고, 이 중 학회 명의로 실린 것과 외국 저자들의 것을 제외하면 총 67편이 한국 저자의 논문이다. 67개 논문에 참여한 전체 저자 474명 중 여성 저자는 169명(약 36%)으로 추정되며 이 중 책임저자는 10명 내외(책임저자 중 약 16%), 1저자는 15명 내외(1저자 중 약 23%)에 불과하다.

이 결과만으로 한국에서 이루어진 연구의 전모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관찰된 결과가 세계적 동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볼 필요는 충분하다. 코로나 유행 전에도 주요 의학연구에서 여성 연구자는 과소대표되고 있었고, 코로나 유행은 젠더 차이를 악화시켰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우선 코로나 연구는 학계에서 이미 주도적 위치에 있는 연구자들에 의해 수행되고, 의뢰를 받아 논문이 실리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에 남성 중심의 학계 구조가 그대로 반영된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오늘 소개한 논문의 저자들은 코로나 연구가 평판 높은 학술지에 실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여성이 연구 참여에 명시적으로나 암묵적으로 배제당하고 있을 가능성을 지적한다. 또한 경력 초기의 연구자들이 논문의 제1저자로 참여하는 것이 학계에서 일반적인데, 경력 초기의 여성 연구자들이 코로나 유행으로 자녀 돌봄의 부담을 떠안고, 재택근무를 하면서 가사노동의 부담까지 지느라 연구 활동에 매진하기 어려운 상황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차이는 연구자 본인의 경력에 불리함으로 이어진다는 점도 문제지만, 코로나 유행 대응에 필요한 정책 근거 생산이라는 측면에서도 문제가 된다. 코로나 대응에서도 젠더 관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충분한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다. 일상적 돌봄을 받을 필요도, 또 일상적으로 누군가를 돌보아야 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정책은 꼭 여성이 아니라도 누군가의 필요를 놓칠 가능성이 크다. 엄정하고 객관적이라고 여겨지는 과학조차도 누구의 입장에서 수행되었는지에 따라 대단히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과학사의 최근 논의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요컨대 코로나19 연구의 젠더불평등은 연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 서지정보

– Andersen, J. P., Nielsen, M. W., Simone, N. L., Lewiss, R. E., & Jagsi, R. (2020). Meta-Research: COVID-19 medical papers have fewer women first authors than expected. Elife, 9, e58807.

– Pinho-Gomes, A. C., Peters, S., Thompson, K., Hockham, C., Ripullone, K., Woodward, M., & Carcel, C. (2020). Where are the women? Gender inequalities in COVID-19 research authorship. BMJ Global Health, 5(7), e002922.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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