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감각한 통계나 그 얇은 언론 보도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 정신건강이 위태롭다는 것은 이 시기 모두가 공유하는 감각이고 경험이다. 지금까지 아무렇지 않았던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모르겠다. 앞으로도 상황이 금방 달라질 것 같지 않으니 이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하나.
‘상식’이라고 했으나 그래도 몰라 최근 언론 기사 하나를 인용한다().
“지난해 20대 여성의 자살률은 전년 대비 25.5% 늘었고, 올 1∼8월 자살을 시도하는 20대 여성은 전체 자살시도자의 32.1%로 전 세대 통틀어 가장 많았다. 여전히 전체 자살률을 놓고 보면 남성 자살률이 여성보다 2∼3배가량 높지만, 20대 여성 자살률의 증가 폭은 다른 세대와 성별을 훨씬 상회한다.”
누구나 느끼고 아는 것처럼 이 통계는 우리 사회 전체의 정신건강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노파심에서 말하면, 자살을 오롯이 정신건강 문제로만 돌리는 것은 정확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렇지만 그것은 지금 우리의 정신건강 위기를 드러내는 잣대 같은 것이기도 하다.
위기는 또 다른 위기로 이어지는 법이다. 정신건강이 위태로운 것만큼 걱정스러운 것은 이를 개인 문제로, 그리하여 개인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알맞게 바꾸기를 요구하는 경향이다. 대응의 위기라고 할까. 최근 보건복지부가 개발해 배포했다는 모바일 앱 ‘마음프로그램’부터 그렇다().
“우리가 신체의 건강을 위해 꾸준히 운동을 하듯이, 마음프로그램 앱을 활용해 긴장된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고 스트레스 반응을 조절하는 방법(안정화 기법)을 익히고 일상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다.”
책임을 맡은 당국이나 해당 분야 종사자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전문화를 넘어 세부 전문화로 치닫는 경향적 추세 때문에도 좀 더 근본적인 해법을 내놓기 어려울 것이다. 새삼스럽지 않다. 세계보건기구나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가 내놓은 정신건강 위기 대처 방법도 지극히 상식적이고 ‘올드 노멀’을 벗어나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현실이 제기하는 과제는 그러고 말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 아는 그대로다. 코로나19 유행의 어떤 특성과 이유가 정신건강을 특별히 더 위협하는지. ‘개인적’인 것은 그것대로, 새로운 사회적 환경에서는 ‘사회적인 것’에도 주목해야 한다.
“16세 중증 발달장애 딸을 키우는 강모(44)씨는 요즘 들어 끔찍한 생각을 하다 몸서리친다. 사춘기인 딸은 기분이 나쁘면 엄마에게 침을 뱉기 시작했다. 급기야 대소변을 방바닥에 누고, 입에 넣어 강씨를 놀라게 했다. 코로나19로 특수학교와 복지센터가 휴관을 반복하는 기간 딸의 상태는 악화됐다.” (https://bit.ly/3lyJx4y)
“당시 0원이었던 수입은 코로나가 안정된 지금 3분의 1밖에 회복하지 못했습니다….“처음에는 화났어요, 모든 상황에 대해서. 그런 거 처음 느꼈지, 내가 돈을 못 벌어서 내가 쓸모가 없나? 이런 생각을 처음 했던 것 같아요.”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이처럼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습니다.” (https://bit.ly/2IEShr2)
이들에게 알아서 마음을 챙기라고 말하는 것은 가혹하고 또한 무용하다. 잠시 도움이 될 수 있고 또 그래야 하나, 몇 달 이상 계속되는 그 원인(들)을 해결하지 않고는 미래를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반드시 ‘사회적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 당국이 해야 할 일은, ‘코로나 블루’, ‘코로나 레드’ ‘코로나 블랙’에 그래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 생각한다면, 한 마디로 사회적인 조건을 개선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사회적이라 했으니, 정신건강이 목적이지만 정부가 할 수 있는 대부분 대책은 건강 바깥에 있다는 점을 유념하시라.
획기적 대책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보다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기조’가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한다. 그래야 용감하게 때로 무모할 정도로 돈을 더 쓸 수 있다. 아니 그래야 한다. 지금부터 무슨 프로그램을 새로 개발한다고 길게 볼 것이 아니라, 익숙한 사업이라도 재빨리, 더 크게, 조금 낫게 하면 된다.
첫째는 경제적 지원부터.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실직, 임금 감소, 반 토막 매출, 늘어가는 빚, 폐업과 파산은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요인이자 조건이다. 기간이 길어지면 훨씬 더 심각한 사태가 닥칠 것이 분명하다.
정부에 묻는다. 상황은 파악하고 있는가? 이에 해당하는 사람이 누군지는 알고 있는가? 재정 대책은 마련해 두었는가? 꼭 정신건강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막연히 사태를 낙관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크다.
둘째, 사회적 돌봄을 최대한으로 강화할 것.
장애인, 노인, 어린이 모두가 그렇다. 돌봄을 받아야 하는 사람도 돌봐야 하는 사람도 정신건강이 위태위태하다. 돌봄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제도와 체계, 재원, 인력을 말하기 전에 당장 위기를 벗어날 궁리를 해야 한다.
우선 두 가지만 말했으나 이는 그저 관심과 주의를 촉구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사람 살리기’를 기조로 삼으면 그 대책 대부분은 필시 정신건강과 맞닿는다. 그 정신건강이 불안, 우울, 공포, 분노와 연결되는 한, 그러하다.
필시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라는 반응이 있을 터. 정책과 실무의 어려움이 오죽하랴만, 예외적 상황에는 예외적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참으로 게으른 말이지만)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면, 근거 없는 낙관과 그건 내 과업이 아니라는 관료주의적 책임 회피를 가장 경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