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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공적 감정을 담은 정치가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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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연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코로나19로 인해 사회 전반의 불평등이 심해졌다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다(기사 바로가기 ; 기사 바로가기, 기사 바로가기) 여당대표는 코로나 시기에 많은 이득을 얻은 계층이나 업종이 이익의 일부를 자발적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이익공유제’를 제안했는데, 야당에서는 준조세 또는 반시장적 발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기사 바로가기 ; 기사 바로가기). 이익공유제가 전혀 새롭게 등장한 개념도 아닌데 정쟁의 대상으로만 삼을 것이 아니라, 이 거대한 사회적 재난에 맞닥트린 공동체를 살릴 수 있는 대안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여야가 머리를 맞대는 모습을 기대하는 건 무리였을까? 사회를 더 좋게 만들겠다는 그들의 약속과 결의는 어디로 갔을까?

 

그렇다면 정책 입안자들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정치적 아젠다와 사업들을 만들어야 할까. 그에 대한 한 대답으로 미국 캔자스대학의 라일 교수팀의 논문을 소개하고자 한다. 연구진은 아른스타인의 ‘참여의 사다리’ 모형의 정서적 측면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정책이나 사업을 기획할 때는 공감과 돌봄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논문 바로가기 : 누가 돌보는가? 아른스타인의 사다리, 공적 참여의 감정적 역설 그리고 돌봄으로 계획을 (다시)상상하기).

 

연구자들은 먼저 공적 영역에서 담당자들의 참여를 촉진하려고 할 때, 담당 공무원에게 생기는 ‘정서의 역설’을 이야기한다. ‘정서의 역설’이란 담당자가 업무에 깊이 관여하기 위해 감정적으로 헌신하면서 동시에 감정이나 정서적인 것을 ‘배제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할 때 생긴다. 그러나 이성적인 태도를 취하기 위해 감정과 정서적인 것을 배제하게 되면, 오히려 담당자는 갈등에 대처하는 역량이 저하되어서 신뢰와 협력을 촉진할 기회가 감소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심리학 및 신경과학의 연구들을 통해서 뇌에서 이성적 사고와 감정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이런 상호작용이 어떻게 신뢰와 협력과 같은 사회적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아울러 공무원들의 정서적인 측면을 다루는 가이드라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며, 미국지역사회기획자협회(American Institute of Certified Planners)의 윤리강령을 제시한다. 이 윤리강령은 지역사회를 위해 일하는 공적 업무수행자들에게 “모든 사람들의 복지를 위해 연민을 가지고 공익에 봉사하며, 전문가로서 성실하게 행동해야 할 의무를 가진 것이 우리 직업의 특별한 책임이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여기서 “연민”이라는 감정을 강조하는데, 이를 실무에 적용하기 위해 감정 지능(emotional intelligence), 사회 지능(social intelligence), 문화 지능(cultural intelligence)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감정 지능은 “감정이 우리의 사고와 의사 결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이해”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사회 지능은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고, 문화 지능은 “다양한 문화적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기능하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 즉 문화적 감수성을 말한다.

 

또한 연구자들은 사회적 관계에서 권력의 역설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사회적 관계에서 권력이란 “다른 사람들을 자극함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권력을 잘못 휘두르면 폭력이 될 수 있지만 자신과 타인의 감정적·사회적·문화적 지능을 잘 함양한다면 협력을 촉진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본다.

 

연구진은 공적 업무수행자들이 ‘돌봄’의 관점에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은 감정 지능과 사회 지능에 바탕을 둔 리더십, 문화적 겸손, 그리고 연민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연민은 “고통을 보고 공감하며 공동체를 치유하고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공적 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의 기본태도임을 강조한다.

 

저명한 정치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정치적 감정>이라는 책에서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데는 사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는 ‘공적 감정’이 있다고 했다. 이 논문의 저자들이 이야기하는 ‘연민’과 마사 누스바움이 이야기하는 ‘사랑’으로서의 공적 감정은 공공의 일을 하는 데 필요한 감정이라는 점에서 닮아 있다.

 

이 논문은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태도와 정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처럼 고통에 공감하고 이를 치유하기 위한 돌봄의 자세로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것은 현재 우리 공동체가 처한 사회적 고통을 해결하는데 있어 매우 시급한 일이다. 이제 1년을 꼬박 채운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비상상태가 빼앗아간 평범한 일상의 부재는 가늠할 수 없는 큰 사회적 아픔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흔히 정치는 감정을 배제한 이성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고통을 해결하고자 하는 감정이 빠진 정치는 더 큰 권력을 향해 흘러가기 쉽다. 지금 우리에게는 삶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공적 감정을 담은 정치가 절실하다.

 

*서지사항

Lyles, W., & Swearingen White, S. (2019). Who cares? Arnstein’s ladder, the emotional paradox of public engagement, and (re) imagining planning as caring. Journal of the American Planning Association, 85(3), 287-300.

참고문헌

마사 누스바움. (2019). 정치적 감정: 정의를 위해 왜 사랑이 중요한가 (박영준 역). 파주 :글항아리. (원서출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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