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 필수노동자는 ‘예비존재’가 아니다
–“예비명단”이라는 차별과 배제의 코로나19 백신접종계획 즉각 개정하라!
1월 28일 정부는 ‘일상 회복을 위한 코로나19 전국민 무료예방접종 실시’라는 계획을 발표했다. 계획 수립 과정은 철저히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배제하고 관료와 전문가만의 폐쇄적 협의로 이루어졌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코로나19인권대응네트워크(이하 코인넷)는 이에 앞선 1월 25일 백신 우선순위와 배분결정에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존중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성명). 하지만, 정부가 발표한 계획에는 인권의 원칙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2월 15일 정부는”코로나19 예방접종 2-3월 시행계획”을 발표한다. 1분기 접종대상인 고위험의료기관 종사자는 ‘보건의료인’으로 한정하고 그 구체적 직군을 나열했다. 역시 1분기 접종대상인 코로나19 1차 대응요원에 포함하는 직군도 나열되었다. 여기에는 간병노동자도, 의료기관 시설관리노동자도 없었으며, 환자 이송업무 노동자나 청소노동자도 없었다. 고위험의료기관에서 일하지만, 이들의 이름은 없었다. 이들 역시 코로나19 1차 대응요원이지만 1분기 접종대상자가 아니었다. 그런 채로 2월 26일 예방접종은 시작되었다.
3월 2일 정부는 “코로나바이러스-19 예방접종사업 지침 – 지자체용- 1판”을 발표했다. 드디어 앞에서 호명되지 않았던 이들의 이름을 이 지침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접종)동의여부와 관계없이 의료기관이 등록한 대상자수를 기준으로 백신 공급예정으로… 예방접종을 받지 못하는 경우 등을 고려하여 예비명단 사전 마련”이라는 문구와 함께 등장한다. 이 예비명단은 “1. 청소노동자(폐기물 처리 및 환경미화 관련 종사자), 2. 환자 이송업무 종사자, 3. 진료 보조 종사자, 4. 그 외 위험군으로 판단되는 인력” 이라고 소개되었다. 지침의 주요 질문과 응답에서 예비명단인 이들에 대한 접종계획은 이렇게 설명된다. “예비명단을 사전에 준비하여 백신 폐기량을 줄이도록 합니다”, “접종 예정 물량은 당일 소진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예비 명단에 따라 접종이 이루어집니다”, “미접종자가 발생할 경우 예비명단 대상자들에게 잔여분을 접종하도록 합니다”
의료기관 필수노동자들은 백신 폐기량을 줄이고, 백신을 소진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의료기관 필수노동자의 백신접종 우선순위는 조금 뒤로 밀릴 수도 있다. 더 급히 보호해야할 이들을 위해 양보를 할 수도 있다. 접종 순서는 감염 위험과 보호의 필요성에 따라 정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칙에 대한 고려없이 의료기관 필수노동자를 “예비명단”으로 포함시켜버린 것이야 말로 비과학적, 비윤리적인 정책결정이다. 2분기 접종대상자로도 포함되지 못한 필수노동자들을 1분기 예비명단으로 포함한 이 결정이야 말로 정부정책이 얼마나 비과학적이고 비윤리적인지 증명한다.
지난 1년간 의료기관 필수노동자들도 언제 감염될지 모르는 공포와 불안을 감내하며 일했다. 나로 인해 환자와 나의 주변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마스크를 공급받지 못해도 참았다. 적지 않은 비용의 코로나19 검사도 노동을 이어가기 위해서 자비로 계속 받아야 했다. 그렇게 버텨온 1년이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이 “예비명단”은 의료기관 필수노동자들을 직군에 따라 위계를 세우고 차별하는 일이자, 노동자들의 존엄을 매우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다. 또한 코로나19 대응에 묵묵히 함께한 수많은 노동자들을 백신 폐기량 절감과 백신 소진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는 일이다. 백신접종은 모든 시민의 정당한 권리이지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예비명단 따위로 노동자들을 대상화하는 정부의 지침에 분노를 금치 못한다. 이에 우리 인권시민단체들은 분명하게 요구한다.
– 정부는 의료기관 필수노동자를 예비명단으로 명명한 현재의 지침에 대해 즉각 사과하라!
– 정부 지침에서 의료기관 필수노동자들을 예비명단이 아닌 접종대상자로 포함하라!
2021년 3월 10일
코로나19인권대응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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