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코로나19 대유행이 2년째 접어드는 지금, 모든 국가가 백신 확보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코로나19로 사회 전반의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다는 안타까운 기사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직업과 소득을 잃게 되면서 의료서비스와 식량을 비롯한 필수재를 충분히 소비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높은 주거비를 감당하기도 힘들어졌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 우려가 높아지고 있지만, 저금리와 정부의 유동성 공급정책, 그리고 새로운 주택에 대한 수요는 한국을 포함하여 여러 국가들에서 오히려 집값 상승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관련기사 : 바로가기).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한다는 분석도 있지만, 코로나19로 이미 타격이 큰 저소득층에게 집값 상승은 삶의 토대를 크게 뒤흔드는 커다란 위협이다.
그렇다면 집값 상승은 코로나19와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다시 말해 높은 집값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처한 상황은 코로나19 사태 가운데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오늘 소개할 연구는 코로나19는 물론 높은 집값이라는 압박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던 이들의 이야기다. 코로나19가 미국 전역에 크게 확산되며 지역사회를 황폐화시킨다는 우려까지 나오던 작년 가을, 국제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에는 집값 상승이 코로나19 환자 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분석한 논문이 실렸다(논문 바로가기: 매사추세츠의 증가하는 집값과 코로나19 환자 수). 먼저 연구진은 누가 코로나19 감염 위험에 노출되고 있느냐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한 지역 내의 경제개발 혹은 주택개발이 어떻게 코로나 감염에 영향을 주는지는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일례로 비싼 집들이 즐비한 지역에 거주하는 저소득층이 사스(SARS)에 더 많이 감염되었다는 연구는 지역의 주택 환경과 감염성 질환의 관계를 추론하게 한다(논문 바로가기: 최빈곤 가구에서 사회적 자본의 배가와 침식).
연구진은 메사추세츠의 지역사회환경조사에서 지난 5년간의 지역별 집값 상승률과 중위값, 월세 중위값 등 집값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고, 보건부 통계에서 2020년 7월 15일 기준 인구 10만명 당 코로나19 확진자 수를 파악했다. 집값과 코로나19 확진자 수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검진자 수를 보정했는데, 이는 검진자 수가 확진자 수에 영향을 미치면서 동시에 지역사회의 사회경제적 현황 혹은 자원의 접근성과도 관계가 있는 교란 변수이기 때문이다. 회귀분석 결과, 과밀성 문제(가구 면적이 좁거나 방 개수가 적은 주거환경)를 가진 가구가 많은 시(市)에서 확진자가 나올 가능성이 더 컸다. 또한 2015년 이후 집값 상승률이 코로나19 확진자 수와 양(+)의 관계를 보였는데(집값 1%p 상승시 인구 10만 명 당 43명 발생), 지역별 인종 분포를 보정하고도 그 관계가 통계적으로 유의했다.
통계 분석과 함께 연구진은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많은 지역의 주민을 대상으로 인터뷰도 실시했다. “더 이상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집은 이 지역에 없는 것 같아요. 한동안 친척 집에 머물다가 홈리스 쉼터에서 머물었어요.” “더 이상 집값을 감당하기 어려워 파트타임을 뛰거나, 모르는 사람과 룸 쉐어를 할 수밖에 없어요” 라며 주민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코로나19 유행 이후로 경기는 침체되었지만 집값은 계속 오르고 있어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그렇다면 집값 상승은 코로나19와 같은 감염성 질환과 어떻게 연관되는 걸까. 집값 상승을 견디지 못해 불가피하게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거나, 혹은 현재 사는 집보다 규모를 줄어서 비용을 감당하려는 일련의 현상을 “비자발적 이사”라고 한다. 저자들은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거나 소득을 상실하면서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비자발적 이사가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높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 이사를 가게 된 집들은 대체적으로 먼저 살던 집보다 주거 환경이 낙후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과밀성이 매우 높거나, 위생‧환기 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주거환경은 실내 공기로 전파되는 바이러스 양을 줄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감염의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또한 높은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취약계층들은 대체로 재택근무를 할 수 없는 노동조건을 가졌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은 감염 위험이 높은 작업장에서 장시간 노출되어 생활비를 벌어야만 한다. 설령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이라도 의식주, 업무, 여가까지 모두 집에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외부를 드나드는 동거인들과의 잦은 접촉은 감염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 연구진들은 인과관계를 엄밀하게 추정하는 방법론을 사용하진 않았음을 당부하지만, 코로나19 유행에서 취약한 주거와 근린환경이 감염 위험을 높일 수 있는 강력한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재정적 어려움을 견디지 못해 이사를 갈 수 밖에 없었던 선택이 안타깝게도 감염 위험에 노출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비자발적 이사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코로나19는 주거취약계층의 문제를 드러내는 기폭제가 되었다는 사실은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기사 바로가기). 생활 기능의 일부를 담당하던 여러 시설들이 문을 닫으면서 모든 생활을 좁은 집에서 감당해야 하는 청년들의 현실이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실상 어려운 홈리스 쉼터에서 발생한 집단 감염은 주거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할 때 직면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준다.
삶의 터전을 옮긴다는 것은,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쉽지 않은 일이다. 기존에 형성되어 있던 지역사회 이웃들과의 관계를 잃을 수 있음은 물론이고, 취약계층들의 비자발적 이사는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양질의 주거 환경을 보장받지 못하는 주거취약계층은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본래의 취약성과 위기 상황으로 인한 취약성이 중첩된 이중부담에 놓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로서의 주거권 보장은 코로나19 대책으로서도 매우 중요하다.
*서지사항
-Mariana C. Arcaya, Yael Nidam, Andrew Binet, Reann Gibson, Vedette Gavin(2020). Rising home values and Covid-19 case rates in Massachusetts. Social Science & Medicine Volume 265, November 2020. https://doi.org/10.1016/j.socscimed.2020.113290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