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서울과 부산의 ‘포스트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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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큰 두 도시, 중요성만 보면 한국 전체와 맞먹는 두 도시의 시장을 새로 뽑는다고 한다. 선거일이 언젠지 혹시 아시는지? 후보자들이 어떤 공약을 내놓았는지는? 다른 지역은 말할 것 없지만, 투표를 해야 하는 사람들도 ‘무관심’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임기가 얼마 되지 않는 것을 비롯해 사정이 있다는 점은 이해한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이나 부동산 가격 폭등과 같은 현재형, 생활형 관심사가 다른 문제를 압도하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해도 이 정치는 현상 유지에도 이르지 못한, 그야말로 퇴행적이다.

판단의 유력한 근거는 선거와 이를 둘러싼 정치가 코로나19와 전혀 무관해 보인다는 점이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역사적 사건을 겪고도, 그리고 그것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진행 중인 사건임을 매일 경험하면서도, 선거, 후보, 공약, 정치는 아무 상관 없이 구닥다리 그대로, 아니 더 심해졌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 유행에 서울과 부산에서, 주로 그 정부가 어떻게 잘 대처하겠다는 구상부터 ‘빈약’이거나 ‘부재’다. 유권자의 관심이나 선거의 정치적 의미를 생각하면 의아함을 넘어 솔직히 좀 놀랍다.

개인적 실력으로 보면, 짐작하건대 지난 일 년간 어떤 일이 어떻게 문제가 되었는지 잘 모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해하지 못하면 앞으로 일 년간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실행해야 하는지 대책을 내놓을 수 없다.

지역과 주민의 중요한 삶을 놓친 것이다. 벌써 충분히(!) 드러난 ‘불평등한 코로나’에 대한 생각도 알기 어렵다. 홈리스, 장애인, 여러 나쁜 조건에 있는 노인들은 표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그들의 코로나에 관심을 보였다는 말조차 듣기 힘들다.

좀 더 크게는 미래 비전이나 희망을 제시하는 의무도 저버린다. 5년, 10년짜리 공약도 많은 마당에, 임기 때문에 장기 대책이 필요 없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코로나19와 직접 관계가 있는 장기 구상, 비슷한 팬데믹이나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 어떤 체계와 구조로 대응하자는 제안이 있는가?

현실 정치에서 방역이나 보건의료는 너무 작고 좁다고 치자(방역과 사회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올드 노멀’이다). 두 거대 도시의 시장을 하겠다고 하면서 코로나가 끝난 후의 ‘뉴노멀’에는 일언반구도 없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싶다.

세계는 이미 ‘포스트 코로나’로 빠르게 이동하는 중이다. 도시, 산업, 경제, 교통, 주거, 교육, 에너지, 공중보건은 어떻게 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모색과 연구, 성찰과 토론이 한창이다. 도시를 넘어, 국가, 국제까지 가면 그 넓이와 깊이는 훨씬 더하다.

이런 노력의 결과는 변화의 힘으로 바뀔 수밖에 없으니, 적응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데 이바지하리라. 문제는 그들은 그들이고 우리는 우리 사정이 있다면서 모른 척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부산에서는 신공항 문제가 초미의 관심이라지만, 우리 모두 가까운 미래의 이동, 여행, 물류, 관광이 코로나 이전과 완전히 다를 것이라는 점을 안다. 이번 부산 시장 선거는 곧 일상에 들어올 이런 ‘포스트 코로나’를 어떻게 토론하고 경쟁하는가?

현상 그 자체보다 코로나와 포스트 코로나가 서울과 부산의 선거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이유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최소한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정도 차는 있겠지만 두 지역뿐 아니라 한국 전체가 비슷할 것이다.

하나는 이미 말했으니, 포스트 코로나와 뉴노멀을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따져보면 세계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나, 이 땅에서는 그중에서도 여전히 경제, 발전, 성장, 선진국, 국력 등이 큰 힘을 발휘한다.

남은 둘 가운데 첫째 또한 익숙한 것으로, 일종의 전문가주의 또는 속류 과학주의라 할 만하다. 코로나라는 말만 붙으면 어떤 사안이라도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것이라고 보고, 전문가나 전문 관료가 담당할 문제에 정치나 시민은 왈가왈부하지 말자는 것. 이렇게 되면 선거 또는 공론에 코로나와 포스트 코로나가 등장하기 어렵다.

가장 중요한 마지막 이유는 코로나19를 서울이나 부산이라는 ‘지역’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 전국적 사안으로 본다는 점이다. 선거와 투표의 정치적 성격을 생각하면, 지역 주민(유권자)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후보자들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현실에서 코로나19의 문제와 과제가 표출되는 공간이 지역이라는 점에서 이런 분리는 차라리 ‘분열적’으로 보인다. 중환자를 치료할 병상을 찾아야 하고 서민 경제를 걱정해야 할 공간은 지역인데, 이에 대응하는 주체와 방식은 국가적이고 중앙집권적이다. 우리는 지역의 백신 배분도 재난지원금도 국가적으로 논의하고 논쟁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이겠으나 이 구분과 분열은 흔히 국가보다는 지역에 더 불리하다. 지역 사정에 다 맞추기 어렵고 필요를 다 충족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포스트 코로나의 국가 방역대책이나 구조가 그대로 ‘서울형’, ‘부산형’이 되지 못하는 것이 한 가지 예다.

결국, 적어도 세 가지 이유가 얽혀 코로나와 포스트 코로나는 (넓은 의미에서) 지역의 정치가 되지 못하는 셈이다. 그중에서도 국가와 지역의 분리, 분열을 거듭 강조하고자 한다. 현장은 지역인데 국가적 논의만 하면 그것이야말로 빌 공(空)자 ‘공론’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서울과 부산 시장 선거로 한국 사회 전체의 포스트 코로나 논의를 점칠 수 있지 않을까 판단한다. 현실과 분리된 논의, 공론, 정치적 비전. 이대로 가면 코로나19의 (중요한) 역사와 경험, 고통은 포스트 코로나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 포스트 코로나와 뉴노멀은 없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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