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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 지적 기능을 가진 사람들의 건강한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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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욱(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최근 몇 년 사이 경계선(경계성) 지적기능을 가진 사람들의 피해가 알려지며 이들에 대한 사회적 보호방안과 지원조직이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 부산여성가족개발원에서는 「경계성 지능장애 여성의 성폭력·성매매 피해 예방방안」이라는 연구보고서를 발간하였고(기사 바로가기), 경계선 지능아동을 자녀로 둔 부모들의 자조모임이 토대가 된 비영리법인 ‘느린학습자시민회’가 곧 결성될 예정이다(기사 바로가기).

 

경계선 지능이란 지능검사 기준(IQ) 71~84 사이로 지적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경계선에 해당하는 것으로, ‘경계선 지적 기능(Borderline Intellectual Functioning)’ 으로도 불린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이들은 ‘더딘 아이’, ‘느린 학습자’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인 포레스트 검프가 바로 경계선 지능인에 해당한다.

 

경계선 지능을 가진 아이들은 학업, 대인관계 등에 있어서도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학교 및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부적응은 심리적 문제로 이어진다. 더욱이 성인이 된 후에는 안정적인 직장을 구할 가능성도 낮아 사회적 고립 및 경제적 불안정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장애와 비장애 경계선 사이에 있는 이들은 장애인이 아니기 때문에 제도적 보호와 지원을 받을 수 없다. 게다가 경계선 지능이 가진 특수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은 이들로 하여금 장애 아닌 장애를 겪게 만들고 있다.

 

미국 정신건강의학회에 따르면 이들은 전체 인구의 약 13.6%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 적지 않은 비중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학계에서나 사회적으로 주목받지 못하였다. 오늘 소개할 논문은 경계선 지능을 가진 사람들의 정신건강에 주목하여 핀란드의 유배스큘래대학교와 지적장애 및 발달장애인협회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지적장애연구>에 발표한 논문이다(논문 바로가기: 경계선 지적 기능: 심각한 정신과적 문제와 근로 무능력의 위험 증가).

 

이 논문은 1962~1998년에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1962년 당시 5-17세였던 사람들을 경계선 지능, 경미한 지적장애, 학습문제 집단으로 구분하여 이들의 장애연금수급, 입원서비스이용, 지적장애서비스이용 등을 일반인구집단과 비교하였다. 연구 결과 경계선 지능집단은 일반인구집단에 비해 장애연금 수급 비중이 높았고, 정신과 입원서비스 이용이 많고 입원기간이 더 긴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두 집단 간에 신체적 건강문제로 인한 입원서비스 이용은 비슷한 반면, 입원기간은 경계선 지능집단에서 더 긴 것으로 나타나 경계선 지능을 지닌 사람들이 정신 건강은 더 취약하고 만성질환 유병률은 더 높은 것으로 해석되었다.

 

또한 경미한 지적 장애 집단과 학습문제 집단의 정신과 입원 서비스 이용은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인 반면, 경계선 지능 집단은 이러한 추세가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와 같은 결과가 경계선 지능을 지닌 집단이 다른 집단에 비해 정신 건강 문제가 더 심각하고, 외래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제대로 지원받지 못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동시에 이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경계선 지능을 지닌 사람들의 삶에 불리한 경험이 누적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록 이 연구가 오래 전에 수집된 자료를 토대로 하지만 경계선 지능을 가진 사람들이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아닌 삶 가운데서 교육, 돌봄, 노동 등 여러 영역에서 배제되어왔고, 여전히 이들에 대한 사회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연구결과는 현재도 유효하다. 만약에 경계선 지능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 체계가 제대로 구축되었다면, 이들이 더 다채롭고 행복한 삶을 기대할 수 있지 않았을까?

 

반가운 소식은 작년 9월 ‘서울특별시 경계선지능인 평생교육 지원 조례안’이 의회를 통과하여 서울시에 거주하고 있는 경계선 지능인들을 위한 평생교육 지원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이는 경계선 지능인 지원에 대한 전국 최초의 조례이기도 하다. 이 조례가 부디 최초라는 상징성에 그치지 않기를, 또 다른 경계선을 그어 이들을 소외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서지정보

Peltopuro, M., Vesala, H. T., Ahonen, T., & Närhi, V. M. (2020). Borderline intellectual functioning: an increased risk of severe psychiatric problems and inability to work. Journal of Intellectual Disability Research, 64(12), 923–933. https://doi.org/10.1111/jir.12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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