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환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코로나19 대유행이 1년하고도 4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4월 29일 현재 한국 인구의 약 6%인 305만6004명이 1차 예방접종을 받았다. 빠른 속도로 예방접종이 이루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모든 사람이 예방접종을 마치고 완전접종자가 된다고 해서 코로나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1년이 넘도록 ‘조심하고 참으라’라는 말을 들어온 사람들은 백신을 맞은 것만으로 벌써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환상의 달콤함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와중에 다른 나라 이야기로만 여겨지던 백신 여권이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도입되려는 모양새다. 여름 이후에나 검토한다던 완전접종자의 자가격리 면제도 당장 오는 5월 초부터 도입된다고 하니 그 속도가 무시무시하다.(☞ 관련 기사 : <연합뉴스> 4월 28일 자 ‘백신 다 맞았다면 확진자 접촉해도 외국 갔다 와도 자가격리 면제‘)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백신 여권을 도입하면 모두가 행복할까?
백신 여권은 면역 여권, 면역 인증서, 백신 카드 등으로도 불리며 코로나19에 걸려있거나, 앞으로 걸릴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인증하는 다양한 양식의 증명서를 통칭한다. 구체적으로는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음성검사확인서, 이미 감염되었다가 회복했기 때문에 다시 감염될 가능성이 작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회복확인서(한국의 경우 격리해제확인서), 예방접종을 완료해 감염될 가능성이 작다는 사실을 뜻하는 예방접종확인서로 구분한다. 이 중 입국 전 일정 시간 내에 이루어진 RT-PCR 검사 결과를 보고하는 음성검사확인서는 대부분 국가가 해외입국자를 대상으로 활용하고 있다.(☞ 바로 가기 : 외교부 5월 3일 자 ‘코로나19 관련 각국의 해외입국자에 대한 입국제한 조치 실시 국가(지역)‘)
2020년 12월 즈음 코로나 예방접종이 시작되면서 감염자의 해외 유입을 막아 인구집단을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던 면역 여권이 일부 사람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기 위한 백신 여권으로 뒤집혀 논의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백신 여권을 제도화한 나라는 국민의 50% 이상이 접종을 완료한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두 번째 예방접종을 마쳐 예방접종증명서를 받을 수 있거나,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가 회복되어 회복증명서를 받을 수 있는 사람, 16세 미만 중 PCR 음성 판정을 받은 사람을 대상으로 6개월 동안 유효한 ‘그린 패스(Green Pass)’를 발급한다. 그린 패스를 가지고 갈 수 있는 곳은 체육관, 수영장, 레스토랑과 카페, 호텔, 영화관, 문화행사 등이다.(☞ 바로 가기 : 이스라엘 보건복지부 홈페이지 ‘What is Green Pass?’) 그린 패스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는 곧 그린 패스를 발급 받지 못한 사람들은 이들 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편, 영국은 예방접종확인서를 백신 여권으로 활용하지 않을 것이라던 초기 입장을 번복하고 2021년 3월 백신 여권 도입을 중단하라는 청원(☞ 바로 가기 : 영국 정부·의회 홈페이지 ‘Do not rollout Covid-19 vaccine passports’)에 도입 검토 중이라는 답변을 내어놓았고,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한 아이프루브(iProov)와 엠바인(Mvine)은 계속해서 백신 여권을 시험 중이다.(☞ 바로 가기 : 아이프루브 1월 13일 자 보도자료 ‘Covid-19 Passport from iProov and Mvine Moves Into Trial Phase’) 한국에서도 예방접종증명서를 전자문서로 발급하는 앱인 COOV를 만들었고, 이 앱은 언제든 이스라엘의 Green Pass처럼 활용할 수 있다.(☞ 바로 가기 : 질병관리청 4월 14일 자 보도자료 ‘전자 예방접종증명서, 블록체인 기술로 위변조를 방지하여 발급’)
세계보건기구(WHO)는 유행 초기부터 면역 여권을 반대해 왔다.(☞ 바로 가기 : WHO 4월 24일 자 ‘“Immunity passports” in the context of COVID-19‘) 예방접종이 시작된 이후에도 백신 여권을 통해 국제 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데에 명시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내어놓았다. 세계보건기구는 백신의 효과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점, 백신 여권의 도입이 불평등을 심화하고 또 다른 이들의 이동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점, 현재 백신을 세계보건규약(International Health Regulation, IHR)에 따라 보편적으로 이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 안전하고 정확하게 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디지털 표준이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반대의 논거로 들었다.(☞ 바로 가기 : WHO 2월 5일 자 ‘Interim position paper: considerations regarding proof of COVID-19 vaccination for international travellers‘)
아직 예방접종 초기 단계이지만 한국에서 예방접종이 형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게다가 예방접종을 끝낸 사람에게 해외여행 후 자가격리를 면제해주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정보에 빠른 사람들이 위탁기관에서 예방접종 예약 불이행으로 남은 백신을 접종받을 수 있게 되면서 코로나 예방접종의 불평등은 빠르게 커질 기세다.(☞ 관련 기사 : <연합뉴스> 4월 30일 자 ‘“노쇼로 남는 백신 없나요” 전국 지자체에 문의 쇄도‘) 이스라엘의 그린 패스가 가능하게 해주는 일상생활의 대부분은 사실 유행 기간 내내 한국에서 할 수 있었던 것들이다. 백신 여권을 받는데 필요한 스마트폰도 흔해졌다고 하지만 전체 성인의 93%만이 쓰고 있다는 점도 격차를 키운다.(☞ 바로 가기 : 한국갤럽 2020년 8월 20일 자 ‘2012-2020 스마트폰 사용률 & 브랜드, 스마트워치, 무선이어폰에 대한 조사‘) 2019년 기준 해외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사람은 한국 인구의 30.4%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가구소득이 월 200만 원 미만인 사람 중에 해외여행 경험이 있는 사람은 20%도 되지 않는다.(☞ 바로 가기 : 통계청 2019년 11월 25일 자 ‘해외여행 경험 및 횟수‘) 도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백신 여권을 도입하자고 말하는지 진지하게 되물어야 할 일이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대유행을 맞아 많은 언론이 해외 상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 백신을 얼마나 확보했는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국가별 ‘순위표’로 이어집니다. 반면 코로나19 이면에 있는 각국의 역사와 제도적 맥락, 유행 대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경제·사회적 역동을 짚는 보도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코로나와 글로벌 헬스 와치’를 통해 격주 수요일, 각국이 처한 건강보장의 위기와 그에 대응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모두의 건강 보장(Health for All)’을 위한 대안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