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은 불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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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이해하지 못할 이런 비상식적 상황이 왜 이렇게 오래 계속될까. 어떤 건강 문제라도 이런 심각성이면 무슨 대책이라도 만들어졌을 것이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꼴로는 신문에 나고 방송 전파를 탔으리라. 그러나 집단 망각이다.

가장 먼저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생명의 값을 돈으로 바꾸는 노골적 경향 때문이다. 구조적으로 이야기하면, 목숨값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시장경제의 상품화 경향이 이렇게 만든다. 아예 노동 ‘시장’이라고 하지 않던가. 벌금을 내든 다른 노동자를 구하든 사고 예방과 보호에 드는 돈보다 그편이 싸다.

 

2013년 4월 29일 낸 <서리풀 논평>의 문제의식은 시간을 훌쩍 건너뛰어 지금도 그대로다(☞논평 바로보기).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기간, 우리에게 지난 8년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노동 현장을 지배하는 생명과 죽음의 원리는 거의 모든 것이 그대로니 절로 한숨이 나온다.

 

지난달 22일 평택항에서 숨진 고 이선호씨는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했다. 이것부터 판에 박은 듯 익숙하니 이 불행은 분명 시대적이다. 이번에는 무려(!) 대통령까지 직접 조문했으니 좀 다를까. ‘범정부 태스크포스’를 만들라고 꼭 찍어 지시했다지만, 과연 이게 마지막일까.

 

 

그럴 리 없다. 이런 와중에도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용접 노동자가 배에서 추락해 생명을 잃었고, 현대제철 당진 공장에서도 사망사고가 일어났다. 무슨 행사나 캠페인, 생색내기 조직 정도로는 이 완강한 구조를 위협할 수 없다.

 

산재는 끊임없이 ‘탈구조화’하는 경향이 있다. 첫째, 개인화 또는 개별화. 한국에서 노동자의 생명은 흔히 사건·사고 수준을 넘지 못하고 기업도 따라서 개별화된다. 언론의 관심을 끌 정도가 아니면 묻히고 보이지 않는 것이다.

 

사실, 구조는 물에 잠긴 그 부분에 내재한다. 별로 유명하지 않은 작은 공장에서 다친 사람은 또 얼마일까, ‘느린 폭력’은 곳곳에서 또 얼마나 일어나고 있을까. 그 대신 중요하고 눈에 띄는 몇 가지가 전부인 것처럼 된다.

 

비가시성과 더불어, 혹 보여도 그리 놀라지 않게 되는 것도 개별화의 산물이다. 어디든 어느 분야이든 그런 기업과 그런 노동자가 있기 마련이면 산재는 결코 구조적 문제가 되지 못한다. 일부 빗나간 사례를 고치는 것으로 충분하다.

 

둘째, 산재의 기술화, 행정화, 정책화도 구조로부터 눈을 돌리게 한다. 이제 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고쳐야 한다는 소리가 나온다지만, 솔직히 이런 분위기는 곧 지나가리라 다들 짐작한다. 냉소와 비관이라기보다, 전시와 의례의 통치, ‘유체 이탈’의 상징 정치, 책임 떠넘기기의 ‘짝퉁 정책’이 합작하면 흔히 별 실속 없는 법이나 조직 문제로 귀결된다.

 

모든 산재 문제는 권력관계의 문제이며 따라서 정치적인 것이다. 당장 산재가 좀처럼 줄지 않는 현실부터 권력관계의 결과가 아닌가. 산재로 죽고 다치는 노동자가 속출하는 데도 기업은 타격을 받지 않고, 감독하고 규제해야 할 정부는 경제와 수출, 기업의 비용 절감을 명분으로 한쪽 편을 들기 바쁘다. 언론과 학술의 편향도 선명하니, 지금 ‘산재 체제’의 구조가 이렇다.

 

겉으로 행정이나 정책처럼 보여도 산재는 더더구나 완전히 정치다. 중대재해처벌법 한 가지만 해도 힘과 힘이 각축하는 운동장, 아니 차라리 ‘전장’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힘의 관계와 그것의 불평등이 명백한 모순과 투쟁의 장.

 

현실에서는 숨은 관계와 힘의 연대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통칭 경제계나 기업이라 부르는 ‘경제권력’ 또는 ‘자본’은 그렇다 치자. 대통령이 조문 ‘행사’를 하는 한편에서 한 경제 신문이 뽑은 제목은 “경영계에 공들이는 신임 고용부 장관”이다(☞관련 기사 바로보기).

 

안 장관은 “코로나19로 인해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큰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중대재해법 시행령을 비롯해 현장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듣고 현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안 장관은 중기중앙회 방문 직후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로 자리를 옮겨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주최한 한국노사협력대상 시상식에 참석했다. 안 장관은 앞서 7일에도 정부세종청사에서 취임식을 연 뒤 서울 마포에 있는 경총을 찾아 손경식 회장과 면담했다.

 

연결과 동맹의 결과 기울어진 장의 한쪽 편에 정부-자본-언론-학계가 똘똘 뭉쳐 있는 모양새다. 언제는 달랐을까, 경제, 일자리, 영세한 중소기업과 자영자, 경쟁력과 시장 원리 따위가 안전, 목숨, 건강을 압도한 것은 오래된 일이다.

 

코로나19 유행에서는 좀 더 노골적이다. 정부는 ‘K-방역’에 묶어 경제를 선방했다고 자랑했지만, 노동과 생명을 억압할 때는 ‘유례없는 위기’를 내세웠다. 만약 경제적 성공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명백하게 노동과 생명을 희생한 위에서 가능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은 힘의 관계이자 구조에 좌우된다. 한편에서 일자리와 노동시간이 줄었다고 하지만 다른 쪽에서 ‘특별연장근로’가 급증한 것이 우연일까(☞관련 기사 바로보기).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지 3년이 지나도 장시간 노동을 밥 먹듯 하는 일부 기업의 행태를 기업주 개인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정책이나 현실 정치로 끝나지 않고 관계이자 구조라면, 시행령을 바꾼다고 해결할 수 없다. 현재 구조로는 그런 조금 바꾸기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유리한 곳을 선점한 쪽이 ‘논란 만들기’와 ‘경제주의’를 앞세우면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권은 ‘미루기’ 전략으로 시종할 가능성이 크다.

 

뻔한 논란 만들기와 미루기를 막을 방법이 있을까. 현실의 모든 힘은 모자라지만, 우리는 ‘도덕’의 헤게모니 만큼은 분명 안전과 생명 쪽에 있다고 믿는다. 더 많은 시민과 노동자가 안전, 건강, 생명을 말하고 주장하며 요구하는 것이 핵심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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