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헬스 와치 외부 기고문

캐나다의 공공제약사 ‘코너트랩’이 우리에게 주는 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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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투자 시설에서 생산된 백신은 누구의 것인가

 

박지은 한국민중건강운동(PHM Korea) 펠로우

 

캐나다는 전 세계에서 인구당 가장 많은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한 국가다. 백신 싹쓸이에 대한 국내외 시민사회의 비난을 의식한 듯, 작년 12월 캐나다 정부는 남는 백신을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남는 백신’을 ‘기부’하는 행위에 대한 평가는 차치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상황을 고려할 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코로나19 유행 초기 캐나다는 백신 생산 시설과 역량을 확보하기보다는 백신 사재기 전략을 택했고, 시민사회와 전문가 단체는 근본적 원인을 해결할 의지가 없는 정부의 대처를 비판했다. 수많은 백신을 사재기하고도 공급 지연에 대한 우려가 지속되자, 작년 11월 24일 쥐스탱 트뤼도(Justin Trudeau) 총리는 “우리(캐나다)는 자체적으로 백신을 생산할 역량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라고 인정했다. 이어서 그는 “10여 년 전만 해도 캐나다에는 이런 시설이 존재했다”라고 덧붙였다.1)

 

1970년대까지 캐나다는 유통 의약품의 80%를 국내에서 생산했지만, 이후 다수의 제약사가 생산 시설을 철수하며 제조 역량이 급감했다.2) 1989년에는 공공제약사 ‘코너트랩(Connaught laboratories)’마저 프랑스 기반 초국적 제약사인 ‘사노피 파스퇴르(Sanofi Pasteur)’에 매각됐다. 자유당 소속인 트뤼도 총리는 코너트랩 매각이 당시 보수당 출신 총리였던 브라이언 멀로니(Brian Mulroney)의 결정이었다며, 지금부터라도 국내 백신 생산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올해 3월 31일 산업부 장관 프랑수아-필립 샴페인(François-Philippe Champagne)은 “오늘 아침 우리는 코너트랩에 새 생명을 부여한다”는 발언과 함께 사노피 파스퇴르에 새로운 독감백신 공장 설립을 위한 4.7억 달러의 공적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3) 그러나 시민사회는 정부가 추진할 ‘새로운’ 코너트랩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는데, 제약사에 대한 공적 통제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정 지원만으로 과거 코너트랩이 추구한 공적∙사회적 가치를 달성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초국적 제약사의 지배력을 확대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4)

 

코너트랩은 주로 백신의 연구개발과 생산을 담당했던 공공기관이다. 디프테리아가 유아 사망의 가장 큰 원인이었던 20세기 초, 캐나다의 부모들은 미국으로부터 수입되던 디프테리아 항독소(치료용 면역 혈청)의 엄청나게 비싼 가격 때문에 여러 아이 중 누구를 살릴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1914년 토론토 대학은 저렴한 디프테리아 항독소 생산법을 개발한 의사 존 G. 피츠제럴드(John G. FitzGerald)와 함께 연구소를 설립했고 몇 년 뒤 코너트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당시 캐나다 총독이 코너트 시의 공작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5) 경제적 이윤보다는 공익을 추구한다는 것은 코너트랩의 이념이 되었고, 이후 70여 년 동안 캐나다와 전 세계 공중보건 향상에 기여했다. 파상풍, 장티푸스, 소아마비, 수막염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했고 무상에 가까운 저가로 공급해 의약품 접근성 향상은 물론 전 세계 천연두의 근절에도 핵심적 기여를 했다. 하지만 이러한 코너트랩도 1970년대 시작된 민영화 광풍을 피할 수는 없었다. 1972년 유한회사로 전환된 후 하루아침에 약가를 인상하는가 하면, 필수 의약품인 인슐린의 생산을 중단하는 등 부침을 겪다가 1989년 수익성 부족을 이유로 민간에 완전히 매각되었다. 당시 코너트랩을 인수한 프랑스의 메리유 연구소(Institut Mérieux)가 바로 오늘날 사노피 파스퇴르의 전신이다.6)

 

캐나다 정부와 사노피는 토론토에 소재한 코너트 캠퍼스가 과거 코너트랩의 유산을 이은 백신 생산 시설이라고 주장한다. 코너트 캠퍼스는 현재 캐나다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의약품 제조 공장으로, 사노피가 판매하는 전체 백신의 1/5이 이곳에서 생산되어 전 세계로 공급된다. 코너트 캠퍼스 외에 캐나다의 백신 생산 시설로는 퀘벡주 몬트리올시에 있는 GSK(Glaxo Smith Kline, 이하 GSK) 공장이 있는데, 이 공장 역시 코너트 캠퍼스와 유사한 역사적 궤적을 공유한다. GSK 퀘벡 공장의 전신인 아만드 프래피어 연구소(Institute Armand Frappier)는 결핵, 소아마비 등 저가의 백신 개발을 수행해왔지만 1980년대 후반 공적 재원 투입 대비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GSK에 매각되었다.7) 캐나다 정부의 주장과 달리, 아직까지 코너트 캠퍼스와 GSK 퀘벡 공장, 그 어디에서도 백신의 공익적 생산에 기여한 사례는 보이지 않는다.

 

사실 백신의 공적 연구개발∙생산∙공급 필요성은 캐나다에서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2003년 캐나다 정부의 사스(SARS) 대응을 평가한 토론토 의과대학 학장 데이비드 나일러(David Naylor)는 “10년 후에도 매우 유사한 권고사항이 반복될 것이다”라고 했고 이 예견은 현실이 되었다. 1993년 HIV/AIDS, 2003년 사스(SARS), 2009년 신종플루와 같은 감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학계, 시민사회, 전문가단체는 백신 연구개발에 대한 공적 투자와 생산 역량 구축을 위한 지원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수용하지 않았다.8) 코로나19 초기, 현 트뤼도 정부도 이전 정부들과 유사한 대응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장기화가 분명해지고 백신의 자체 연구개발∙생산 역량 부족과 정부의 안일한 대응에 대한 비판이 지속되자 작년 5월 16일, 캐나다국립연구위원회(National Research Council, 이하 NRC)는 자국 내에서 중국 칸시노(Cansino) 백신의 임상 2상 시험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칸시노 백신 생산에 필요한 시설과 장비를 구축하기 위해 44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9) 그러나 NRC와 칸시노 간 거래는 곧 무산되었고, NRC는 8월 말이 되어서야 이를 인정했다.10)

 

▲ NRC 로열마운트(Royalmount)을 방문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2020년 11월 25일 자 <내셔널 포스트(National Post)> 갈무리.

 

대안으로 캐나다 정부는 NRC 로열마운트(Royalmount) 내 바이오의약품 제조 센터(Biologics Manufacturing Centre, 이하 BMC), 서스캐처원 대학의 바이러스 및 감염병 연구소(Vaccine and Infectious Disease Organization, VIDO-InterVac), 민간 기업인 프리시전 나노시스템(Precision NanoSystem) 세 곳에 감염병 백신 생산 역량 구축을 위한 재정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캐나다 산업부는 초국적 제약사들을 상대로 NRC 내 백신 생산 유치 작업을 펼쳐왔고 올해 2월 노바백스(Novavax)와 계약을 체결하며 BMC에서 백신을 생산하기로 했다.11) 시민사회는 국내 생산 역량 확보는 긍정적이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남아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백신이 공적 재원을 통해 연구·개발되고 생산된 만큼 생산물 역시 글로벌 공공재로 기능해야 하지만, 현재의 재정 지원 구조는 개발·생산된 의약품의 접근성(accessibility), 저렴한 가격(affordability), 투명성(transparency)을 보장할 공적 통제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12)

 

캐나다 신민주당(New Democratic Party) 대표 자그밋 싱(Jagmeet Singh)은 작년 12월 3일 열린 43차 하원의 회에서 의약품의 공적 연구개발·생산·공급과 의약품 접근성 보장 문제를 의제화했다. 싱 의원이 제안한 대안은 ‘과거’ 코너트랩의 재건이었고 이는 분명 올해 3월 제안된 ‘새로운’ 코너트랩과는 다른 모델이었지만 여전히 시민사회가 요구했던 공적 통제에 관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필수 의약품의 접근성과 의약품 연구개발∙생산∙공급의 공적 통제는 캐나다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별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 여건과 환경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가 소유한 공적 백신 및 바이오의약품 생산 시설(안동 동물세포실증지원센터, 화순 미생물세포실증지원센터, 송도 생물산업기술실용화센터)들이 있지만, 기업의 개발과 생산을 지원한다는 목표 외에 공적 통제 기전이 없다. 희귀의약품 및 국가필수의약품의 안정적 공급 관리를 위해 설립된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 역시, 기업이 공급하지 않는 필수 의약품을 대신 수입하여 공급하는 기능에 머물러 있다.

 

아직 코로나19 유행이 지속되는 만큼 캐나다의 백신 대응에 대해 평가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캐나다 사례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점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의약품의 공적 연구개발·생산·공급 체계에 대한 상상력이다. 그리고 이는 코로나19를 넘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의약품의 공공성을 모색하기 위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 참고문헌

 

1) <내셔널 뉴스워치(National Newswatch)> 11월 24일 자 ‘Lack of Canadian vaccine production means others could get inoculations first: PM’

Lack of Canadian vaccine production means others could get inoculations first: PM

2) <연합뉴스> 12월 3일 자 ‘캐나다, 미 노바백스 백신 자국서 생산 합의’
https://www.yna.co.kr/view/AKR20210203063500009

3) <씨피24(CP24)> 3월 31일 자 ‘Canada and Ontario spending $470 million to make country vaccine self-sufficent’
https://www.cp24.com/news/canada-and-ontario-spending-470-million-to-make-country-vaccine-self-sufficent-1.5369410

4) <레이블 CA(Rabble CA)> 4월 8일 자 ‘Lack of domestic vaccine capacity leaves Canada at mercy of big pharma’
https://rabble.ca/columnists/2021/04/lack-domestic-vaccine-capacity-leaves-canada-mercy-big-pharma

5) <티브이오(TVO)> 3월 10일 자 ‘The forgotten Toronto doctor who helped develop the first modern vaccine’
https://www.tvo.org/article/the-forgotten-toronto-doctor-who-helped-develop-the-first-modern-vaccine

6) <더 글로브 앤 메일(The Globe and Mail)> 9월 14일 자 ‘Canada’s vaccine legacy: Influenza, polio and COVID-19’
https://www.theglobeandmail.com/opinion/article-canadas-vaccine-legacy-influenza-polio-and-covid-19/

7) <캐나다 국립과학연구소(Institut National de la Recherche Scientifique)> 2014년 ‘L’œUVRE D’ARMAND FRAPPIER: historical overview from 1938 to 2013’

75-years-of-research-03-17.pdf에 액세스하려면 클릭하세요.

8) <자코뱅(Jacobin)> 4월 21일 자 ‘Neoliberal State Failure Is Slowing Down Vaccine Distribution’
https://www.jacobinmag.com/2021/04/neoliberal-state-failure-covid-19-vaccine-distribution

9) <캐나다 정부(Government of Canada)> 5월 12일 자 ‘The National Research Council of Canada and CanSino Biologics Inc. announce collaboration to advance vaccine against COVID-19’
https://www.canada.ca/en/national-research-council/news/2020/05/the-national-research-council-of-canada-and-cansino-biologics-inc-announce-collaboration-to-advance-vaccine-against-covid-19.html

10) <더 글로브 앤 메일(The Globe and Mail)> 1월 26일 자 ‘Canada-China vaccine collaboration began to fall apart days after Ottawa announced clinical trials’
https://www.theglobeandmail.com/politics/article-canada-china-vaccine-collaboration-began-to-fall-apart-days-after/

11) <캐나다 쥐스탱 트리도 총리(Prime Minister of Canada Justin Trudeau)> 2월 2일 자 ‘New support to produce COVID-19 vaccines and treatments in Canada’
https://pm.gc.ca/en/news/news-releases/2021/02/02/new-support-produce-covid-19-vaccines-and-treatments-canada

12) <국경없는의사회(Doctors Without Borders/Médecins Sans Frontières)> 2월 3일 자 ‘MSF responds to announcement of manufacturing plans for Novavax COVID-19 vaccine (NVX-CoV2373) in Canada’
https://www.doctorswithoutborders.ca/article/msf-responds-announcement-manufacturing-plans-novavax-covid-19-vaccine-nvx-cov2373-canada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대유행을 맞아 많은 언론이 해외 상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 백신을 얼마나 확보했는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국가별 ‘순위표’로 이어집니다. 반면 코로나19 이면에 있는 각국의 역사와 제도적 맥락, 유행 대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경제·사회적 역동을 짚는 보도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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