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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 장애인을 위한 지역사회의 준비는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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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욱(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코로나19 이후 탈시설을 요구하는 장애인들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기존의 장애인 탈시설 논의는 주로 시설의 비리와 횡포, 폭력·학대 문제, 인권 침해 등의 이슈들로부터 출발했는데, 코로나19 유행으로 집단 감염 사태가 이어지면서 건강권 문제로까지 확대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올해 3월, 서울시는 전국 최초로 「서울시 장애인 탈시설 지원에 관한 조례」(가칭)를 제정하였다. 시 관계자는 서울형 탈시설의 목표가 “장애인들이 탈시설 후 지역사회에서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 언급하였다(기사 바로가기).

 

탈시설 장애인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안정적인 주거공간일 것이다. 나아가 이들의 터전이 될 지역사회의 역할 또한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오늘 소개할 논문은 2020년 국제학술지 <지적장애응용연구>에 실린 연구로서 네덜란드의 유연하고 적극적인 지역사회 치료서비스(FACT) 이용 경험이 있는 장애인들이 이 서비스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분석한 글이다(논문 바로가기 ☞ 경도 지적 장애 또는 경계선 지능인들의 FACT 서비스 이용 경험: 질적연구).

 

FACT는 미국식 적극적 지역사회 치료(Assertive community Treatment, ACT) 모델을 개조하여 네덜란드의 지역사회 정신보건서비스에 적용한 모델이다. 다학제 전문가팀으로 구성되지만 서비스 이용자의 욕구를 반영하여 한 명의 사례관리자가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고, 여러 분야가 협력해서 활동하기도 하는 모델이다(김용득, 2014).

 

아직까지 FACT를 이용한 경험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연구팀은 FACT 서비스 이용자 중 경도지적장애인(IQ 50-70)과 경계선지능인(IQ 70-85) 15명을 대상으로 이들이 FACT 내에서 이루어지는 치료와 자신의 기능에 대하여 어떻게 평가하는지, 그리고 어떤 요소를 지지적인 것으로 인식하는지 탐색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귀납적 근거 이론 접근을 사용하였고, 반구조화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연구 결과 서비스 이용자들은 FACT팀과의 접촉에 있어서 지속적인 참여, 가용성, 인간다움, 자율성 존중을 높이 평가하였다. 특히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서비스 이용자들에 대한 편견 없는 태도와 무조건적인 지원, 장애가 아닌 서비스 이용자의 능력과 자질에 맞춘 열린 시선은 장애인들이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게 하였다고 응답하였다.

 

또한 서비스 이용자들은 FACT의 실질적인 지원뿐 아니라 정서적 지원과 치료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예를 들어 이용자들은 우편, 행정 및 재정, 일자리 및 주거와 같은 모든 종류의 활동 지원에 만족을 느꼈으며, 일상적인 상담, 분노 조절 모니터링, 외상 치료 등이 정서적으로 도움이 되었다고 언급하였다.

 

서비스 이용자들은 FACT에 참가한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인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였는데,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신뢰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 그 예다. 이들은 또한 스트레스 상황에 대해 이전보다 잘 대처하고, 본인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고 응답하였다. 이용자들은 이처럼 개선된 이유가 FACT의 적절한 치료 덕분이라고 평가하였고, 일부 참가자들은 자율성을 존중하는 프로그램 운영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개인적 성장 외에도 주거 및 재정 환경의 변화와 개선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물론 일부 참가자들은 불만족스러운 주거지원이나 약 복용에 대한 의견차이로 FACT의 지원에 실망하였고, FACT가 본인들에게 제재를 가한다고 보고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느끼는 강제성은 지방 당국과의 문제나 범죄의 악순환을 끊는데 도움이 되었으며, 그들의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하다는 사실은 인정하였다.

 

이와 같은 정신보건 사례관리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는 앞으로 한국에서 장애인들의 탈시설 후 지역사회 자립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애인에 대한 개입, 치료, 재활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덜 중요한 것이 없지만 이에 못지않게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양질의 서비스를 공급하고 조정하며, 이용자로 하여금 적절성을 평가하게 하는 지역사회의 통합적 서비스 역량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또한 전문가의 책임, 사회적 통제 구조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장애인들의 자율성, 독립성 및 자유 사이에서 균형을 달성하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지역사회와 정부는 탈시설 이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또 살고자 하는 장애인들을 위해 과연 무엇을 준비했고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까? 이 질문과 대답 모두에 당사자는 물론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빠트려선 안 될 것이다.

 

*서지사항

 

– Laura Neijmeijer. Chris Kuiper, Hans Kroon, Robert Didden (2020). Experiences of service users with a mild intellectual disability or borderline intellectual functioning with Flexible Assertive Community Treatment: A qualitative study. J Appl Res Intellect Disabil.2020;33:1005-1015.

 

-김용득 (2014). 지역사회 사례관리체계에서 공공과 민간의 역할, 이대로 괜찮은가? 한국사회복지행정학회 학술대회 자료집.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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