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리라(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자살 현상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남성의 자살률이 여성보다 월등히 높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에서 발행한 최신 통계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 당 남성 자살률은 13.7명인데 반해 여성은 7.5명으로 남성의 자살률이 2배 가까이 높았다(자료 바로가기). 자살률에서의 성차는 남성 대 여성의 자살비(Male : Female ratio)로 표현하는데, 일반적으로 고소득 국가에서는 이 값이 3에 가까워 남성의 자살률이 훨씬 높고, 중간소득 이하 국가들에서는 성별로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자살률의 성차와 달리 상대적으로 여성들의 자살률이 더 높게 나타나는 중간소득 이하 국가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하나의 시도로 홍콩대 카이 연구팀은 국제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 에 국가의 소득 수준과 제도적 요인이 해당 국가의 여성자살률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한 논문을 실었다 (논문 바로가기 ☞ 저소득, 중간소득, 고소득 국가에서 여성 자살률 : 여성을 차별하는 법의 문제인가?)
연구자들은 젠더와 자살률의 관계를 분석한 선행연구들을 통해 여성의 노동참여율이 낮거나, 젠더 불평등 지수가 높을수록, 또한 소득수준이 낮은 국가에서 젠더 불평등 지수가 높을 때 여성 자살률이 유의하게 높다는 결과에 주목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젠더 불평등의 어떤 측면이 여성의 자살률에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으로 보기 위해 각 국가의 사회제도에 주목할 필요성을 제시하였다. 연구진은 공식·비공식적 제도의 여성 차별이 국가의 소득 수준과 남성 대 여성의 자살비 관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았다. 분석대상은 모두 176개 국가이며, 국가의 소득 수준은 2018년과 2019년에 조사된 세계은행(World Bank) 자료에 기초하여 4가지로 분류하였다. 여성에 대한 제도적 차별은 가족, 신체적 자유, 경제활동, 시민권 주1) 네 가지 범주로 측정하였으며, 점수가 높을수록 차별 수준이 높음을 뜻한다.
분석결과 고소득 국가에서는 남성 대 여성의 자살비가 3.23이었으나, 중간소득 이하 국가들에서는 2.02이었다. 여성에 대한 제도적 차별 수준은 중간소득 이하 국가에서 0.52, 고소득 국가에서는 0.36으로 나타나 중간소득 이하의 국가들에서 여성의 자살률과 제도적 차별 수준이 모두 높았다. 국가의 소득이 낮을수록 남성 대 여성의 자살비가 낮아졌는데(즉, 여성의 자살률 증가), 낮은 소득수준은 직접적으로 남성 대 여성의 자살비를 낮추거나, 여성에 대한 제도적 차별을 증가시켜서 간접적으로 남성 대 여성의 자살비를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중간소득 이하 국가들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여성 자살률이 토지와 비토지 자산에 대한 접근, 이혼과 유산분배 같은 경제적 권리 및 시민권에서의 높은 제도적 차별 수준과 연관된다고 분석했다. 중간소득 이하 국가의 여성 자살은 심리적인 현상보다 구조적으로 존재하는 젠더 불평등이 원인이라고 본 것이다.
문화 스크립트 이론(cultural script theory)에 따르면, 자살행위는 자살이 고난에 대한 하나의 반응으로 예상되는 곳에서 나타나는데, 이는 자살은 고난으로 인한 잠재적인 행위이나 필연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사한 맥락에서 문화기술지 연구들에서는 중간소득 이하 국가들과 일부 지역(중국의 시골 지역, 스리랑카 및 무슬림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높은 자살률은 여성이 가족과 사회에서 경험한 억압과 학대에 대한 문화적으로 예상된 반응으로 해석한다. 이 지역과 공동체에서 여성은 자기 결정과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한 선택지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데, 그럼으로써 자살행위는 억압과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몇 안 되는 수단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한국은 고소득 국가에 속하기 때문에 위 연구결과를 바로 적용하기는 어렵지만 낮은 소득수준과 제도적 성차별이 여성의 자살률을 촉발한다는 결과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나타나는 젊은 여성들의 높은 자살률을 설명할 실마리를 준다. 한국은 2019년 기준 인구 10만 명 당 자살률이 남성 38.0명, 여성 15.8명으로 자살로 인한 남성 사망이 여성보다 2배 이상 높았다. 그러나 연령집단별로 나누어보면 연령이 높아질수록 남성과 여성의 자살률 성비가 커지지만, 10·20대에서는 자살률의 성비 차이가 크지 않으며 오히려 10대에서는 여성의 자살률이 남성의 그것보다 약간 높게 나타나기도 한다.
한국은 특히 OECD 국가 중 최고수준인 성별 임금격차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나듯 여성에 대한 제도화된 차별로 인해 여성이 저소득집단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공적·사적 부문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져 온 젠더 불평등은 젊은 여성들이 노동과 가족생활, 사회적 참여를 온전히 누릴 기회를 제한하고 무력화하고 있다. 더불어 상당수의 여성 임금 노동자들이 속한 서비스 산업 분야는 변화가 빠를 뿐더러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상황에 취약하다. 한국사회 젊은 여성들에게서 나타나는 높은 자살률을 대단히 심각한 사회적 위기로 인식하고 여성들이 겪는 공식·비공식적 법제도의 차별을 바로잡는 일을 더 이상 지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서지 사항
Cai, Z., Canetto, S. S., Chang, Q., & Yip, P. S. (2021). Women’s Suicide in Low-, Middle-, and High-Income Countries: Do Laws Discriminating Against Women Matter? Social Science & Medicine, 114035.
주 1) 가족 영역에서 차별은 조혼, 가구에 대한 동등한 책임권, 유산배분, 이혼에 관한 법이, 신체적 자유에서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 여성할례, 재생산 자율성에 관한 법, 경제활동 자유 부문은 비/토지 자산 접근, 공적 재정적 서비스 접근 및 직장에서 동등한 법적 권리와 기회에 관한 법, 시민권에는 성별에 관계없이 동등한 시민권을 지니는지 여부, 이동의 자유, 정치적 대표성 및 정의 접근에 관한 법으로 측정된다.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