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외부 기고문

[건치신문] 백신 부족 문제를 제대로 비판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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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우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

 

백신 도입 초기 백신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던 언론도 요즘에는 태세를 전환해 백신 부족을 비판하고 있다. 이전에는 정부 정책에 잘 순응하던 사람들도 백신 부족에 대해서는 부쩍 날카로워진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19 유행 이후 1년 반이 넘는 동안 사회적 거리두기에 참여하면서 자유로운 활동에 제약이 생기고, 어떤 사람들은 생존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다. 고통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지는데,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수단은 백신 접종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백신 부족이 안타깝고, 정부에 대한 원망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나와 동료 시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서는 원망과 분노를 넘어 조금은 근본적인 비판을 할 필요가 있다.

 

눈앞의 어려움이 가득한 상황에서 근본적 비판이라니 한가한 소리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좀 더 구조적 문제를 짚어야 결과적으로 빠른 해결을 기대할 수 있다. 더군다나 코로나19가 인류가 맞이하는 마지막 팬데믹이 아니라는 전망이 많지 않은가?

 

현재 백신 부족에 대한 대부분의 비판은, 우리 정부는 왜 이렇게 백신 확보가 늦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빠른 시기에 적극적으로 백신 쟁탈전에 뛰어들었나를 따지기 이전에, 고소득 국가들이 백신 쟁탈전을 벌여 결과적으로 다른 국가, 특히 저소득 국가에게 돌아갈 몫을 빼앗는 것이 과연 올바른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사람의 생명과 밀접한 백신은 시장에서 일반적으로 거래되는 상품과는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 공평한 백신의 공급은 그 자체적으로 윤리적일 뿐아니라,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출현하는 조건을 억제할 수 있다. 이에 동의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냉혹한 국제 정치에서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하겠지만, 그럴수록 계속해서 사재기에 나서는 고소득 국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좀 더 들어가 보면, 이런 백신 쟁탈전이 벌어지는 까닭은 백신 생산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산이 적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조건이 아니라, 공공의 지원을 받아 백신을 개발한 기업들이 지적재산권을 통해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려는 탓이 크다. 후발주자가 등장해서 더욱 많은 곳에서 생산할 기회를 가로막는 것이다.

 

이에 지난해부터 WTO에서 코로나19 관련 의료기술의 지적재산권을 일시 유예하는 것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여전히 영국과 독일, 일본 등의 국가에서 반대하고 있지만 미국과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를 비롯한 100여 국가들이 코로나19 백신의 지적재산권 유예를 지지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도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 시점에 비판이 향해야 할 곳은 백신 생산과 공급을 늘리기 위해 한국 정부가 코로나19 백신 지적재산권 유예를 지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백신 부족이 이토록 치명적인 이유는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제하면서 그 고통을 개인에게 떠넘겼기 때문이다. 백신의 생산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비약물적 중재에 의존해야 한다면, 그것을 가능케 하는 조건도 함께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영업자들은 괜찮을 거라는 굳건한 믿음을 가진 경제부총리는 재정 지원을 최대한 꺼리고 있고, 자영업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백신 부족과 그로 인한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좀 더 정확하게 비판할 필요가 있다. 백신 생산과 공급의 구조적 문제부터 한국 정부가 코로나19 백신 지적재산권 유예에 찬성 입장을 표명하고 역할을 하지 않는 것, 당장의 고통 앞에 소극적인 재정정책을 펼치는 것까지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

 

(건치신문 2021.08.18 기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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