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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의 시기, 초국적 페미니스트 연대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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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민(시민건강연구소 영펠로우)

 

우리나라는 국민 대다수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완료하고 일상회복을 시도하고 있으나, 세계적으로는 여전히 코로나19 팬데믹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심지어 더욱 불평등한 방식으로 심화되고 있다.

 

남반구 국가들은 정치적 불안, 불충분한 인프라와 자원, 만연한 실업, 경제적 어려움과 교육 불평등의 문제가 교차하고 있어 코로나19는 더욱 재앙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권위주의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정치 권력과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여성들은 이전부터 존재해 온 젠더 불평등, 배제와 빈곤의 심화뿐만 아니라, 팬데믹에 의한 새로운 위험에 대처해야 하는 어려움에도 직면했다. 오늘은 남반구 국가의 여성들이 경험하고 있는 코로나19 시기의 어려움과 이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대응을 논의하고 있는 알-알리(Al-Ali)의 논문을 소개한다(논문 바로가기 ☞ 남반구 국가에서의 코로나19와 페미니즘: 어려움, 계획, 딜레마).

 

코로나19 시기 여성들이 경험하는 위험

 

저자는 남반구 국가에서 코로나19 시기 여성들이 경험하고 있는 위험을 크게 네 가지로 소개한다. 첫째, 코로나19는 사회 재생산의 위기를 초래하는데 이것은 특히 여성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이는 대부분의 재생산노동이 여성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기관에서 코로나19 최전선 노동자로 일하는 이들(주로 간호사)의 비중은 여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또한, 대부분 여성들이 해오던 돌봄/가사 노동은 도시 봉쇄와 외출 자제 등의 방침으로 인해 부담이 가중되었을 뿐 아니라, 여성들이 교육과 유급노동에 참여할 기회를 축소시켜 성별화된 노동분업 경향을 강화하고 있다.

 

둘째, 코로나19 유행은 남반구 국가에서 (그리고 북반구에서도) ‘젠더 폭력의 팬데믹’을 동반했다. 코로나19 시기 가정 폭력과 친밀한 파트너 폭력이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국가/도시 봉쇄 시기에는 발생 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가령,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는 국가 봉쇄 첫 주에 다른 범죄는 감소한 반면, 여성에 대한 폭력은 225% 증가했다. 터키에서는 3월 11일부터 31일 사이에 21명의 여성이 살해됐는데, 그 중 60%가 가정 폭력의 결과였으며, 70% 이상은 집에서 살해당했다. 반면, 여성들이 폭력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움을 청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다. 도시 봉쇄와 거리 두기로 인해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실질적인 지지와 도움을 받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구호단체나 법 집행기관의 활동도 제약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한 시기에는 소송 등 법률적 과정도 모두 연기되었으며, 온라인으로 법률에 관한 정보를 접근하는데 제약이 있었던 여성들은 공적인 법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 결과 리비아, 이라크 등지의 여성들은 여성이 아버지의 소유라고 하는 부족법(tribal law)의 실질적인 영향력에 종속되었으며, 이로 인해 원치 않는 결혼이나 양육권 포기 등을 강요당하기도 하였다.

 

셋째, 폭력의 위험은 주변화된 여성들에서 더욱 심각했다 (이는 남반구 국가 뿐 아니라 북반구 국가에서도 나타나는 경향이다). 이들은 폭력에 노출될 뿐만 아니라, 경제적·법적·사회적·정치적 권리와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는데 특히 어려움을 겪었다.

 

성소수자와 이주노동자의 사례를 보자.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성소수자가 홈리스 및 열악한 주거환경에 거주하는 인구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해왔는데, 이러한 조건은 성소수자들이 감염의위험이나, 잠재적인 혐오범죄나 폭력에 취약하게 만들었다. 이집트와 레바논 등지에서도 성소수자들이 체포나 기소 혹은 보안 인력에 의한 폭력 등을 경험하고 있다.

 

가사노동자로 취업한 이주 여성도 취약한 그룹이다. 중동의 많은 국가들은 이주노동자가 고용주의 허가 없이 직장을 옮기거나 출국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등 노동자의 비자를 고용주에 의존하는 카팔라(kafala)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는 도시 봉쇄 시기 취업 가사노동 이주여성들이 고용주에 의한 학대와 착취에 무방비하게 노출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이들은 가정 내 집기에 대한 집착적 수준의 청소와 소독을 요구받는 등 팬데믹 시기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견뎌야했고, 그 와중에 제때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해고당한 경우도 발생했다.

 

난민과 내전국 주민들의 어려움도 크다. 레바논, 이라크, 터키 등지에 살고 있는 시리아 난민들은 대체로 적합한 체류 인증서가 없었기 때문에, 본국 송환을 우려하여 코로나19 증상을 보이더라도 검사를 기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팔레스타인 난민이나 방글라데시에 있는 로힝야 난민들은 매우 혼잡한 난민캠프에서 지내고 있으며, 코로나19 관련 및 일반 의료 서비스 일체에 대한 접근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19 감염과 죽음에 대한 불안과 염려 속에 생활하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여성 난민들은 난민 캠프 내에서의 심각한 성폭력의 위협도 동시에 경험하고 있었다. 전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시리아와 예멘의 주민들은 의료 인력과 기관에 대한 끊이지 않는 표적 공격과 인도주의적 구호의 제한을 심각하게 경험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코로나19에 대한 진단과 치료는 불가능한 상태이다.

 

넷째, 남반구 국가들의 권위주의적·국가주의적 정권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정치적 억압을 강화하고 여성들의 저항적인 노력을 무력화시키며 오히려 통치성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많은 남반구 국가들에서 코로나19 확산 통제를 명목으로 긴급조치가 시행되었으며, 이를 통한 인권 침해, 자의적인 체포, 잔인한 탄압이 자행되고 있다.

 

페미니스트들의 대응과 고민들

 

이제 페미니스트들은 이전부터 해왔던 그들의 활동을 어떻게 새로운 현실 속에서 실현해나갈 것인지 고민해야할 뿐만 아니라, 여성을 고려한 팬데믹 대응 전략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이는 세계적으로 여성들이 인터넷 사용이나, 제대로 된 직업 그리고 개인 공간과 프라이버시 확보에서 제약을 겪고 있는 현실을 고려했을 때 특히 어려운 과제이다.

 

그동안 페미니스트들은 어떠한 활동을 해왔을까? 우선 팬데믹 초기에는 정보 제공이 긴급한 과제였다. 이를 위해 다양한 페미니스트 그룹들이 지역 리더들과의 미팅을 통해 조언을 해주거나, 미디어를 통해 코로나19 예방법을 제공하였고, 인터넷 등 미디어 접근이 제한된 지역의 경우에는 여성들을 직접 만나서 교육했다. 또, 마스크 제작, 생필품 기부, 포스터 부착, 장애 여성이 도시 봉쇄 시 겪는 문제에 관한 공론화 등의 활동들을 폈다.

 

여성을 고려한 코로나19 대응 정책에 대한 제안과 요구 활동도 이루어져왔다. 가령 칠레에서는 2020년 3.8 여성의 날에 수 백만 명의 여성들이 시위를 벌였으며, 이 시위에서 “코로나바이러스 위기에 대응하는 페미니스트 긴급 계획”을 발표했다. 또한 남반구 페미니스트 그룹은 북반구의 주변화된 공동체 여성들과 협력하여 “페미니스트 코로나19 정책’을 발표했다. 이 정책에 대해 100여개 국가들의 수많은 여성 단체와 개인들이 지지를 표명했는데, 그 내용은 평등과 비차별의 관점에서 식량, 보건의료, 교육, 사회 불평등, 식수와 위생, 경제 불평등, 여성에 대한 폭력, 정보 접근, 권력 남용 등 9개 영역에 대한 정책을 담고 있다. 더불어 페미니스트 그룹들은 젠더를 고려하지 않은 코로나19 대응 정책을 감시하고 그 사회적 영향을 추적하는 노력도 동반하고 있다.

 

그러나 남반구 페미니스트 그룹의 활동에는 여러 도전과 딜레마가 존재한다. 가령 위와 같은 정책들이 실제로 시행될 수 있도록 어떻게 정부에 영향을 미칠지, 부패한 권위주의 정권의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의사결정과정에 개입할 권한을 요구하고 참여하는 것은 타당한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이에 답을 내리는 과정은 각각의 사안과 맥락, 효과를 고려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무척 어려운 과제이다. 더불어 페미니스트들은 우익 포퓰리즘과 인종주의/민족주의가 발흥하는 가운데, 여성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반인종주의와 사회 정의를 교차적으로 제기해야 하며 이러한 문제가 사회적 ‘우선순위’에서 밀려나지 않게 해야 한다.

 

이러한 도전들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는 페미니스트들이 고립을 넘어 연대로 나아가는 새로운 정치적 기회의 창이 될 수 있다. 팬데믹 시기 초국적 페미니스트 연대의 기반은 한국의 경험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 세계적으로도 그리고 한 사회 내에서도 “모두가 동일한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으며, 코로나19의 결과는 모든 곳에서 같은 방식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바로 그 관점에서 시작된다.

 

 

*서지정보

 

Al-Ali, N. (2020). Covid-19 and feminism in the Global South: Challenges, initiatives and dilemmas. European Journal of Women’s Studies, 27(4), 333-347.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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