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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건강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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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시정(시민건강연구소 영펠로우)

 

 

전두환이 사망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5·18 민주화운동의 유혈 진압에 대해 사과하지 않은 채 로.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피해자만 해도 사망자 154명을 비롯해 총 5,006명에 이른다. 이 숫자는 反민주주의가 건강과 생명에 미치는 폭력적인 영향을 직접적으로 감각할 수 있게 한다.

 

역사적 경험을 통해 우리는 독재와 권위주의가 인권탄압을 수반하며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건강에 좋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민주주의와 건강의 관계는 간단치 않다. 여전히 우리의 민주주의는 불완전하고, 건강 불평등을 촉발하는 여러 요소-양극화, 빈곤 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와 건강의 관계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오늘은 국제학술지 <사회의학과 과학>에 실린 민주주의와 불평등 인식, 그리고 건강의 관계를 다룬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논문 바로가기 : 민주주의는 불평등에 대한 관점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그리고 건강에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기존 연구에서는 불평등이 건강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기제를 사회심리학적으로 설명한다. 사람들은 사회적 위계 속에서 자신의 상대적 위치를 파악하는데, 불평등이 커질수록 사회적 신뢰가 훼손되고 불평등한 위치에 놓인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덜 가치 있다고 느껴 건강에 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연구는 객관적인 불평등 수준보다도 현재의 불평등에 대한 사람들의 주관적인 인식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설명한다. △현재의 불평등 수준이 낮다고 여기는 사람, △타당한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높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공정한 경쟁의 결과라고 여기는 사람 각각에게 불평등과 건강의 관계는 다를 수 있어서다. 따라서 저자들은 불평등 그 자체가 아니라 불평등의 수준에 대한 인식과 해석, 그리고 건강의 관계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자신이 속한 사회의 불평등이 증가 혹은 감소하고 있다는 한 개인의 주관적인 평가는 무엇에 의해 달라질까. 개인의 경험이나 사회경제적 위치를 포함해 여러 영향 요소가 있을 수 있겠으나, 저자들은 정치체제-민주주의와 권위주의-에 대해 주목하며 다음의 연구 가설을 제시한다. 첫째, 민주주의 수준이 높은 국가의 사람들일수록 권위주의 국가의 사람들에 비해 불평등이 증가하고 있다고 느낄 가능성이 클 것이다. 둘째, 불평등이 증가한다는 인식이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민주주의 수준이 높은 국가에서 더 크게 나타날 것이다. 셋째, 미디어를 통해 불평등이 확대되고 있음을 학습하는 것은 권위주의 국가의 사람들보다 민주주의 국가의 사람들에게 건강에 더 해로운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가설들을 검증하기 위해 저자들은 중부 유럽과 동부 유럽, 중앙아시아 지역의 포스트 공산주의 28개 국가에서 수집된 40,000명에 대한 2016년 LITS(Life in Transition Survey) 자료를 활용하여 다중회귀분석을 실시하였다. 이 설문에서는 불평등 증가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 4년간 빈부 격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작아졌다, 그대로다, 커졌다, 모르겠다). 민주주의 정도는 프리덤하우스의 민주주의 점수를, 불평등 정도는 지니 계수를 활용했고, 건강은 자가평가 건강 척도(매우 나쁨, 나쁨, 보통, 좋음, 매우 좋음)를 이용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소득 불평등이 증가했다는 인식과 민주주의 정도에는 양(+)의 상관관계가 있었으나, 타지키스탄을 제거하고 분석할 경우 그 관계는 유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텔레비전과 인쇄 매체를 통해 불평등에 대해 학습하는 경우에는 민주주의 정도가 높은 국가의 사람들일수록 불평등이 증가하고 있다고 인식했다. 이때 텔레비전을 이용해 불평등을 학습하는 사람의 비율은 인쇄 매체로부터 불평등을 학습하는 사람의 비율보다 일곱 배가량 높다는 점에서, 텔레비전은 그 중요성이 더 컸다.

 

또한 불평등이 증가한다는 인식과 자가평가 건강 수준은 부(-)의 관계가 있었으나, 이는 민주주의 정도에 따라 차등적이지 않았다. 다만, 불평등의 증가를 텔레비전으로부터 배우는 경우 그것이 자가평가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민주주의 정도가 높은 국가에서 더 크게 나타났다. 이 결과에 대해 저자들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이 빈곤이나 건강 불평등 같은 사회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보도할 자유가 보장되는 반면,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그러한 자유가 보장되지 않아 미디어에 대한 신뢰가 낮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저자들은 권위주의 국가의 미디어가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정당화하는 프레임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 나라 사람들이 불평등의 증가에 대해 덜 걱정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했다. 이 맥락에서 불평등은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불공정한 사회 문제로 프레이밍 될 때 비로소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됨을 알 수 있다.

 

이 연구는 일반적으로 민주주의가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는 하나, 언제나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말해준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불평등에 대해 더 많이 인식하게 됨으로써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어서다. 그러나 비관하거나 낙담할 필요는 없다. 무엇이 문제인지 들추어내고 인지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할 조건이자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불평등에 대한 우리의 감각이 아닐까. 불평등이 공정한 노력의 대가라는 일각의 인식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때다.

 

*서지정보

 

Gugushvili, A., & Reeves, A. (2021). How democracy alters our view of inequality—and what it means for our health. Social Science & Medicine, 283, 114190.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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