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시정 (시민건강연구소 영펠로우)
코로나19 판데믹을 2년 넘게 이어가도록 국내외적으로 코로나에 대한 대응은 여전히 어렵다. 그 이유로는 신종 감염병이라는 생물학적 속성과 기존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영향 외에도 미디어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전파되는 ‘음모론(혹은 가짜뉴스)’의 영향 등을 들 수 있다. 영국에서는 ‘5G 전자파가 코로나를 확산시킨다’는 루머로 인해 기지국 방화사건이 발생했으며, 한국에서도 ‘백신에서 괴생물체가 발견되었다’는 루머가 온라인상에서 유포된 바 있다.
황당무계한 음모론적 주장은 ‘일부’를 넘어, 전 지구적 범위에서 팬데믹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과학 지식의 불확실성과 그로 인한 대중적 불안감은 음모론을 확산시키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이 같은 현상은 코로나 이후 또 다른 공중 보건 위기 상황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누가, 왜 음모론을 믿으며 그 여파는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탐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 국제학술지 <선거, 여론 그리고 정당>에 실린 “포퓰리즘에서 플랜데믹으로: 왜 포퓰리스트들은 코로나19에 대한 음모론을 믿는가”라는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 플랜데믹(plandemic)은 코로나19가 기획되었다는 뜻으로, 미국에서 2020년 공개된 영상의 제목이다. 연구진은 포퓰리즘적 태도가 음모론을 믿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예측하고, 설문조사를 통해 이를 검증하였다.
포퓰리즘적 태도는 정치·사회적 엘리트들이 순수하고 정직한 대중을 배반한다고 비판하며 회색지대가 없는 흑백세계를 상정한다. 판데믹 국면에서 포퓰리스트들은 정부나 의회 같은 정치 제도뿐만 아니라, 과학 분야 역시 기술관료 엘리트들이 장악하고 있다고 간주한다. 역학자, 바이러스학자 등이 미디어에 빈번하게 등장하게 된 환경적 상황은 때론 엄격하면서도 갑작스럽게 결정되는 정부의 코로나 대응이 엘리트들 간의 거래의 결과라고 주장하기 쉽게 만들었다. 이러한 포퓰리즘적 태도는 좌·우파 모두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이데올로기와는 구분되는 개념이다.
포퓰리즘적 태도와 음모론을 믿는 정도의 관계에 대해 검증하기 위해 연구진은 2020년 5월에 조사된 오스트리아 코로나 패널 연구 자료(6차, 9차)를 분석했다. 응답자는 823명이었다.
연구진은 음모론에 대한 믿음을 평가하기 위해 코로나19에 대한 다음 8개의 진술이 어느 정도로 참 또는 거짓이라고 생각하는지 5점 척도로 측정했다(매우 확실히 거짓 ~ 매우 확실히 참). (1) 코로나 백신은 이미 개발됐지만, 대형 제약사들에 의해 보류되고 있다. (2) 코로나 백신은 이미 개발됐지만, 정부에 의해 보류되고 있다. (3) 현재 코로나 백신이 개발되고 있으며, 광범위하게 테스트되기 전에는 사용할 수 없는 시험용 백신이 있다. (4) 코로나는 인간에게 해를 입히기 위해 의도적으로 개발된 생물무기다. (5) 코로나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여 판데믹을 일으킨 자연 전염병이다. (6) 코로나는 미군의 비밀 군사 실험 중에 우연히 방출되었다. (7) 빌 게이츠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강제로 인류에게 백신 접종을 하려고 한다. (8) 새로운 5G 송신탑은 코로나 확산에 책임이 있다.
분석 결과, 연구 응답자 중 음모론을 믿는 비율은 결코 낮지 않았다. 전체 응답자의 69%가 적어도 하나 이상의 음모론에 대해 ‘확실하지 않다’거나 심지어 ‘꽤 확실하다’ 혹은 ‘매우 확실하다’ 라고 답했다. 응답자의 3%는 8가지 음모론 중 어느 것도 거부하지 않았다. 음모론을 소수의 비이성적인 사람들만 믿는 것이라고 치부하기 어려워 보인다.
또한 포퓰리즘적 태도와 음모론에 대한 믿음은 양의 상관관계가 있었다. 두 변수의 인과관계를 보다 상세하게 검증하기 위해, 연구진은 정치제도에 대한 신뢰와 과학 제도에 대한 신뢰의 매개효과를 추가로 분석하였다. 포퓰리즘적 태도는 정치제도와 과학제도에 대한 신뢰와 모두 음(-)의 상관관계가 있었고, 정치제도와 과학제도에 대한 신뢰는 음모론에 대한 믿음과 음(-)의 상관관계가 있었다. 이는 포퓰리즘적 태도가 음모론에 미치는 간접적인 효과의 경로를 보여준다. 이 관계는 연령, 교육 수준, 젠더, 정치 이데올로기, 정치적 관심 변수를 통제한 상태에서 유효했다.
현실에서는 (재선에 실패한 트럼프와 같은) 우파 정치인들이 주로 코로나 음모이론의 공급과 확산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연구는 현재 음모론의 확산은 좌·우파 어느 한 편만의 문제이자 위기가 아님을 시사한다. 문제는 포퓰리즘 그 자체에 있다.
포퓰리즘이 정부 차원에서 발현될 때 이것의 여파는 단순히 음모론이 횡행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선다. 코로나와 백신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왜곡함으로써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에도 피해를 준다. 42개국을 대상으로 코로나 초과 사망률에 대해 조사한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포퓰리즘 정부의 초과 사망률은 비포퓰리즘 정부와 비교할 때 2배 이상 높았다(기사 바로가기).
음모론이 퍼져나가는 동안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못한 이야기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보통 사람들’의 개별적이면서도 구체적인 고통의 이야기는 얼마나 알려졌는가. 현재의 포퓰리즘이 누구에 의해 어떠한 목적으로 이용되는지 의심해봐야 할 이유다.
*서지정보
-Eberl, J. M., Huber, R. A., & Greussing, E. (2021). From populism to the “plandemic”: why populists believe in COVID-19 conspiracies. Journal of Elections, Public Opinion and Parties, 31(sup1), 272-284.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