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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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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 법안을 발의한 후, 15년간 수차례 입법을 시도한 법. OECD 회원국 중 일본과 한국에서만 제정되지 않은 법. UN의 인권조약기구들이 계속해서 제정하라 권고하는 법. 88.5%의 국민들이 제정에 찬성하는 법(바로가기). 작년 6월 국회 국민동의청원 10만 명을 달성하여 국민들이 국회에 시급히 제정하라 한 법. 활동가들과 뜻을 함께하는 시민들이 지난가을 부산에서 서울까지 30일 동안 도보행진을 하면서까지 제정하려 하는 법. 그런데도 아직 제정되지 않아, 2022년 4월 현재도 단식투쟁을 하면서까지 쟁취하려는 법(바로가기). 한국 차별금지법의 역사다.

 

이토록 오랜 기간 중단 없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시도하게 만드는 근본 동력은 무엇인가? 단언컨대, 차별과 억압으로 인한 사람들의 고통과 불안이다. 그 고통과 불안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는 점에서 우리는 우선 정부에 그 책임을 묻는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소극적 태도 때문만은 아니다. 그 고통과 불안을 외면하거나 오히려 적극적으로 생산하고 지속적으로 확장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비정규직 차별. 세월호 참사 당시 학생을 구하다 순직한 교사는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로 보험금을 받지 못했다. 정부는 코로나19 감염관리수당을 병원이 직접 고용한 이들에게만 지급해, 똑같이 일한 파견 노동자들은 수당을 받지 못했다.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 비정규직이 경험하는 차별 사례는 우리 주변에 무수히 많다. 그런데 비정규직 등 불안정 노동층과 그들이 경험하는 차별이 확산되는 그 구조는 어디서 왔나. 정부의 노동 유연화 정책, 부족한 노동자 보호 대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장애인이 이동권과 관련해서 경험하는 차별은 또 어떤가? 선심성으로 도로를 만드는 것보다 보편적 이동권이 우선했다면, 의사결정구조에 장애인 당사자를 비롯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포함시켰다면 지금보다는 상황이 더 나아졌을 것이다(바로가기).

 

 

정책이 정치의 결과임을 고려하면, 정치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니 작금의 정치는 오히려 ‘차별과 혐오의 정치’가 아닌가? 비정규직노동자와 정규직노동자, 여성과 남성,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이주민과 선주민 등 온갖 범주를 동원해 편을 가르면서 차별과 혐오는 정치의 언어로 드러나고 확산되고 있다. 차별 없는 평등한 사회를 위해 반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가는 정치를 희망하지만, 지금의 정치는 정확히 그 반대를 향하고 있다.

 

차별을 해소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책임을 방기해 왔다는 점에서, 그리고 오히려 차별을 생산, 재생산하는 구조적 기반을 형성하고 강화해 왔다는 점에서 국가권력은 이중의 책임이 있다. 하지만 더 요구하지 않는다. 차별과 억압을 유지하고 확산하는 그 구조를 떠받치는 나쁜 기득권, 그리고 이를 옹호하는 모든 체제를 일거에 해소하라고 국가권력에 요구하지 않는다. 최소한만 요구한다.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차별금지법 하나로 모든 차별이 한 번에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차별을 당했거나 지금도 당하고 있는, 그리고 이 때문에 미래의 고통과 불안에 힘들어 하는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게는 이 정도도 안전망이다. 차별금지법을 압도적으로 찬성한 시민사회는 이 법을 토대로 토론하고 학습하며 합의하면서 차별 없는 새로운 사회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5년 동안 국가는 ‘사회적 합의’, 혹은 ‘시기상조’ 운운하며 차별금지법 입법을 피해왔고 이는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80%가 넘는 시민사회가 찬성하고, 10만 명이 청원한 이 법을 법사위는 2024년 5월 국회 임기 만료일까지 심사기한을 연기했다.

 

정부와 국회는 언제까지 차별금지법의 흑역사를 써내려 갈 것인가. 이제는 차별금지법의 새로운 역사를 쓰길 요구한다. 국가권력의 속성상 통치를 원할진대, 통치를 위해서라도 이 정도는 해야 한다. 특히 여전히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아직은 여당에 요구한다. 검수완박 법안 통과에 대한 의지의 반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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