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공공의료의 진정한 효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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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료의 진정한 효율성

진주의료원 폐원을 둘러싼 논란의 ‘승자’는 누굴까. 전투와 승패로 모든 일을 가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아직 완결되지도 않은 일이다. 그러나 마무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도 ‘계산’이 필요해 보인다.

의료원이 되살아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 같다.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한 달 이내에 재개원 방안을 마련해 보고하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막무가내로 버틴 홍 아무개 지사가 말을 들을까.

그렇다고 이 사태를 주도한 당사자, 홍준표 지사가 크게 득을 보지도 못했다. 불도저 이미지가 좋은지 나쁜지는 모르겠으나, 불통과 고집에 막무가내(쓰지 말아야 하는 말이나, 일본말에서 온 ‘무대뽀’라는 표현이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다)라는 인상은 분명 그가 갚아야 할 ‘부채’가 되었다. 정치를 계속하는 한 두고두고 부담을 안을 것이다.

국회와 중앙 정부는 한 마디로 무력했다. 더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한 지역의 문제를 전국적 관심사로 만든 것은 노동과 사회단체다. 그 다음, 국회와 정부는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내고 또한 해결 방법을 내놓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성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지 않다. 해야 할 역할과 하고 있는 일, 그리고 문제와 한계까지, 공공의료의 실상이 어느 때보다 많이 드러났다. 또 그 때문에 곳곳에서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당장 여러 광역자치단체가 다른 자세로 공공의료와 공공병원을 다시 논의하고 있다.

당장 무슨 결론이 나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이런 논의가 앞으로 공공의료가 발전해 나가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가 얻는 ‘자산’을 가볍게 볼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공공의료가 하는 일을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이 특히 중요하다. 사정이야 무엇이든 다른 의료기관이 잘하지 않는 진료기능 – 예를 들어 가난한 사람들이나 노숙인을 치료하는 것 – 을 맡고 있다는 것이 사회적 이해이자 합의다. 별 소용이 없으니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다.

물론, 갈 길은 아직 멀다. 공공의료가 해야 할 일 가운데에 이것은 ‘최소’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 전체, 또는 국가적으로는 공공의료의 역할과 기능은 훨씬 더 많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약간 복잡하므로 다시 말할 기회를 찾아야 하겠다.

당장의 걱정거리는 다른 데에 있다. 이른바 공공의료 살리기가 역설적으로 ‘경영 효율화’를 압박하는 것이다. 한 쪽으로 공공의료의 기능을 이해하는 사람들일수록 이렇게 말한다. “공적 기능은 그렇다 치자. 나머지 병원 운영은 제대로 해야 할 것 아니냐.”

공적 기능을 수긍하는 듯하면서도 방만한 경영과 비효율이라고 에둘러 비판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이분법이다. 공공의료의 경영과 효율은 좀 더 본격적으로 그리고 새로운 통합적 틀 안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공공의료기관의 경영 수지는 제대로 분석하자면 매우 복잡하다. 짧은 글에 다 담기 어려우므로 한 가지만 지적하자. 좀 어려운 이야기지만, 공공의료기관을 하나의 ‘개방 시스템’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의 ‘시스템‘이지만 ’개방‘되었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경영의 효율도 그런 시각을 전제하고 접근하지 않으면 잘못된 결론에 이른다.

우선, ‘시스템’이기 때문에 한 기관 안에 있는 요소와 기능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또한 상호 의존적이다. 공공과 일반 기능을 분리하는 것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일반 환자를 보는 의사와 의료급여 환자를 보는 의사가 따로 있을 리 없다. 적자를 나누어 계산하는 것 역시 가능하지 않다.

또 한 가지, 혼자 잘한다고 전체 시스템이 잘 돌아갈까. 산부인과 의사 한 명으로는 매일 24시간 병원을 지킬 수 없다. 의사가 없을 때 산모가 오면 다른 병원으로 보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일이 반복되면 그 병원은 산부인과 의사가 없는 곳이 되고 산부인과 환자 전체가 줄어든다.

그런 예는 또 있다. 지방의료원처럼 병원이 작고 환자수가 적어도 입원 환자를 보고 검사를 하려면 필요한 인력은 다 있어야 한다. 하루에 한 건 하는 검사도 꼭 필요한 것이면(공공적 기능이든 아니든)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경영지표로 쓰이는 직원 한 명당 어쩌고 하는 것은 다 소용없다. 시스템이란 이런 것이다.

개방되어 있다는 것 역시 중요하다. 공공의료기관도 주위 환경(민간 의료기관을 포함해서)과 끊임없이 사람, 정보, 물자, 문화와 규범 등을 주고받는다. 예를 들어 의사든 간호사든 제대로 된 인력을 구하려면 민간기관과 경쟁할 만한 인건비를 써야 한다. 자기희생과 공공 마인드를 강조하는 것으로 좋은 사람을 붙들어 놓기는 불가능하다. 좋은 인력 없이 ‘경쟁력’은 어림없는 소리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시스템의 시각에서 효율성의 정의와 잣대를 ‘정상화’하는 일이 급하다. 어떤 조직에서도 효율성은 중요하다. 그러나 효율은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이자 전략에 지나지 않는다. 돈벌이나 수익, 경영 수지가 아니란 뜻이다. 현실에서는 기업에나 들이댈 효율성의 잣대가 공공의료기관까지 잠식했다.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얼마나 시간과 노력, 자원을 제대로 썼는가 하는 것이 효율이다. 효율적으로 달성해야 할 목표는 질 높은 빈곤층 진료, 불평등 감소, 건강 수준 향상, 또는 지역주민의 참여 촉진, 그 어느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개방 시스템에서 제대로 ‘경영 효율화‘를 하는 길은 무엇일까. 두 가지 급한 것만 꼽는다. 우선, 각 공공의료기관이 해야 할 기능과 목표를 명확하게 정해야 한다.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그동안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냥 뭉뚱그려 몇 개의 군(그룹)으로 분리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개별 기관마다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주기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서울대학교병원, 서울의료원, 강진의료원의 기능과 목표가 같을 수 없다. 5년, 10년이 지나도 목표가 같은 것도 곤란하다.

중앙 정부와 시도, 지역 주민, 기관의 구성원이 같이 머리를 맞대고 기능과 목표를 가급적 명확하게 만들자. 특히 주민의 참여(나아가 ‘통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역의 요구를 반영하는 기능과 목표를 설정하려면 어렵더라도 지역 주민이 주역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평가가 가능하고, 그 결과가 있어야 효율화와 혁신도 말할 수 있다.

두 번째는 표준병원(기관)의 모델을 만들고 예상 비용과 산출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추정하는 일이다. 물론 이런 모델은 여러 개가 되어야 할 것이고, 아주 많으면 기관 수만큼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모델이 필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얼마나 일을 제대로 했나 비추어 판단 기준으로 삼기 위한 것이다. 물론 기관 운영의 나침반 노릇도 하겠으나, 운영의 효율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런 기준이 필요하다.

공공의료기관은 민간 기관과 모든 것이 다르다. 기능과 역할은 물론이고, 업무과정과 방식, 조직문화까지 차이가 난다(그리고 마땅히 달라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공공의료기관끼리도(비슷한 규모일 때도) 그 속은 같지 않다.

그러니 규모가 비슷한 다른 민간 기관 또는 공공기관과 기계적으로 비교해서 따지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설사 다른 차이가 없다 하더라도 그렇다. 다른 대상에 비추어 판단할 때의 전제는 그 비교 대상이 바람직한 상태(기준)에 있다는 것이다. 지금 민간 병원이나 다른 공공기관의 상태(예를 들어 인력이나 시설, 생산성)와 하는 일이 모범 기준이 되는 것은 그야말로 천부당만부당하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효율성은 수익과 같은 의미가 아니다. 얼마나 인력을 덜 썼는가도 기준이 될 수 없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목표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달성했는가가 효율성의 진정한 기준이다. 새로운 표준병원 모델이 필요한 이유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을까.

공공의료의 공적 기능을 인정해도 경영 효율화의 논리는 견고하고 또한 완고하다. 그런 점에서 공공의료의 기능은 여전히 ‘보완론’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보완론조차 오염되고 왜곡된 효율화 논리로는 명목뿐인 신세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제 공공의료에 맞는 효율화 전략을 개발하는 것이 급하다. 정확한 기능과 목표 설정, 그리고 기술적으로 효율성을 평가할 수 있는 표준 모델 개발이 첫걸음이 될 것이다.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인식 전환과 새로운 행동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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