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노동조합 가입하여 애국하자
Dollard MF, Neser DY. Worker health is good for the economy: Union density and psychosocial safety climate as determinants of country differences in worker health and productivity in 31 European countries. Social Science Medicine 2013;92:114-123
노동조합 (이하 ‘노조’) 만들면 회사의 눈총은 기본, 가끔은 해고, 심지어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기업주들에게 노조이란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인정할 수 없는 악의 축이고, 이런 활동을 하는 노동자들이란 다치면 ‘개값’ 정도나 물어주면 되는 성가신 존재들이다. 그래서 <사회과학과 의학 Social Science & Medicine> 최근 호에 발표된 Dollard와 Neser의 논문은 한국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일 수도 있다. 노조 가입률이 높으면 국민건강수준이 높고 심지어 생산성도 높다니?
이 논문은 유럽 31개국의 다양한 자료원들을 이용하여, 노조 가입률, 작업장의 사회심리적 안전 기풍과 노동자들의 자가평가 건강수준, 국민건강수준, 생산성의 관계를 분석했다. 여기에서 국민건강수준은 해당 국가의 평균수명으로, 생산성은 1인당 국내총생산 (GDP)으로 측정했고, 자가평가 건강수준은 31개국 약 3만 5천명의 근로인구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활용했다. 한편 노조 가입률은 전체 근로인구 중 노조에 가입해 있는 사람들의 숫자로 측정했는데, 스웨덴 (71%), 핀란드 (70%), 덴마크 (69%) 등 북유럽 국가들에서 높았다. 작업장의 사회심리적 안전 기풍은 기업의 안전보건 관리자 약 2만 9천여 명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측정했다. 구체적으로, 기업들이 직장 내에서 (1) 업무 관련 스트레스, (2) 따돌림이나 괴롭힘, (3) 업무 관련 폭력 같은 문제를 다루기 위한 절차가 있는지, 그 과정에서 (4) 직원의 역할은 무엇인지, 즉 사회심리적 위험을 다루기 위한 방법과 관련하여 직원들에게 자문을 구한 적이 있는지, (5) 그러한 방법들을 실행하고 평가하는데 직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격려하는지를 물었다. 말하자면 이는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처하는 각종 사회심리적 위험에 기업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개선하려 노력하는지, 노동자들의 민주적 참여가 얼마나 보장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스웨덴 (86점), 아일랜드 (85점), 핀란드 (81점) 등이 가장 점수가 높은 국가들이었다.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우선 노동자들이 스스로 평가한 건강수준이 양호한 나라들일수록 평균수명이 길고 GDP도 높았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지만,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부분이다. 전체 인구의 절반이 근로인구라는 점에서, 이들의 건강이 안 좋은데 국민건강지표가 좋게 나올 리 만무하고, 또 건강한 노동력 없이 생산성이 높아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두 번째 중요한 결과는 노조 가입률이 높은 국가일수록 노동자들 스스로 평가한 건강수준이 양호하고 GDP 도 높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효과는 국가 수준에서 소득 불평등, 작업장 수준에서는 사회심리적 안전 기풍을 통해 매개되고 있었다. 즉, 노조 가입률이 높은 국가일수록 소득 불평등이 덜했는데, 이 연구에서 직접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소득불평등이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한편 노조가입률이 높을수록 작업장의 사회심리적 안전 기풍이 진작되고, 이것이 다시 자가평가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추가 분석에서, GDP가 자가평가 건강수준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경로나 노동조합 조직률을 통해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로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이미 생산성이 높으니까 건강이 양호해진다거나 노조에 가입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노조는 노동자들을 대표하여 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함으로써 임금인상이나 작업환경 안전 조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유력한 자원이다. 노조가 힘이 있어야 일터가 안전하고 노동자들은 건강해진다. 그리고 건강한 노동자가 있어야 국민경제도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연구의 함의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누군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노조는 안 돼’라고 한다면 주위를 잠깐 둘러보자. 곳곳에 작은 화단들, 거리에 내놓은 화분들이 의외로 많다. 국민경제를 살리겠다는 애국심으로, 흙을 집어 그 자의 얼굴에 살짝 뿌려주자. 혼자라서 겁이 난다면, 노조에 가입하자. 그것이야말로 우리 일터를 건강하게 만들고, 나아가 국민 전체의 건강수준과 국가의 생산성을 높이는 애국활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