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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적 관행과 윤리적 모순이 초래하는 정신적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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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은 (시민건강연구소 영펠로우)

 

 

개인의 심리와 정신건강을 스스로 관리하는 것이 지배적인 시대이다. 서점에 가면 우울과 불안 등 스스로의 마음을 점검하고 다스리는 방법에 관한 책이 흘러 넘쳐 고르기가 어려울 정도다. TV를 켜면 “문제적” 행동 혹은 사고를 하는 개인이 출연하여 전문가(특히 정신건강전문의)의 분석과 해결 방법을 듣는 과정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어디 이 뿐인가? 우리나라의 최근 자살 현황을 분석한 <2022 자살예방백서>(바로가기)를 들여다보면, 자살사망자의 자살 동기 1위는 정신적, 정신과적 문제(38.4%)라고 한다. 점점 더 불안정해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정말 자신의 마음을 잘 관리하지 못해서 괴로운 것일까?

 

이처럼 심리적, 정신적 고통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현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 통찰을 주는 연구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사이몬 프레이저 대학의 지에 양교수는 국제학술지 <최신 인류학>에 중국에서 최근 증가하는 공무원 자살의 주요한 원인을 우울증으로 바라보는 중국 정부, 미디어, 대중들의 관점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논문 바로가기☞공무원들의 심적 고통” : 중국의 우울증, 관료제 그리고 치유적 통치). 연구자는 2009년부터 2011년, 2013년 여름에 중국 산동성의 중소도시 장치우를 방문하여 26명의 공무원과 15명의 정신과 의사를 인터뷰하였고, 두 개 정부 기관의 정기회의에 참여하여 그 과정을 관찰했다.

 

인터뷰와 참여관찰 내용을 분석한 후, 연구자는 중국 공무원들의 심리적, 정신적 고통과 우울이 공무원 사회에 존재하는 암묵적 관행을 따르고 수행하는 중에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낮은 직급의 공무원들이 관료제에 통용되는 비공식적인 규칙과 전략들을 점차 내면화하고 수행하는 과정에서 고통이 야기되고 악화된다는 것이다. 이들이 학습해야 하는 암묵적 관행들은 공식적인 원칙이나 규칙을 비틀거나 자신의 윤리적 잣대를 잠시 내려놓아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윤리적 모순을 참고 견뎌야만 하는 딜레마가 이들의 심리적·정신적 고통과 분노를 초래한 것이다.

 

“당신이 이 일을 하게 된다면, 항상 상사의 암묵적인 메시지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적절한 발언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과 같아요. 조심하지 않으면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말 거에요. (중략) 당신이 원래 얼마나 건강했든지 간에 머지않아 우울해질 겁니다. 이곳에서는 자신을 쥐어 짜내서라도 시스템에 맞추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거든요.” (공무원 연구참여자)

 

특히 연구자는 이러한 암묵적 관행을 따르는 것이 사회적 화합이라는 이름으로 강조된다는 것에 주목한다. 여기서의 사회적 화합은 상급자 혹은 기관, 더 나아가 국가의 이익에 거스르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데, 이를 유지하는 데에 낙인이 동원된다는 것이 흥미롭다. 다시 말해, 화합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개인을 문제시하거나 병리화하여 낙인찍음으로써, 관료주의나 정치적 부패라는 문제는 은폐되고 비판적 논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연구자는 이런 담론이 사회와 구성원을 통제하기 위한 도구로서 활용된다고 밝힌다.

 

“자살한 공무원들이 만약 그렇게 죽지 않았다면, 그 상사들은 아마 발 뻗고 잠들지 못했을 걸요?” (일반 시민)

“우리가 만약 정신 질환의 사회적 원인에 대해 말한다면, 중국의 관료제가 문제라는 것을 암시할 수밖에 없어요. 이것은 블랙박스를 여는 것과 같겠죠. 우리는 힘이 없어요.” (정신과 의사)

 

이 연구에서는 구체적으로 ‘치유적 통치(therapeutic governance)’ 혹은 개인을 병리화하는 통치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공무원들의 자살이 정치적 구조로 인한 것이 아니라 우울증의 탓으로 간주되는 현상을 분석하였다. 이 개념은 복잡 다단한 사회정치적 문제를 한 개인의 의료적·심리적 원인으로 치환하는 새로운 형태의 통제와 관리를 포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자는 이런 ‘치유적 통치’가 구조적 문제를 은폐하는 탈정치화 현상을 만들고, 동시에 복합적인 요인이 얽힌 사회적 현상을 한 가지 원인으로만 설명하는 환원주의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는 점을 비판한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는 한 개인의 고통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연구자가 치유적 통치로 명명한 것과 비슷하게 잘못된 규범과 억압적 구조에서 발생한 문제를 개인의 병리로 돌리며, 더 이상의 정치적인 논의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개인의 경험과 고통을 위로하고 애도하는 것을 넘어 그런 고통을 당연시하고 수용하게 만드는 실재를 드러내고 바꾸는 데까지 나가야 한다. 그런 후에야 우리는 동료 시민들을, 그리고 나를 이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서 보호하는 책임을 다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 서지정보

Jie Yang, 2018. ““Officials’ Heartache”: Depression, Bureaucracy, and Therapeutic Governance in China,” Current Anthropology 59(5): 596-615.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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