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근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다른 모든 자원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보건의료 시설 자원인 병원도 도시나 수도권으로 몰리곤 한다. 비수도권 비도시 지역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방문할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하는 병원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지역에 남아있는 병원은 공공·민간 소유주체를 가릴 것 없이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지역에 병원을 건립하거나 기존 의료체계를 강화하겠다는 여러 계획을 내놓은 바 있지만 지금까지 괄목할 만한 개선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민간에 의료체계의 상당 부분을 위임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이는 중요한 문제다.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 연구진이 올 해 <병원의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05년부터 미국의 비도시지역 병원 180개소가 폐업했고, 200여 개소가 폐업 직전이며, 700여 개소는 재정이 위험한 상태에 놓여있다고 한다(논문 바로가기 ☞ 방관자 효과: 비도시지역 병원 폐쇄가 주변 의료기관의 기능과 재정에 미친 효과). 연구진은 미국의 공영 의료보험인 메디케이드(Medicaid)의 확장 실패, 의료 시장에서 민간 자본의 영향력의 증가, 지난 몇 십년 동안 지속된 지역 의료체계 내부의 경쟁 증가를 그 원인으로 꼽았다. 또한 메디케이드 확장에 반대한 주는 본래 인구가 적고 지불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아 이미 취약한 비도시지역의 특성과 결합하여 병원 폐업이 특히 많았다고 설명한다.
연구진은 비도시지역 병원의 폐업이 주변 의료기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려지지 않은 점에 착안하여 병원 폐업이 일어난 지역 인근의 의료기관을 이용한 환자 수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관찰하였다. 먼저 2005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 전역에서 ‘병상 26개 이상이면서 폐업한 병원’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30마일(약 48km) 주변의 병원을 ‘방관자 병원’으로 분류하였다. 그리고 병원 폐업 전후 2년간 ‘방관자 병원’의 입원 환자와 응급실 방문자 수의 평균 변화율을 측정하고, 이에 따른 진료비용의 증가를 추정하여 지역 병원의 폐쇄에 따른 파급효과를 분석했다. 분석에는 미국 병원협회가 매년 수집한 의료기관의 입원 의료량·응급 입원 등의 진료량, 병원별 환자의 중증도, 병원별 비용 지출과 수익성에 대한 전국 조사 자료를 이용하였다.
93개의 ‘방관자 병원’을 분석한 결과, 인근 지역 병원 폐업 후 2년 동안 ‘방관자 병원’의 환자 증가 추세는 폐업 이전보다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급실 방문자 증가율의 경우 지역 병원의 폐업 직전 2년 동안은 평균 3.59%였으나, 폐업 이후 2년 동안은 10.22%로 나타났다. 입원의 경우 지역 병원 폐업 직전 2년 동안의 ‘방관자 병원’ 방문자는 평균 5.73% 감소하는 추세였으나, 폐업 이후 2년 동안 평균 1.17% 증가하는 추세로 바뀌었다.
연구자들은 지역 병원의 폐업 이후 근처 ‘방관자 병원’의 진료량이 높아지더라도 해당 지역 환자의 중증도가 대체로 낮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병원의 수익성이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환자가 늘어나는 현상이 병원 경영의 관점에서 언뜻 긍정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넓은 범위의 질환군을 다룰수록 곧 시설과 인력 면에서 높은 지출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항상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병원 유형에 따라 입원 환자 진료에 병원이 소모하는 비용 또한 큰 차이가 있었다. 근처의 병원이 폐업하면, 그 주위에 있는 비영리병원은 매년 약 730만 달러의 추가 비용을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영리 병원의 평균 추가 지출 약 140만 달러의 다섯 배가 넘는다. 연구자들은 이같은 결과가 높은 수익을 목표로 하지 않는 비영리 의료기관들이 겪는 연쇄적인 재정 부담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처럼 한 병원의 폐쇄는 지역 의료체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데 연구자들은 이러한 현상이 지역의 모든 의료기관이 도산하거나, 지역을 독점할 힘이 있는 의료기관만이 생존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보았다. 연구자들은 지역 당국의 감독과 공공보건의료 정책이 없다면 연쇄적인 지역 의료기관의 폐업으로 취약한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에게 건강 불평등이 확산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미국에서는 72%의 병원이 의료네트워크에 포함되어 있으며, 최근에는 이 의료네트워크의 확장을 위해 지역의 작은 병원들을 포섭하고 있다. 네트워크에 소속되지 않은 병원은 경쟁에서 밀려나 폐업하거나 사모펀드 등 자본에 의해 인수되는 추세다. 연구자들은 지역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비영리 의료기관의 폐쇄는 인구 집단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경향을 문제라 지적한다.
연구자들이 지적하듯 이런 상황에 대하여 지역 정부와 국가의 역할이 물론 강조되어야 하나, 실행 수단으로써 의료서비스 제공자의 협조 또한 중요하다. 이 논문이 상당수의 지역 보건의료체계 연구와 다른 점은 지역 병원의 폐업을 다른 의료기관의 관점에서 분석하여 지역의 의료 문제를 해결하는데 꼭 필요하지만 자칫 ‘방관자’ 이상의 역할을 원치 않을 수 있는 사람들을 문제 현장으로 불러내고 있다는데 있다. 지역보건의료체계 관련 논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의료서비스 제공자에 관한 연구가 지금보다 활발히 이루어져 이해당사자가 적극적으로 논의를 위해 나설 수 있도록 돕는 근거를 생산할 필요가 있다.
*서지정보
Ramedani, S., George, D. R., Leslie, D. L., & Kraschnewski, J. (2022). The bystander effect: Impact of rural hospital closures on the operations and financial well‐being of surrounding healthcare institutions. Journal of Hospital Medicine.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