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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법과 원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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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국가 권력은 전체 부르주아지의 공동 사업을 관장하는 위원회에 불과하다.”

 

일찍이 마르크스가 서술한 내용이 마치 현재의 한국 정부를 묘사한 듯하다. 화물노동자들의 안전운임제 요구를 업무개시명령으로 대응하는 모습. 노동조합을 악마화하는 모습. 장시간 노동을 추진하는 모습. 납세자들의 부담 운운하면서 공공임대 예산에 반대하는 모습. 법인세는 어떻게든 3% 인하해야한다고 떼쓰는 모습. 투기세력, 재벌기업 배만 불리는 공공자산 매각을 서두르는 모습. 이것이 기득권의 공동 사업을 관장하는 위원회가 아니면 무엇인가.

 

언제나 경제 권력의 이익에 복무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국가 기구는 경제 권력에 편향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국가 권력의 엘리트들이 경제 권력과 긴밀히 연결돼 있고, 또 경제 권력은 여러 자원을 통해 국가 운영에 영향을 미친다. 국가 권력으로서도 ‘경제 성장’이 통치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자본에 의존할 만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 마련인데, 이번 정부는 그러한 모습도 없이 노골적이다.

 

 

‘자유’와 ‘법과 원칙’이라는 프레임으로 합리화하려 하지만, 정부가 말하는 자유는 누구의 어떤 자유인가.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것들을 보건대, 소수의 자본가가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으로부터도 벗어나,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거나 비용을 사회로 전가하면서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 할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그 결과 다수의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자유는 상당히 제약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말하는 법과 원칙은 혼란스럽다. 처음에는 화물노동자를 자영업자라 주장하며 파업을 문제시 하더니, 나중에는 그런 자영업자들에게 노동을 강제하는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노동자들과는 전혀 대화에 나서지 않던 대통령은 경제 단체장들과는 비공개 면담을 가지면서, 중대재해법에 결함이 많다며 기업이 최대한 피해 입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헌법에 명시된 노동 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못하는 노조법은 꼭 지켜야 할 법이고, 기업에 피해가 갈 수 있는 중대재해법은 결함이 많아 수정이 필요한 법인가?

 

법과 원칙은 당연히 완벽한 것도, 변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사회적 합의에 따라 수정될 수 있고, 맥락에 따라 철저하게 지켜지는 것이 중요할 수도, 타협이 중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차별을 합리화하는 데 이용되는 것은 곤란하다. 권력과 자원을 가진 개인과 집단에는 너그럽고, 그렇지 않은 이들에는 무관용으로 대응하는 것처럼 말이다.

 

노동조합 혐오 조장을 통해 보수층의 결집을 이뤄내면서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평가가 늘었다. 국가 경제나 산업을 위한다면서, 실제로는 소수 기득권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의 삶을 더욱 위태롭게 만드는 조치들이 더 심해질까 걱정이다. 많은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이 별다른 역할을 못(안) 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권리 주체들의 목소리를 사회에서 지우려 하고, 언론을 통제하려는 정부의 행태가 더욱 암담하다.

 

하지만 기억할 것이 있다. 권리 주체들의 목소리를 억누를수록 그 반발은 더 강력해진다는 것. 국가 권력이 그토록 사람들의 목소리를 지우려 하는 것은 그것이 그만큼 위협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가 이태원 참사의 제대로 된 진상규명, 사과와 책임은 뒤로하고, 유가족들이 모이지 못하게 방해했지만, 결국 유가족협의회는 출범했다. 정부가 2차 가해를 방조하고, 몇몇 정치인은 직접 2차 가해를 하면서, 유가족을 비롯한 시민들은 더욱 분노하고 강력하게 정치적 책임을 묻게 되었다.

 

화물연대가 파업을 시작할 무렵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안전운임제’는 이제 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정부가 노조와 대화하지 않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 압박하는 것을 보며, 노동자들은 더 강력하게 뭉쳤다. 결국 화물연대가 주장을 관철하지 못하고 파업을 그만두었지만, 그 파업 기간은 노동자와 이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연대를 확인하고, 끈끈하게 다지는 시간들이었다. 당장은 그 힘과 에너지가 보이지 않고, 삶은 점점 더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지만, 반전의 기회는 온다. 꺾이지 않는 마음은 사람들의 권리와 삶을 지켜내기 위해 연대하는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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