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경남 산청군은 연봉 3억 6천만 원을 제시했지만 보건의료원에서 일할 내과 전문의를 오랫동안 구하지 못하고 있다. 전국에 소재한 35개 지방의료원들 중 정원을 채운 병원은 11개소뿐이다(☞관련 기사: 지방의료원 정원 충족 35곳 중 11곳 불과). 대다수의 직업과 달리, 의사의 연봉은 수도권보다 지방에서 더 높게 책정된다. 인구당 의사수가 적은 지방에서 연봉이 높고, 인구당 의사수가 많은 수도권은 연봉이 낮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만큼, 지방에서도 대도시와 의료취약지역 간 연봉이 큰 차이를 보인다(☞관련 자료: 2022년 전국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이는 수요-공급의 이론을 충실히 따른 결과다. 지방에서 의사 구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이미 전국적인 현상이 되었다.
높은 비용을 들여 지방에 의사를 ‘모셔 와야’ 하는 현실이 누적되고, 의사 부족에 따른 의료인프라 부족이 화두가 되면서, 몇 해 전부터 많은 지자체에서 “의대 유치”가 주요한 정책과제가 되었다. 각 지자체마다 ‘의료취약지 개수’, ‘인구당 의사 수’, ‘중증질환 자체충족율’, ‘주요 질병의 이환율’ 등의 전문적인 지표들을 동원하면서 의과대학 설립의 적임지가 자기 지역임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알려진 것만 해도 전국에서 12개 지역이 의과대학 유치를 위한 경쟁을 하고 있다. 지자체 안에서는 다시 국립대학교, 사립대학교, 민간병원재단 등이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의과대학 유치를 위한 논리를 만들고 있다.
의사 증원의 정책 기조가 유지된다면, 의사인력이 취약한 1~2개 지역에 의과대학이 신설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렇게 일부 지역만이 의과대학 유치에 성공해 의과대학이 설치된다면, 유치하지 못한 지역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의과대학 설치를 통해 달성하고자 했던 의사확보 계획은 물 건너가게 되는 것일까? 의과대학을 유치하는 것 말고는 의사확보를 위해 지자체가 할 일은 더 없는 것인가?
이미 많은 지자체에서는 의과대학 유치에 실패할 것을 ‘예견’하고 있다. 의과대학 유치 결정은 온전히 중앙정부의 소관이기 때문에, 유치에 실패해도 지역 정치의 타격은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역 건강당국으로서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오명을 쓰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역 주민 서명을 받고, 결의문을 낭독하고, 국회로 올라가 자기 지역에 의과대학 유치가 필요하다는 토론회를 여는 등의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이러한 상황에서 그동안 의사확보를 위해 추진되던 ‘공공임상교수제’, ‘공중보건장학의’, ‘지역거점공공병원 강화’, ‘지역거점공공병원 파견 의료인력 인건비 지원’ 등의 의사 확보 대책에 대한 관심은 사라진다. 의과대학 설치 외에 지자체에서 할 수 있는 의사인력 확보에 대한 정책을 고민하지도 않는다. 의과대학 설치의 정치는 결과적으로 지자체의 의료인력 확보에 대한 책무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사회에 필요한 양질의 의사인력을 확보하는 일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른 나라들에서도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다양한 정책들을 시도하고 있다. 오늘 소개하는 논문에서는 한국과 같은 중고소득 국가들에서 의료인력 확보를 위해 어떤 정책적 개입이 이뤄지고 있는지 종합적으로 검토하였다(☞논문 바로가기: 중고소득 국가에서 보건 개입을 위한 인적 자원).
연구 결과, 연구진은 의사인력 확보를 위해서는, ‘양성 및 교육’과 ‘모집 및 유지’, ‘적절한 배치’, ‘역량강화’의 모든 면이 입체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그림1 참고). 의과대학 설치는 4가지 요소 중 “양성 및 교육”의 한 가지 대책일 뿐이다. 즉, 의사인력의 적절한 확보를 위해서는 의과대학 설립뿐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요소가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림 1. 의사확보를 위한 정책 개입의 분류(논문 내용 재구성)
지난해 12월 14일 경남에서 열린 ‘의사인력 확보방안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일본 오키나와의 사례를 살펴보면(☞관련자료: 제4회 경상남도 공공보건의료 심포지엄 자료집), 위 논문에서 제시한 것과 같은 다양한 의사확보 대책을 지자체에서 운영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그림 2 참고).
그림 2. 오키나와 의사확보 관련 사업 분류 및 예산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섬으로, 부속 섬과 산지가 많아 의료취약지가 광범위하게 분포하는 지역이다. 그렇기에 오래전부터 의사 확보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오키나와 현(県)정부는 의료인력 전담 부서와 전담 인력을 구성하고, 지원조직(지역의료지원센터)을 마련하여 지역의사제, 전공의 양성사업 등의 중앙정책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동시에 ‘지도의 육성사업’과 ‘대진의 파견사업’ 등 오키나와만의 고유한 사업들을 수립하여 현 자체 예산을 투여하며 운영하고 있다.
의사 정원 증원과 의과대학 설립 등 지방의 의사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양적 확대 정책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는 중앙 정부의 정책 의지와 예산 지원이 필요한 문제다. 의과대학 유치도 중요한 지역의 현안문제지만, 의사 부족을 겪고 있는 지자체들은 중앙 정부의 결정을 기다리고만 있을 것인가? 오키나와 현의 사례처럼 자체적으로 필요한 의료인력 확보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수 있는 체계와 지역 현실에 맞는 정책을 만들고 예산을 투여하는 방안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 서지정보
Witter, S., Hamza, M. M., Alazemi, N., Alluhidan, M., Alghaith, T., & Herbst, C. H. (2020). Human resources for health interventions in high- and middle-income countries: findings of an evidence review. Human resources for health, 18(1), 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