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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자살 예방을 위한 정책수단으로서의 ‘혼인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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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지난 2월 21일, 서울고등법원은 동성 배우자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관련 기사: “결국은 사랑이 이겼다” … 동성부부 ‘건보 소송’ 승소). 소송을 제기한 원고와 원고의 배우자는 오랜 기간 함께 살고 있고 2019년에는 양가 가족과 지인들을 모시고 결혼식을 올린 동성 커플이다. 2020년 원고는 사실혼 관계를 기반으로 직장가입자인 배우자의 피부양자 자격을 취득했고,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원고를 다시 지역가입자로 바꿔 직장가입자 피부양자로 등록되어 있었던 8개월 동안의 보험료를 소급하여 납부할 것을 고지했다.

 

재판부는 혼인을 ‘남녀 간의 결합’이 아닌 ‘두 사람 간의 결합’으로 여겼으며, 원고와 원고 배우자를 사실혼 관계를 맺고 있는 이성 커플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또한 국민건강보험법상 사실혼 배우자도 피부양자로 인정되어 왔다는 점을 지적하며,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처분이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는 평등의 원칙을 위반한 차별행위라고 판단했다. 해당 판결은 국내에서 동성 부부의 권리를 인정한 최초의 사례로, 이를 통해 한국 사회는 ‘혼인평등’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전 세계적으로 동성혼이 법제화된 나라는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쿠바, 슬로베니아, 안도라까지 총 34개국이 있다. 동성혼을 제한적으로 인정하거나 시민결합과 같은 유사한 제도를 가지고 있는 경우를 포함하면 훨씬 많은 나라에서 동성결합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한국은 아직까지 동성혼이 법제화되지 않은 나라로, 한국에서 실질적으로 결혼 생활 중인 동성 커플은 이성 커플이 결혼을 통해 얻는 수많은 법적·사회경제적 권리와 혜택을 받지 못한다.

 

동성혼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것은 (이성 커플이 아닌) 동성 커플이기 때문에 겪는 제도적인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로, 이들의 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오늘 소개할 논문에서는 총 36개 OECD 회원국의 패널자료를 이용해 동성혼 법제화와 청소년 자살률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논문 바로가기: 동성혼 법제화와 청소년 자살사망의 연관성). 

 

이를 위해 1991년부터 2017년까지의 기간 동안 국가 단위에서 동성혼을 법제화한 18개국을 실험군으로, 동성혼을 법제화하지 않은 나머지 18개국을 대조군으로 구분하였다. 대조군에는 한국을 비롯한 이탈리아, 일본, 터키, 칠레 등의 나라가 포함되었다. 각국의 청소년 자살률은 10~24세 전체 청소년 인구 10만 명당 자살 사망자 수로 산출하였다.

    

연구 결과, 동성혼 법제화는 청소년 자살률 감소와 관련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성혼을 법적으로 인정한 이후 전체 청소년 자살률은 10만명당 1.191명 줄어들었으며, 이는 법제화 당시 청소년 자살률과 비교했을 때 17.90% 감소한 수준이다. 더 나아가 연구 결과를 남녀로 나눠봤을 때, 남성 청소년이 여성 청소년보다 동성혼 법제화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성혼이 법적으로 인정된 이후, 남성 청소년의 자살률은 10만명당 1.993명 감소한 반면, 여성 청소년의 자살률은 10만명당 0.348명 감소하였다. 백분율로 환산하면, 동성혼 법제화 당시 자살률에 비해 남성 청소년은 19.98%, 여성 청소년은 10.90% 줄어든 것이다. 

 

동성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의 의미는 단순히 이성 커플과 마찬가지로 동성 커플에게 결혼에 따른 법적·사회경제적 권리와 혜택을 동일하게 부여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동성혼 법제화는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동성 커플에게 정당한 시민권을 부여하고, 이들을 향한 편견과 차별은 이 나라에서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공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제도적 변화를 통해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수용도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친화적인 사회 속에서 성소수자 청소년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본인의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거부당할 가능성이 훨씬 낮고, 이는 성소수자 청소년의 자살률 감소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연구 결과에 근거해 저자들은 한 나라에서 동성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청소년의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훌륭한 정책적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3.6명(2021년)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청소년의 사망 원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 또한 자살이다.

 

비록 분석 자료의 한계로 동성혼 법제화에 따른 청소년 자살률 감소가 성소수자 청소년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인지, 모든 청소년에게 나타나는 현상인지 구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동성혼 법제화가 청소년의 자살률을 감소시킨다는 점이다. 이 점에 기반하여, 한국과 같이 아직 동성혼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나라에 살고 있는 청소년의 자살률을 낮추기 위한 정책수단으로서 동성혼 법제화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서지 정보

 

Kennedy, A., Genç, M., & Owen, P. D. (2021). The association between same-sex marriage legalization and youth deaths by suicide: a multimethod counterfactual analysis. Journal of Adolescent Health, 68(6), 1176-1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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