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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정책과 산업정책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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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케이드라마, 케이뷰티…이제는 술도 K-술이다. 지난 11일 국세청이 K-Liquor(술) 수출지원협의회를 출범시켰다. 해외 주류 수입은 많은데 국내 주류의 해외 수출은 잘 되지 않는 상황을 타개해보자는 취지다(관련기사 바로가기). ‘K’ 자 붙이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니 또 하나의 K-○○이 등장하는가보다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알코올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고려할 때 ‘술’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면 좋을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2021년 알코올 관련 질환으로 인한 전체 사망자 수는 4,928명으로, 1일 평균 13.5명이 알코올에 의해 사망하고 있다. 알코올로 인한 사회적 폐해 역시 상당하다. 2020년 OECD에서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인구 10만 명당 알코올 관련 교통사고는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최근에도 음주운전으로 초등학생이 목숨을 잃고, 크게 다치는 가슴 아픈 사고가 있었다. 많은 사람의 공분을 샀고, 음주운전자의 엄벌을 요구하는 여론이 일어났다. 그 밖에도 뉴스로 접하는 성범죄, 폭력 등의 사건을 보면 음주와 관련이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 사건들은 그저 범죄 사건으로 취급되지만, 이는 동시에 공중보건의 문제이기도 하다. 음주는 건강위험요인일 뿐만 아니라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사회적·정책적 노력에 의하여 사회구성원들의 생명과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이 조절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 발표된 음주운전 억제방안 연구에서 음주운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폭음이었다. 또한 음주 빈도가 높을수록 음주운전을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음주운전 예방을 위해서는 음주량과 빈도 등, 음주 그 자체를 직접적인 문제로 다루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연구보고서 바로가기).

 

 

음주가 개인의 건강, 그리고 타인과 사회에까지 미치는 폐해가 상당하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이 무절제하고 문제가 있는 ‘개인’을 문제 삼는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술’과 ‘음주’ 그 자체를 문제 삼지 못하는 것은, 주류산업의 책임을 개인화하는 전략이 어느 정도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 판단한다. 폭음을 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일부 사람이 잘못이지, 술 마시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개인의 음주 행태는 술의 가격이나 마케팅, 술에 대한 접근성과 문화 등 사회적, 제도적 환경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결국 인구집단 전체를 대상으로 한 규제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물론 술을 판매해 이윤을 극대화해야 하는 주류산업의 입장에서는 규제가 반가울 리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건강증진기금을 부과하려는 시도, 물리적으로 주류를 구매할 수 있는 장소를 제한하려는 시도, 소주 세율을 인상하려는 시도 등 정부가 규제를 도입하려 할 때마다 이에 반대해 왔다. 대신 그들은 자율규제를 주장하고, 알코올 문제를 줄이는 데 효과가 없는 것으로 알려진 절주 교육과 캠페인을 강조했다. 동시에 문화적 수용성을 증진시킬 수 있는 각종 사회공헌과 후원 활동을 진행하며 사람들의 생활 속에 스며들었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여전히 술을 쉽게 구할 수 있고, 미디어에서 음주 장면을 자주 접한다. 주류산업으로서는 꽤나 성공적인 대응을 해 온 셈이다.

 

인구집단의 건강을 보호하려는 조치를 막고, 사람들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상품을 선택하라고 부추기는 기업의 전략은 비단 주류산업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다. 건강 연구자, 활동가들은 이를 ‘건강의 상업적 결정요인’으로 개념화하고, 마케팅, 로비, 기업의 사회적 책임 전략, 공급망 확장 등 기업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통로와 전략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틀을 제시하고 있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 역시 최근 다음과 같이 건강의 상업적 결정요인을 강조했다. “이제는 패러다임을 전환할 때다. 지역 수준에서부터 글로벌 수준에 이르기까지 건강의 상업적 결정요인에 대한 조치 없이는 공중보건이 개선될 수 없고, 개선되지도 않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술’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는가. 9년 전 우리 연구소의 보고서를 인용하며 우리의 주장을 다시 반복한다.

 

이제 알코올 관련 정책은 더 이상 산업정책이 아니라 보건정책’, ‘건강증진 정책이 되어야 한다. 국세청이 나서서 기업의 이해를 대변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 자율규제나 민관협력이라는 미명 하에 기업이 정당한 규제를 회피하고 오히려 규제에 영향을 미치던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알코올 문제의 정부 내 사령탑은 당연하게도 보건복지부이어야 하며, 규제정책은 철저하게 근거에 기반해야 한다. 정책 과정에 기업의 영향력을 배제해야 함은 물론이다. 주류기업은 규제의 대상이지 협력의 파트너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연구보고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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