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글목록: 사회불평등

소식, 토요세미나

[마감되었습니다.] 8기 사회역학-정책 협동 세미나 참가자 모집

  제안 배경   그동안 건강불평등,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에 대한 역학적 분석과 정책/전략을 함께 다루며 과학적 지식의 정치성과 현실 적용 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왔던 서리풀 사회역학-정책 협동 세미나가 여덟 번째 시즌을 맞았습니다. 2016년 하반기에 진행될 8기 세미나의 주제는 ‘(사회) 불평등의 이론과 건강불평등의 맥락’입니다. 7기 세미나에서 건강불평등이 발생하는 구체적인 생물학적 기전을 공부했다면, 다시 사회 수준으로 올라와 건강불평등이 발생하는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세미나의 목표입니다. 사회불평등 분야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루소의 책에서 시작하여, 사회불평등의 발생과 지속, 정당성을 논하는 책들을 함께 읽고자 합니다. ‘건강’ 불평등이 이들 책의 중심 주제는 아니지만, 전체 사회불평등 맥락 안에서 건강 불평등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서리풀 토요세미나는 모두의 협업과 토론으로 진행되는 자율적 공부모임입니다. 학습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연구를 통한 실천 활동에 동참하고자 하는 젊은 연구자, 학생들의 성실하고 자발적인 참여를 제안합니다.   진행 방식   일시: 격주 토요일 오전 10시-12시, 10월 15일일 (토) 첫 모임 (2017년 3월까지 진행 예정) 장소: 시민건강증진 연구소 (지하철 7호선 남성역 4번 출구) 코디네이터: 박진욱 (이 모임에 조교/보조원 개념은 없습니다. 참여자의 사회적 지위, 나이에 관계없이 자료 복사와 다과 준비, 뒷정리는 공평하게 분담합니다) 참가자격: (영어) 책을 읽고 정리하여 다른 이들에게 설명하며 발표할 수 있어야 하며, 전공은 무관합니다. 토론의 연속성 보장을 위해 간헐적 참가는 사절합니다 (선착순 10명). 참가비용: 별도 참가비는 없습니다. 다만 문헌자료나 발제문 복사,

소식

[안내] 제 4회 불평등 연구회 학술 심포지엄

  한국불평등연구 심포지엄 준비위원회는 국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불평등 연구자들 간의 연구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제4회 불평등연구회 학술심포지엄을 7월 1일 – 7월 2일 연세대학교에서 개최합니다. 사회계층, 교육, 젠더, 결혼과 가족, 인구 변동, 건강불평등, 노사관계, 사회조직과 네트워크, 이민과 이주노동, 복지제도와 사회정책 등 다양한 한국의 불평등 현상을 다루는 연구 혹은 한국을 포함한 비교연구 논문들이 발표될 예정입니다.   올해에는 두 가지 특별한 기획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특별세션으로 한국사회의 불평등 양상의 추이를 탐색하고 이에 바탕을 둔 새로운 연구주제를 개발하기 위한 세션을 기획하여 한국 불평등 연구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매년 인기리에 진행되어 온 방법론 워크샵으로 올해는 특별히 질적 방법론 워크샵을 기획하였습니다. University of Toronto 사회학과의 주해연 교수님께서 질적 방법론에 대한 강의를 해주실 예정입니다. 질적 접근을 활용한 불평등 연구에 관심있는 연구자들에게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되리라 믿습니다. 지난 세 차례 심포지엄과 마찬가지로 기존 연구자 및 대학원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불평등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기 바랍니다.   Different Forms of Inequality in Korea and Beyond  일시 : 2016년 7월 1일(금)~ 7월 2일(토) 장소 : 연세대학교 연희관 이만섭홀   프로그램 및 심포지엄 관련한 자세한 정보는 파일로 첨부하였습니다.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한국 및 해외 여러 지역의 많은 연구자들을 뵙기를 기대합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한국 불평등연구 심포지엄 준비위원회 드림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계봉오, 국민대 사회학과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김영미, 연세대 사회학과 황선재, 중앙대 사회학과 김창환, University of Kansas, Sociology 박현준, University of Pennsylvania, Sociology 변수용, The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Education Policy

서리풀 논평

여성혐오, 그리고 모든 혐오에 맞서야

  ‘강남역 10번 출구’의 살인 사건은 놀랍다. 한 젊은 여성이, 한국에서도 가장 번화한 곳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이유’ 없이 희생되었다. 다른 말에 앞서 불의의 사고를 당한 피해자의 명복을 빈다. 이것이 다 무슨 소용일까만, 그 가족에도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우리는 이 사건을 세 가지,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연결된,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해한다. 여성, 혐오, 폭력이 그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세 가지는 독립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긴밀하게 결합해 있다.   먼저 여성. 이 황당한 사건에 대한 즉각적 해석은 ‘여성’혐오의 결과라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가 여성혐오 범죄이거나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피의자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경찰의 첫 반응도 그랬다), 여성혐오와 정신질환은 서로 다른 차원의 설명이다. 우리가 이해하는 이번 사건의 성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법정이 아닌 사회에서는 개별 사건의 인과관계가 아니라 ‘경향성’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청년 자살이 무엇 때문인가를 묻는 것과 비슷하다. 이 사건에서도 무의식이나 망상이 아니라 그것이 ‘여성’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이 문제다. 그런 한, 전형적인 여성혐오의 작동이라고 해야 맞다. 전문가의 진단보다 더 중요한 근거는 여성들의 행동이다. 많은 여성이 강남역에 모여 애도했고, 쪽지를 붙였으며, 거리를 행진했다. 소셜미디어에는 상징적인 해시태그, ‘#살아남았다’가 넘쳐났다. 이 비슷한 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지금 이 현상은 여성혐오에 대응하는 ‘폭발적’ 반응이라 할 만하다. 그 무슨 다른 기준이 있다 하더라도, 당사자인 여성들이 보인 강력한 동의와 공감이야말로

서리풀 논평

정당과 ‘혁신’의 앞날을 묻는다

  평범한 사람들이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선거다. 또, 선거를 통해 정치 행위자인 정당을 만나기 때문에 그 때나 되어야 비로소 정당을 경험한다. 이것이 한국 정치와 정당의 현실이라면, 정당은 아직 일상이라 할 수 없다. 선거가 한참 남았는데도 정당(또는 정당이 되려는 세력)이 우리의 주의를 끌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른바 제1 야당의 혼란과 난맥이 두드러진다. 국정감사의 와중에 이번 주가 정점을 찍을지도 모르겠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하는 말 한 가지. 홀로 비판받을 일은 아니니 당사자들은 억울해 하지 마시라, 무릇 정당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반면교사로 삼을 뿐이다. 또한 미리 말하지만, 우리의 관심은 한참 떨어진 자리에서 관전평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건강과 보건의료의 현실 역시 지극히 정치적이라고 할 때 정치의 실력은 우리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절감한다. 그 시끄러웠던 메르스, 지리멸렬한 후속 대책을 보라. 응급실 개선은 어디로 가고 공공병원의 앞날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정당과 정치가 오늘과 같지 않았다면 후속 조치 또한 다르리라 확신한다.   보통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첫 번째 현상은 계파 또는 정파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현대 정당이 박정희 시대의 여당이나 유신정우회 같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나누어 다투고 경쟁하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 한국의 메이저 정당들의 파당은 나누고 나누어진 기준이 도무지 요령부득이다. ‘친박’과 ‘비박’은 무엇이며 ‘친노’와 ‘비노’는 또 누구인가. 이름부터 그렇지만 이런 잣대가 무슨 정파라고 할 수 있는지 민망하다. 하다못해 매파와 비둘기파라는 소박한(?) 구분이 여러

서리풀 논평

가난이 세습되는 사회

  두 가지 어두운 연구결과가 거의 동시에 발표됐다. 요약하면 가난이 대물림된다는 것이다. 짐작과 크게 다르지 않고, 그러니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래도 현실을 바로 쳐다보는 것은 고통스럽고 우울하다.   먼저, 며칠 사이 여러 언론이 보도한 김연아의 성공회대 박사학위논문.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녀는 비정규직으로 직업을 시작할 가능성이 더 높다. 부모가 정규직이면 비정규직일 비율이 69.8%인데 비해, 부모가 비정규직이면 그 비율이 77.8%로 늘어난다 (숫자를 똑같이 틀린 보도가 여럿 있는데, 그냥 받아 쓴 모양이다. 저자에게 직접 확인했으니 이 글의 숫자가 맞다). 여러 언론이 부모가 비정규직이면 “열 명 가운데 7-8명이 비정규직”이라고 썼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초점은 다른 데 있다. 정규직 부모의 자녀도 비정규직이 더 많으니, 약 8% 포인트의 ‘차이’가 더 중요하다. 즉, 단순히 비정규 노동이 아니라 불평등의 문제. 그렇더라도 의미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이런 연구에서 8%의 차이는 결코 사소하다고 할 수 없는 정도의 크기다. 따라서 “비정규직의 대물림” 또는 “직업 지위의 세대 이전”은 부인할 수 없다.   지난 13일 <한국교육고용패널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최필선, 민인식의 논문 ‘한국의 세대간 사회계층 이동성에 관한 연구’가 두 번째다. 이 연구는 2004년 중학교 3학년이 10년 뒤 어떻게 되었나를 추적한 결과다. 연구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가구 소득이 높을수록, 또 부모의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자녀의 임금이 높아진다 (보도자료). ‘유리함’이 부모로부터 자녀로 이전되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 둘 사이에 교육이 있다고 해석했다. 경제적 여유가 있을수록 교육을 더 잘 받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