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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건강실록

[2016 시민건강실록] 발간

  한국사회는 매년 ‘그 어느 때보다도 다사다난했던 한 해’ 기록을 경신 중이다. 이제 어지간한 일에는 꿈쩍도 하지 않을 만큼 단련되었다고 자부하는 시민들조차 매번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것이 한국사회다. 새로운 이슈들에 묻혀 최근의 사건사고들도 먼 과거사처럼 느껴지는 일도 흔하다. 이렇게 경합하던 이슈들 중에서도, 2016년의 으뜸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였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게이트’는 민주주의 붕괴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종합판’이었을 뿐, 성장지상주의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정경유착과 사회불평등에서 비롯된 수많은 문제들이 각축을 벌였던 것이 현실이다. 우리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2015년 처음으로 건강과 인권의 관점에서 한해의 건강/보건의료 주요 이슈들을 돌아보는 작업을 시작했다. 『2016 시민건강실록』은 그 두 번째 결실이다. 정신없이 지나쳤던 문제들을 시간이 흐른 후에 복기해보는 것은 당시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해주고 새로운 통찰력을 준다. 이러한 작업결과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긴 안목으로 우리 사회의 건강/보건의료 체계를 성찰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2016년 베스트셀러 중 하나였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왜 역사를 연구하는가? 물리학이나 경제학과 달리, 역사는 정확한 예측을 하는 수단이 아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우리 앞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2016 시민건강실록』을 통해 동시대의 회원들 뿐 아니라 미래 세대의 독자들이 2016년을 조금 다른

서리풀 논평

세 살 쿠르디의 죽음과 한국의 난민 문제

  터키의 한 해변에서 발견된 세 살 된 시리아 아이, 쿠르디. 9월 3일 국내 언론에 보도된 쿠르디의 사진은 차라리 비현실적이다. 붉은 색 셔츠의 작은 남자아이는 파도에 떠밀려온 인형처럼 해변 모래에 엎드려 있었다. 쿠르디의 죽음(정확하게는 몇 장의 사진)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세계의 여론이 들끓었다. 유럽 여러 나라가 난민 수용 정책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그토록 완강하던 몇 나라(예를 들어 영국)는 벌써 다른 말을 하기 시작했다. 미디어와 언론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드라마가 된 타자의 고통, 그것을 중계하는 현대의 미디어, 그리고 분노와 연민조차 ‘외주’를 통해야 하는 ‘상호 수동’의 현실이 끔찍하다. 쿠르디의 죽음에 분노하는 것(정확하게는 분노한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분노를 관찰하거나 동참하는 것)은 텔레비전 개그 프로그램의 녹음된 웃음과 얼마나 다를까. “고된 일에 지친 상태로 TV 스크린만 쳐다보고 있어도 나는 코미디 쇼가 주는 긴장 완화를 느낀다. 마치 TV가 나를 대신해서 웃어주는 것처럼.” (슬라보예 지젝. <How to read 라캉>,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40쪽) ‘상호 수동’을 벗어나지 못해도 그 현실조차 참혹하다. 오늘 이 시각에도 수만의 난민이(그리고 이미 죽어간 영혼들이) 유럽의 바다와 육지를 떠돈다. 유엔난민기구의 통계를 보면 2015년 6월에만 4만 3천여 명의 난민이 바다를 거쳐 유럽에 도착했다고 한다(바로가기). 사태의 원인과 결과는 여기에서 자세하게 살피지 않는다. 다만, 유럽에서는 현재의 난민 사태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인도주의적 위기라고 인식하는 분위기다. 영국은 세계대전 직전 유럽의 유대인 아이를 실어